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인권적 성찰

외국인 차별에 투영된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양면적 본성

by 날개

민주주의는 역설적이게도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힘'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는 복잡한 사회에서 만장일치의 합의를 기다릴 수 없으므로, 다수의 의사를 따름으로써 정치적 안정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이 다수결의 원칙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기와 '다름'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고 힘을 행사하려는 경향을 가질 때, 언제든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라는 폭력으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한다. 진화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소규모 집단('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외부 집단('그들')을 경쟁자나 위협으로 인식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왔다. 사회학적으로도 개인은 자신의 사회 정체성과 자기 존중감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월하게 평가하고, 외부 집단을 폄하하고 배척하는 '내집단 편애'(in-group bias) 심리를 쉽게 발현한다. 민주주의의 다수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심리가 합법적인 절차라는 외투를 걸친 채 폭력성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수의 힘과 배타적 본능이 결합된 폭력은 국제적 영역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양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한 면에서 우리는 외국인을 수용하는 다수자로서 이주 노동자, 결혼 이주민, 난민 등 소수자, 특히 저개발 된 국가의 외국인에 대해 암묵적 혹은 명시적인 차별과 편견, 나아가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취업 허가가 없는 비시민권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을 권리와 같이 국가의 주권적 권한으로 정당화되는 영역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정 인종의 차별이나 혐오의 형태로 나타난다. 인권학자 '앤드루 클래펌'(Andrew Clapham, 1960-)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인종차별이나 외국인 혐오의 한 형태로서 모욕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편견을 넘어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의 형태를 띤다고 강조한다.


반대 면에서, 우리가 외국에 나가 거주하거나 활동할 때, 그 나라의 소수자로서 차별의 희생자가 된다. 우리가 국내에서 이주 노동자에게 가했던 배척이나 무시, 편견이 인종차별이나 혐오 범죄의 형태로 우리에게 그대로 되돌아오는 순간이다. 우리가 유색인종이나 이방인이 되어 낯선 문화와 제도 앞에서 취약한 존재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차별의 고통을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양면적인 경험은 차별이 국적이나 피부색이 아닌 '다수 대 소수'라는 권력관계의 역전에 의해 발생한다는 냉정한 진실을 깨닫게 한다. 즉, 우리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폭력의 순환 구조에 갇혀 있는 것이다.


결국,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인류가 스스로를 '우리'와 '그들'로 끊임없이 나누려는 원초적인 인지적 무지에서 비롯된다. 인류학적으로 '다름'을 위협으로 인식했던 과거의 생존 기제가 현대 사회에서는 편견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UDHR)에서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선언하고 있다. 특정한 국적이나 출신, 피부색을 이유로 누군가를 열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정형화된 틀에 가두고 본질적인 동등성을 부정하는 무지몽매한 형태의 자기 정당화일 뿐이다.


클래펌이 설명하는 바와 같이, 국제사회는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유엔은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 등을 통해 차별의 문제를 감시하고 규범을 제시한다. 이 위원회는 비시민권자 근로자에 대한 강제 노동, 불법 감금, 성폭력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각 당사국에 상기시킨다. 나아가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에 관한 조약'과 같은 특수 조약들은 인신매매범에 대한 형사 관할권을 확립하여, 착취를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 행위가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인권 침해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노력은 내국인에 비해 외국인에게 더 높은 대학 등록금을 요구하는 것과 같이 정당한 목적에 비례하여 허용되는 차별의 경계와,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비합리적인 차별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 국가라는 오랜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한국 사회는 이러한 국제 인권의 흐름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이주 노동자가 일자리를 잠식하여 내국인의 임금을 하락시키고, 건강보험 재정을 충분한 기여 없이 악용하여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며, 범죄율 증가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나아가 테러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사회적 불안감과 우려를 제기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이주자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강화하며 배타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소득 활동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세금과 건보료를 납부한다는 것이다. 다만, 특정 그룹(주로 지역 가입자나 단기 체류자)에서 일부 수지 적자가 발생하거나 부정 수급 사례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므로, 이에 대한 관련제도 개선은 분명히 시급하게 필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편적 편견과 혐오를 통한 배척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냉철한 논의를 통해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외국인을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로 인해 인구 절벽에 직면해 있으며,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력, 세금 기반, 필수 서비스 인력이 모두 붕괴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이주민 유입은 성장이 아닌 현재 사회 구조와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약 265만 명을 기록하여 총인구 대비 약 5.17% 달한다. 중국이 약 36%로 가장 높고, 그 뒤를 베트남, 태국 등이 잇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의 5% 이상이 외국인으로 구성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였으므로, 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그들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행위보다 사회 통합을 촉진하고 공동체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모두에게 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근본적인 토대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우리가 이웃을 존중하지 않고 편견과 배타성으로 대하다는 것은 결국 국제사회에서 우리 국민이 겪는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도덕적 명분과 외교적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즉,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 사회 내의 배타적 시선에 갇혀 국제 인권기준을 무시한다면, 결국 세계 시민으로서의 우리의 지위와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다수의 폭력을 멈추고 보편적 인권을 실현하는 것은 단순히 외국인을 위한 자선이 아니라, 해외에서는 소수자가 될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더 넓은 세계 질서 속에서 당당한 주권 국가로 서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자기 성찰이자 생존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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