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집단성폭력 사건으로 본 우리 사회의 현실과 대책

by 세귤라

온라인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 글입니다.




몇 해 전 OO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어린이날을 앞두고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소용돌이쳤다. 이 같은 현상은 어제오늘 만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각종 매스컴을 앞세운 기성세대들은 냄비에 물 끓듯 한다. 이 사건은 보령 앞바다에서 낚시하던 중 원인 모를 파도에 휩쓸려 생명을 빼앗긴 자연재해와는 달리 인재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가해 중학생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12-13세 학생 3명은 가정법원 소년부에 송치하고 이보다 어린 나머지 5명은 부모에게 인계 처리키로 했다. 경찰 조사결과 가해 학생들은 여학생들의 팔을 잡아끄는 등 위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고, 남자 상급생이 동성(同性) 하급생을 폭행, 성폭력을 강요한 사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회적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기성세대들은 OO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이 ‘발랑 까져서’ 어른들의 성(性)을 흉내나 내는 엉덩이에 뿔난 ‘못된 것’들이라고 치부한다. 다른 쪽에서는 기성세대들의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필자는 후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동안 기성세대들의 성(性)적 무질서와 문란함은 청소년들에게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전염되었다.


그 쓴 열매가 OO 초등생 집단성폭력과 같은 사건이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행해지고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해자 학생들이 봤다는 영상물은 성인 등급 영상물이다. 성인들이 그 영상물들을 보고 즐기며 행했던 것처럼 일부 청소년들도 몰래 보고 즐기고 따라 행했다.


물론 기성세대들은 성인 영상물을 보지 말아야 할 청소년들이 본 것이 잘못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아닌 일부 청소년들이 불법적으로 성인 영상물들을 본 것은 그들만의 책임이라고만 하기에는 기성세대들의 과오가 적지 않다. 따라서 기성세대들이 먼저 자신들을 돌아보고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통한 대책을 강구하고 그에 따른 변화와 발전이 있을 때 차세대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마치 공기처럼 그 어디에든지, 누구에게든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가부장적인 의식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뼛속 깊이 베였다.


이를테면, 여자는 태어나면 주인이 세 번 바뀐다는 말이 마치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다. 한 가정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첫 번째 주인은 아버지다. 결혼하면 남편이 주인이 된다. 그 두 번째 주인이 사망하게 되면 아들이 세 번째 주인으로 등극한다.


이 말은 전통을 가장한 가부장적 문화의 산물로써 남성 중심, 권력 중심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다.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한 인격체로서의 인간은 성별을 불문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성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주장할 수 없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케 하는 것이 아닌가. 3대(代)를 이어 여성의 몸의 주인 노릇을 하는 남성중심 사회는 여성 스스로가 '내 몸의 주인은 나다'라고 말할 수 없도록 했다. 내 몸의 주체성을 여성 자신 스스로가 주장하기 어려운 가부장적 사회문화 구조 속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성(性)적 주권(主權)을 주장하기란 녹록하지 않다. 설령, 여성이 용기 내서 자기 몸의 주인행세를 하였다고 하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나 보자', '내숭 떨기는', '속으로는 저도 좋으면서 싫다고 튕기기는' 등 허공에 울리는 냉담한 반응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말했다가 돌아오는 반응은 말한 이의 얼굴만 화끈거리게 할 뿐이다. 이토록 냉담하기 짝이 없는 반응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첫 번째,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나?라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다. '니 몸은 내 거다'라는 힘(Power)의 논리에서 기인한 인식이다. 갖고 싶은 물건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력을 써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 이 말은 남성성으로 표현되는 대표적인 힘(Power)을 강조하고 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열 번이라도 지속 반복적으로 찍어 넘어뜨리겠다는 것이다. 될 때까지, 끝내는 내 소유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여성의 NO는 Yes이다'라는 왜곡된 인식이다. 여성의 의견은 무시되고 비하시킬 뿐만 아니라 잘못된 사회적 통념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싫어요, 하지 마세요, 안 돼요'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가해자는 '안 돼요'가 아니라 '돼요, 해도 돼요'라고 인식한다는 데 그 심각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OO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건에서도 힘(Power)의 논리는 작동했다. 그 남성성의 표상인 힘(Power)의 논리는 하급생보다 학년이 높다(Power)는 이유로 상급생이 강제로 하급생에게 성폭력을 가한 데서 여실히 드러났다. 여학생이 'NO', '안 돼요'라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같은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 기성세대로부터 10대(代)에게 이르기까지 세대를 전수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근간에 일어나는 청소년 성(性) 범죄는 청소년 개인적 책임도 물론 있지만, 그에 앞서 차세대의 본보기가 되어 주지 못한 기성세대에게 그 책임 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본질적인 대책을 세우고 법(法) 제화하여 그동안 사회적으로 잘못된 통념들이 근절되고 건강한 사회적 통념이 자리 잡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언(提言)한다.


