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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Nov 17. 2024

 제주 4.3 평화공원: 작별할 수 없어 찾아가다

제주도 시골 살기 14

한 달 전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작가의 작품이 품절 대란을 겪기도 한  축제 분위기는 이제 조금씩 진정되는 추세다. 그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진 해외 동포들에게는 한강 작가의 책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캐나다에 사는 큰언니도『채식주의자』를 읽어 보려 했으나, 아마존에서 품절되었다며 아쉬워했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온라인 주문이 가능해, 작가주요 작품 5권을 보내 줬는데 잘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오래전,『여수의 사랑』을 읽으면서 한강 작가의 매력에 빠졌다. 육지에서 독서 모임 회원들과 함께 그의 작품들을 읽고 토론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대사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유려한 문체로 용기 있게 그려낸 작품들은 읽은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제주로 이사 온 후, 4.3 사건을 다룬『작별하지 않는다』를 이 기회에 다시 읽어 보었다. 잔잔하고 차분한 문장 속에는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친다. 이제는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소설 속에 나오는 지리에도 익숙하니, 이야기가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제주로 이사오기 훨씬 이전, 관광차 두 번 제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요즘 유행하는 '다크투어'라는 개념도 없었으니, 그저 전형적인 관광 코스만 따라다녔다. 성산봉 일출, 민속촌, 승마체험, 서커스, 오름, 그리고 마라도까지 구경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뒤에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비극적인 역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그때의 무지함이 아쉽게 느껴진다.




제주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갈 무렵에,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태양이 그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침내 방문하고 싶었던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았다. 평화공원은 북동쪽에 위치해 있어, 남서쪽인 우리 집에서는 평화로를 가로질러 1시간 넘게 이동해야 한다. 제주도에서는 1시간이 넘으면 꽤 먼 거리로 여겨진다. 서귀포시와 제주시를 오갈 때는 서울과 부산 간 거리처럼, 자고 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4.3 사건 기념관과 위령탑이 세워진 평화공원은, 낮지만 확 트인 언덕에 조성되어 있어 그 광활함에 압도된다. 공원 안에는 행방불명인 표석들이 끝없이 줄지어 있다. 숫자로만 들었을 때와는 달리, 표석들을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더 실감할 수 있었다. 


하늘과 들판은 더없이 푸르고 아름다워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름이 한창이라 그런지 공원에는 관람객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관람객이 많이 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펜의 강력한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특이한 디자인의 기념관은 4.3의 역사를 담는 그릇을 모티브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안으로 입장하자, 화산 동굴을 재현한 전시관이 눈에 띄었다. 동굴은 4.3 사건 때 피난처로 쓰였던 곳 중 하나라고 한다. 전시관 초입에 들어서니, 숨이 막힐 듯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고통스러운 비극의 역사를 마주해야 하는 부담감 같은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막힌 공간에 가면 가끔씩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못 쉴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 오기 때문이다. 폐소공포증이 있는지 탁 트인 공간에 가야 안심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인지 도시보다는 시골살이가 나에게 더 맞는 것 같다. 남편과 딸을 먼저 전시관에 들여보내고, 나는 입구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후에야 들어갔다.





2000년에 제정된 《제주 4ㆍ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이 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간단히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건의 복잡성과 제주도민의 깊은 상처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공식적인 희생자는 15,000여 명에 이르지만, 진상보고서에는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이 1인 3만 명까지 추정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심했던 비극으로 손꼽힌다. 반세기가 지난 2003년에,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처음으로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였다. 늦었지만, 그 사과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처참했던 당시 사건의 실제 영상물, 사진, 피난처를 재현한 공간 그리고 비극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전시물까지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희생자 사진들이 걸린 출구 쪽을 마지막으로 힘겹게 '동굴'을 빠져나왔다. 이러한 동굴을 피난처 삼아 생활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한강의『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주인공 경하는 친구 인선의 앵무새를 살리기 위해 모진 날씨를 뚫고 제주에 있는 인선의 집에 도착한다. 하지만 고생한 보람도 없이 작은 새는 이미 어 있었다. 경하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온 정성을 다해 새를 땅에 고이 묻어준다. 이 장면은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하며, 그것의 죽음 또한 고결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국가가 무고한 양민들을 잔인하게 죽음으로 내몰고 그 희생자의 죽음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생각하면, 무척 대조적일 수밖에 없다. 조국의 분단을 반대하며 자주독립 국가를 갈망하는 것은 한 국가의 주권자로서 당연한 바람인데, 무수한 민간인들이 왜 그렇게 무참히 희생되어야 했는지, 여전히 가슴 아픈 질문이다. 이는 국가 권력의 폭력과 인간성의 부재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소설 속에서 인선은 사고로 잘린 두 손가락을 살리기 위해, 3분마다 봉합 부위가 바늘로 찔리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곳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껴야만 잘린 손가락의 신경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인선은 손가락들을 포기할까 고민도 지만, 평생 환지통을 느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결국 손가락을 지키기로 한다. 중요한 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참아가며 계속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그의 저서,『이성의 삶』에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반복하게 될 운명에 처해진다"라고 했다. 그래서 제주 4.3 사건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비극적인 역사는 계속 기억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잊지 않도록 기념공간을 조성하여, 후대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 주고 기억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평화공원 위로 내리쬐는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광복 이후 조국의 통일과 자주독립 국가를 꿈꿨던 제주 도민의 열망을 닮아 있었다. 한강의 소설은 과거의 제주 4.3 사건과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결코 작별할 없는 비극적인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오래전, 제주를 달구던 그 열망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책무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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