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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Sep 18. 2023

안녕, 엄마

01. 엄마는 아팠다. 아주 많이

엄마는 아팠다. 아주 많이

우리 엄마는 원래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던 사람이다.

어렸을 적 기억에 수술을 하고 온 엄마는 힘없이 항상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렸던 나는 아픈 엄마가 혹시라도 힘들까 싶어 열심히 밥을 지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내가 성인이 되고 난 후 엄마의 건강은 조금 괜찮아졌었다.

몸이 아파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했던 엄마는 느즈막히 직업을 가져 열심히 살았었다.

돈 모아 아들 휴가 나오면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하는 모습이나 퇴근하고 아빠랑 나랑 저녁 한 끼 맛있는거

먹는 게 가장 기쁘다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작고 소박하고 순수하고 소중했던 사람이었다. 우리 엄마는.


엄마가 스무살 적에 목에 난 염증이 커져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젊었을 적에 왼쪽 목이 움푹 꺼져있었던 것을 종종 봤던 것 같다. 

어렸을 땐 그냥 엄마의 목은 원래 그런가보다하고 생각했다.

목에 난 염증이 계속 곪고 곪아서 움푹 파인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10살 때는 엄마가 화장실에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었다.

다행히 외할머니가 옆에 계셔서 엄마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는데 10살이었던 나는 우리 엄마를 살려달라고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펑펑 울었었다. 

엄마는 배를 갈라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자궁에 혹이 너무 많이 퍼져 있어 자궁 전체를 드러내야 했다.


12살 때는 엄마가 갑상선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었다.

엄마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나누는 말들, 할머니와 전화통화하는 말들, 병원에 자주 다니는 엄마, 힘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 그냥 알았던 것 같다. 엄마가 암이구나.

다행히 수술 후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큰 문제는 없다고 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무사히  살아남아서 10년을 넘게 내 곁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24살 한창 임용시험 공부를 하던 시기, 새벽 6시 쯤 엄마가 바닥을 기면서 울고 있었다. 이번에도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당황한 아빠와 나는 응급실에 전화했고 우리 엄마는 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엄마와 아빠를 병원으로 보내고 나는 또 혼자 남아 출근 시간 전까지 계속 울었다. 

출근해서 무슨 정신으로 일하느지도 모르다가 요로결석이라고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는 엄마의 문자를 받고

그제서야 긴장을 풀었다. 엄마는 다시 살아남아 집에 돌아왔다.


27살 초봄 엄마가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아프면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병원을 가기 무서워했던 엄마는 자꾸 괜찮다며 병원가는 것을 미뤘다. 계속 아파하던 엄마는 정형외과에 갔고 2주 집중치료를 받아보자는 의사의 말에 다니던 직장에 2주 병가를 냈다. 그리고 한달 후 내 곁을 영영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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