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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Sep 16. 2023

나는 초보 거절러입니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었다. 거절을 했을 때 난색을 표하는 상대방 얼굴을 보는 것도 난감했고, 그 잠깐의 순간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도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거절을 하지 못해서 억지로 응했던 일들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는 걸 여러 번 경험하다 보니 나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필요할 땐 단호하게 거절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거절을 위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주말 약속을 잡으려는 거래처 직원에게도, 친하지도 않은데 결혼식 축가를 불러달라는 지인에게도, 업무 외적인 부탁을 하는 상사에게도, 오랜 이성 친구의 진심 어린 고백에도 감정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분명하게 내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아직 이런 과정 자체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거절 의사를 밝히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자리에서 당장 얘기할 수도 있었는데, 고민하며 머뭇대다가 거절할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한 두 번이 어려웠을 뿐.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세 번이 네 번이 되자 내 마음을 옥죄던 거절에의 부담감이 조금씩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거절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거. 그게 참 반가울 만큼 의외로운 일이었다.


거절 의사를 전달하는 내 말에 난색을 표하는 경우도 물론 있었지만, 그것도 일부에 불과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 의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분명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했다.


그 반응들에 힘입어 조금씩 더 자연스럽게(?) 거절할 수 있게 되자 하기 싫은 일에 억지로 응하면서 상대방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혼자 끙끙 앓았던 때보다 나 자신이 훨씬 더 미덥게 느껴졌고, 마음도 한결 더 편해졌다.


여러 번 해보다 보니 이것도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다. 어떤 요청에 승낙할 때와 같이 거절할 때도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배려하면서 동시에 내 의사를 솔직하게 표현하면 되는 거였다.


이게 이렇게 좋은 건 줄 알았더라면 진작 수련의 과정을 거쳤으련만....... 싶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려 한다.


아무쪼록 참 신기한 일이다. 단지 거절을 조금 할 줄 알게 되었을 뿐인데 인생이 꽤 편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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