첫째, 기성세대는 도리(道理)를 지켜 차세대의 본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청소년들은 정보화 홍수 시대에 살면서 ‘아는 것’이 많은 세대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아는 것’의 정보 제공이 아니라 ‘앎’을 생활 속에 적용하고 실천하며 사는 ‘삶’의 모델이다.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가르쳐야 한다. 이 가르침은 이론이나 말로만이 아니라 ‘아는 만큼 삶으로 살아낼 때’ 설득력이 있고 감동이 있게 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행하여야 ‘할 도리’를 안 하고 살거나 자신의 몸, ‘아랫도리(the lower half of the body)’를 지키지 않고 사는 기성세대는 자신의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에게까지 ‘빈 양심’의 표본으로밖에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할 도리(道理)’와 ‘아랫도리(the lower half of the body)’를 잘 지키는 ‘도리의 삶’을 살 때, 개인이나 사회는 근본적으로 회복되고 치유되며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가부장적 사회문화 구조 안에서의 잘못된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가부장적 사회문화 속에서 남성성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힘(Power)은 남자다움을 나타낸다. '남자는 힘이 세야 한다. 남자는 돈을 잘 벌어야 남자다운 것이다. 남자는 능력(Power)이 있어야 한다. 남자는 성(性)적으로도 강해야 한다. 여자는 다소곳해야 한다. 남자의 말을 잘 들어야 여자답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말하면 드센 여자다. 여자 목소리는 담장 밖을 넘어가면 안 된다'라는 말들은 대표적인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를 대변하는 말들이다. 성별 구별에 앞서 남성과 여성 모두 한 인격체를 지닌 인간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자신의 몸과 성(性)의 주장은 각 개개인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렇게 할 때 건강한 자아의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사회 일원이 될 수 있다.


셋째, 성인등급의 각종 영상물은 물론 대중매체에 대한 심의와 유통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관련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청소년들이 청소년 유해 매체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넷째,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성(性) 교육 의무화를 실시하여야 한다. 성장한 뒤에 배우는 성(性) 교육은 부정적이거나 왜곡된 성(性)에 대한 정보나 잘못된 가치관 때문에 바른 성(性) 교육을 받더라도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기 어려워한다. 개개인에게 이미 형성된 성(性)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하고 바른 성(性)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처음 성(性) 교육을 받은 어린이는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어렸을 때부터 점차 초ㆍ중ㆍ고ㆍ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지속 반복적으로 바른 성(性) 교육을 의무화하여 왜곡된 성(性) 이미지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인지적교육을 통해 자신의 몸은 물론 타인의 몸에 대한 존중감을 갖도록 하므로 성(性) 범죄를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가 피해자로서 보호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가부장적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잘못된 사회적 통념들로 인해 피해자가 정서적 또는 심리적으로 제2, 제3의 피해를 다시 받게 되는 실정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성인지적 관점의 바르고 건강한 성(性) 인식이 뿌리내린다면 성폭력피해자가 진술을 꺼리거나 자신의 피해 사실을 숨기려고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의 성(性) 교육 의무화 관련법을 제정과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 이미 굳어진 성(性)의 틀을 가진 기성세대들에게는 인식의 전환이 있도록 관련 교육을 개발하고 사회 교육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입안과 예산 편성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정직함이 우대받는 정서적 신용사회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후 학교 관계자들을 포함한 기성세대들은 사건 축소 혹은 은폐(隱蔽)를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방안은 찾기 위해서만 골몰하고 급급했다. 이러한 태도는 차세대들에게 부정직한 가치관을 사회와 학교 현장에서 답습하게 한다. 기성세대들의 잘못된 삶의 기준이 융통성으로 포장되고 실용화로 가장해서 정직함이 힘을 잃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한다.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가 잘못한 존재처럼 느껴지게 하는 원인으로도 작동하게 한다.


따라서 융통성이 적고 실용(實用) 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부정직한 큰 목소리보다 정직한 목소리가 커지고 대우받는 사회와 학교 현장이 되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라도 세워나가야 할 목표는 더디 가도 바르게 가는 정직함이다. 돈이나 명예보다도 가치 있는 무형의 자산인 정직함을 차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세워가는 데 있어서 기성세대들이 그 몫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기성세대들이 먼저 자신들을 돌아보고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통한 대책을 강구하고 그에 따른 변화와 발전이 있을 때 차세대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