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푼으로 떠다가 버린 것 같았어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다.
길거리에는 활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한 해 중 가장 좋아하는 기간이다. 계속되는 불경기에 경제는 늘 어려웠지만, 거리에는 변함없이 매년 캐럴이 흘렀고, 백화점들은 매일 밤마다 외벽에서 크리스마스 미디어파사드를 상영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온 나라가 축제의 흥에 겨워 들썩거린다. 마치 그런 힘든 시기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 분위기에 취하면 힘들게 하는 일들을 잠시 잊게 된다. 한 달 내내 빠짐없이 매일매일 크리스마스다. 마음이 한없이 붕붕 뜬다.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네.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 또 만나야지?!
한참 성수동이 핫플로 이슈를 몰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무언가 강렬한 존재가 바로 그곳을 딱 집어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대한민국의 젊고, 힙한 사람들아. 바로 여기야! 여기로 와!' 이렇게 외치며. 그렇게 모두 성수동으로 모여들었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도 연말약속을 그곳으로 잡았고, 검색 끝에 괜찮은 와인집을 예약했다.
지하철에 내리면서부터 화려한 불빛이 나를 감싸고. 나는 주인공이고. 그냥 기분이 좋았다. 길바닥에서 노래하고 춤추라면, 당장 뛰쳐나가서 안 움직이는 몸을 마구 휘적휘적 대고 싶을 정도로. 크리스천도 아니면서 크리스마스를 어찌나 설레이며 기다렸는지 모른다. 빨간 니트도 한 장 사서 입었다. 사실 그 명절에는 할 일만 태산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좋다 하는 걸 보면, 마음만은 아직 젊은가 보다. 산타클로스는 나이 먹은 내게 선물을 주지도 않는데 말이다.
흐려 보이는 하늘을 봐도 마치 눈이 올 것 같다며 좋다고 했다. 서늘한 날씨에 옷깃을 한껏 여미다가도, 추웠다가 들어가면 더 따듯하고 좋아 라면서 긍정회로가 저절로 돌아갔다. 마음이 방방 뜨고, 양 볼이 상기되어 갔다. 점점 커지는 목소리들이 어우러져 마치 화음을 쌓는 듯했다. 아카펠라라도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신이 나서 떠들어대며 거리를 걸었다.
파란 기둥에 하얀 갓이 씌워진 듯한 깔끔하고 귀여운 조명이 테이블마다 놓여있었다. 그곳은, 여느 와인바처럼 어둑어둑한 느낌이 아니었다. 가볍고, 편안한 분위기여서 오히려 신선했다.
"와인 잔을 각자 고르시면 되어요. 저희 매장에서는 그렇게 드실 수 있어요."
잔을 고를 수 있다니! 무슨 잔에 마실까. 한참을 웃으면서 골랐다. 진열대에는 수십 개의 잔들이 각양각색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히야~ 반짝반짝. 징글벨이다 야~ 이 잔도 들어보고, 저 잔도 들어보고.
"언니는 이거가 어울려~."
"아냐 내가 알아서 고를 거야~."
"이 잔은 너무 작다. 난 많이 마실 건데!"
"어머, 그 잔 너무 예쁘다!"
"대왕 큰 걸로 골라. 잔뜩 따라야지!"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놓고, 나 참. 여고생들이니? 또 신이 나서 깔깔깔 거린다. 하긴 여고생은 와인을 마실 수 없지. 서로 마주 보고 어깨를 툭툭 치며 웃어 대면서, 각자 고른 잔을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매장 한쪽구석에는 귀여운 머리띠들이 있었다. 덥석 집어 들어서 서로 씌워준다. 애들이나 쓸 법한 루돌프 머리띠, 왕관 머리띠.. 공주봉까지 난리가 났다. 인생 네 컷도 아니고, 우리가 몇 살이고 진짜. 하따 그러면서 찍을 건 다 찍고. 참 나. 웃긴다 정말. 거기서 또 한참을 셀카 찍고 놀다가, 전시해 둔 와인도 구경하다가. 이러다가 밤샐 지경이다. 우리 테이블로 가는 길이 몇 킬로미터라도 되는가? 그 짧은 구간을 구경하느라 눈이 여기저기 바쁘다. 선생님이 계셨으면 거기! 조용히들 하지! 자리에 앉아! 했을 것 같다.
이곳은 내추럴 와인을 메인으로 취급한다. 내추럴 와인이란, 말 그대로 첨가물 없이 자연 그대로의 방식으로 발효시켜 만드는 와인을 뜻한다. 그러다 보니, 거친 맛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엄청 시큼하기도 하고, 톡 쏘기도 하고, 발효할 때 쓰는 효모나 흙냄새가 나기도 하는. 유기농 와인 같은 거랄까? 와인리스트마저도 분위기와 참말로 찰떡이다.
