brunch

탄생

04 탄생의 순간

by 김호진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안 되는 친구.

늘 붙어 다니는 친구.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신나는 일로 가득한 친구.


대국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마당에 입구에서 나를 발견하자 숨을 급히 고르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뭔가 특별한 것을 발견하거나 어른들 몰래 무엇인가 꾸밀 때 하는 행동이다. 나는 알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주위를 살폈다. 할머니는 뒤뜰에 계시고 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기척이 없다. 행여 친구를 놓칠세라 먹이를 쫓는 새처럼 골목길을 달렸다.


친구는 한참을 달려 어느 집 앞에서 멈추었다. 대문은 없었지만 잠시 집안의 동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인기척이 없자 친구는 마당을 가로질러 소외양간 앞으로 살금살금 소리 없이 접근해 갔다. 그때까지 나는 무슨 일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집 모양이 비슷했다. 본채에는 부엌과 안방, 마루, 건넌방이 있었고 아랫채에는 쇠죽을 끓이는 가마솥과 연결된 방과 외양간, 곡식을 보관하는 곡간, 식품을 저장하는 창고가 딸려 있었다. 외양간에 붙은 방은 주로 입구에 위치하여 대문이 없었기 때문에 수시로 드나들 수 있어 또래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곤 했다. 어른들 몰래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외양간은 잠겨있었다. 친구가 먼저 외양간 문의 벌어진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문은 삐뚤삐뚤한 나무들로 엉성하게 만들어져 틈이 넓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바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를 나무 문짝에 바짝 붙였다. 혹여 삐거덕 소리가 나는 날이면 소가 놀라거나 주인이 뒤털미를 잡는 일이 생긴다면 낭패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 잠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큰 암소가 한 마리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곳을 둘러보았지만 외양간 안에 특별하게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는 말없이 숨을 죽이고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그때 대국이가 내 등을 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라, 이제 나오나 보다. 엉덩이, 엉덩이"

나는 놀라서 엉덩이에 눈을 고정했다.

"조금 있으면 엉덩이에서 뭔가 나올지 몰라"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여"

"앗 이제 나오나 보다"

대국이는 흠칫 놀라며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엉덩이에서 뭔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앞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호기심으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암소 엉덩이에서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 대국이가 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조금 있으면 송아지가 나올 거야. 송아지는 앞 발이 먼저 나온데, 잘 보라구"

나는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가슴이 요동쳤다.

"대국아! 앞발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어"

"봐, 앞발이 먼저 나오지, 이제 머리도 나올걸" 하면서 대국이는 나를 돌려세우고는 양팔을 위로 쭉 뻗고는 이렇게 나올 거라며 몸으로 보여 주었다. 저수지에서 수영할 때 형들이 물에 뛰어드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송아지 앞발이 벌써 조금 보이기 시작하였다.


신비롭고 기적 같은 송아지의 탄생을 보고 있었다. 앞발이 나오고 머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잠시 후 정말 머리가 보이고 몸통이 드러나자 송아지가 쑥 빠져나와 짚 위로 '툭'하고 떨어졌다.

송아지는 짚이 수북하게 쌓인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더 신기한 것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암소는 송아지를 깨끗하게 핥아 주었다. 송아지 주변에 있는 이상한 물건을 삼켰다. 암소의 기다란 혀가 아기 송아지의 털을 정리하자 송아지는 비틀거리면 일어서려고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송아지를 균형을 잡고 일어섰다.


송아지가 탄생하기까지 우리는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모든 것이 멈춘 순간이었다. 다행히 아무런 방해꾼 없이 송아지의 탄생을 함께 하였다. 엄마 소는 송아지를 연신 핥고 몸을 가볍게 비비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친구가 이제 그만 이곳을 벗어나자는 눈짓을 했다. 우리는 골목길을 한참을 달리다가 숨을 몰아쉬면서 멈추었다.

가쁜 숨이 좀 가라앉았다. 나는 대국이를 보면서 말했다.

"송아지 새끼가 낳는 거 처음 봤어, 정말 신기했어"

"나도 처음 본 거야"

"너 오늘 새끼 놓을지 어떻게 알았어?"

"아! 아침에 앞집 달희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하는 얘기를 들었어. 오늘 송아지를 놓을 거라고 했거든"

대국이는 그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마침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들에 일하러 나가는 것을 보았고, 바로 나에게 달려왔다고 했다.

"송아지는 엄마 배속에서 나오자 말자 어떻게 일어설 수가 있지? 신기하지?"

나는 놀라움이 아직 가시지 않은 눈으로 대국이를 보며 말했다.


대국이는 소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송아지는 엄마 배속에서 많이 자라기 때문이라고 태어나 바로 설 수 있다고 했다. 만약 바로 일어설 수 없다면 엄마소의 젖을 먹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반면 자기 동생과 같이 아기는 1년이 지나야 겨우 걷는다고 했다.


대국이는 계속 말했다. 아까 엄마소가 송아지 몸에 있는 것을 핡아 먹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아기집에서 묻어 나온 물이라고 했다. 엄마 소가 혀로 핡아서 깨끗하게 닦아 주면 털이 빨리 마른다고 했다. 송아지가 나올 때 워낙 힘들었기 때문에 엄마 소가 송아지에게 힘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고 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오늘 굉장한 일을 한 듯 거만한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는 그리고 웃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골목길을 돌아 석수네 집으로 달려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빈내 아재와 서부 할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