주문한 와인은 '요헤'라는 내추럴 와인이었다. 꼭 비닐로 만든 쇼핑백 같은 가방에 얼음을 채워서 와인을 담아가지고 서빙이 된다. 참 캐주얼하다. 병뚜껑을 똑 따서 따라주시는데, 어쩜. 향기도 귀여운 느낌. 맛도 가볍고 산뜻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한, 두 병 정도를 역시나 깔끔하고 산뜻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음식과 함께 마셨다. 평소에 자주 보지 못한 요리와 새로운 분위기. 한 잔, 두 잔, 비워질 때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간다.
언제나 피크닉 하듯이 놀라오라는 주제를 가진 이 가게는, 옷가지를 보관하는 바구니조차도 그 컨셉을 충실히 유지한다. 입구부터, 놀러 가자~ 놀러 가자~ 와인 한 병들고. 강가에 가서 오손도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자며 다정하게 말을 거는 듯하다. 심지어는 이야기주제가 담긴 카드들도 전시되어 있다. 언제든지 이야깃거리가 떨어졌을 때는 그 카드를 들고 가서, 거기 적힌 주제들을 화제 삼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말이다.
참 작은 배려들이 만남을 기분 좋게 독려하는 곳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냥 우리끼리 어딜 가든 다 좋지만, 장소가 주는 특별함은 그날의 기분과 감정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고조시켜 기억 한편에 만남의 행복함을 몇 배로 담아둘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러니 아무 곳이나 고를 수가 있나.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늘 간절하다. 그곳에서 즐겁게 만든 추억은 언제 꺼내어 봐도 너무나 소중해서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싶어 지는 것이다.
모임 다음날에도 만들어 볼 만큼 그곳에서 먹었던 프렌치토스트는 너무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같이 먹었던 와인도 수소문해서 주문해서 마셔본다. 그렇지만 그날 그 맛은 참, 느끼기가 힘들다. 장소, 사람, 음식. 이 삼박자가 딱 맞아야 완벽하다는 걸 그렇게 깨달았다. 먹었던 음식, 와인, 분위기를 재현해 보는 것은 그날의 기억이 그만큼 좋았다는 뜻이다.
그런 날은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는 은은한 향 같아서, 근처에만 가도 코끝에 기억되는 향내음으로 그때가 생각나는 것이다. 그러니 또 사람들은 잊지 못하고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겠지.
시간이 지나 겨울이 가고 따듯한 봄이 왔다. 가족과 서울숲에 올 일이 있는 김에, 맛있는 것을 먹어보려고 카페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래. 이 즈음에 그 와인바가 있었어. 너무 좋았었는데. 그 기억에 고개를 들어 2층에 있던 그 장소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처참하게 뜯겨 버려서 휑해진 창문. 세상에. 간판도 무참하게 떨어져 있었다. 아. 이건 아니야. 그렇게 예쁘던 테이블은 어디 갔지. 따듯한 불빛은? 다정한 주인이 상냥하게 닦아주던 와인잔을 담아둔 선반은? 귀여운 해바라기가 그려진 어지러이 놓인 이야기 카드는?
젠트리 피케이션인가.
글쎄. 원인은 정확하지 않다. 급하게 그 가게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니,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물러난다는 말은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그냥 그러지 않을까 짐작할 뿐.
젠트리피케이션(영어: gentrification)은 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다.
-위키백과
그렇게 내 추억도 뜯겨 나갔다. 마치 거인이 커다란 손으로 거칠게 파헤쳐 낸 것처럼. 뼈대만 남아있는 저 딱딱한 콘크리트 외벽들에서는 그때의 아름답던 기억들은 이제 다시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한동안 먹먹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맛있던 와인과 따듯했던 음식들은 저곳에서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성수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핫플들이 이렇게 사라져 간다. 지금도 눈앞에 보이는 저 장소들에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겹겹이 쌓아가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마치 없던 것처럼 스러져 갈까. 어차피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과거로 돌아가서 그 장소,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그곳에 가서 그때처럼 그 시간을 추억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는 누구든지 쓸쓸함을 느낄 것이다.
따듯하다 못해 더워진 늦봄이었지만 매서운 찬바람이 불던 겨울보다 더욱더 한기가 들어 마음이 시리고 또 시리다. 무언가 형용할 수 없이 커다래진 슬픔도 느껴졌다. 눈꼬리가 축 처졌다. 헛헛한 마음에 단체 카톡창에 메시지를 남겨본다. 마음속 구멍을 공유해서 비어있음을 조금이라도 메꾸고 싶어졌다.
언니, 그곳이 파였어.
그냥 수저로 푹 퍼내듯이 파여버렸네.
이제 전에 만났던 거기서 모일래?
라는 말은 영원히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