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보고서에 기반한 플랫폼 규제설계 원칙과 경쟁영향평가 실효성 제고방안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가 2023년 발간한 보고서 "경쟁과 산업정책 간의 상호작용"(Interaction between competition and industrial policies, TD/B/C.I/CLP/69)의 분석을 통해, 주요 국가의 경쟁 정책과 산업 정책은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하지만, 그 작동 방식에서 상호보완적이거나 혹은 충돌하는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보고서에서는 지난 10년간 디지털화, 지속 가능한 발전, 글로벌 경제의 침체와 같은 변화가 심화되면서, 이 두 정책 간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생산적인 상호작용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는 거대 온라인 플랫폼이 경제 전반을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현재 온라인 플랫폼 규제 설계라는 구체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법과 산업규제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혁신을 주도하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므로, 플랫폼 규제에 있어 경쟁법과 산업규제는 단순한 정책 수단의 나열을 넘어, 상호 목표를 극대화하는 입체적인 조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경쟁법과 산업규제는 본질적으로 다른 지향점을 갖는데, 전자는 시장의 효율성과 소비자후생 증진을 목표로 하며, 독점적 행위나 담합을 사후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반면, 산업규제는 특정 산업 분야의 육성과 보호, 기술 개발 촉진, 그리고 사회적 목표 달성과 같은 거시적이고 선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사전규제의 형식을 특징으로 한다.
전통적인 산업 구조에서는 두 정책의 목표가 명확히 분리되거나 혹은 산업규제가 경쟁을 제한하는 경우 경쟁법이 사후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 경제는 승자 독식 구조와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독점이 매우 빠르게 강화되며, 혁신 자체가 독점적 지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한 특징을 가지므로, 기존의 정립된 경쟁-산업규제 간 인터페이스를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온라인 플랫폼 영역에서 경쟁법이 직면하는 가장 큰 한계는 사후적 규제의 실효성 문제이다. 빅테크 기업은 독점적 지위를 활용하여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매우 빠르게 실행하므로, 이미 시장을 장악한 후에 경쟁 당국이 이를 시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특히 데이터 독점이나 알고리즘을 이용한 자사우대 행위(self-preferencing)와 같은 비대칭적 행태는 기존의 경쟁법(시장 획정을 통한 독과점 심사 기준 적용)으로는 그 위법성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거나 장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거대 플랫폼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killer acquisitions)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매수하여 시장에서 제거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축소시키는데, 이는 기존의 기업결합 심사기준으로는 간과되기 쉽다. 이러한 경쟁법의 "규제 공백"(regulatory gap)을 메우고, 플랫폼의 독점적 행위가 사전적으로 예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규제의 필요성과 입체적 조화 방안이 등장한다.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산업규제는 단순히 특정 기술을 육성하는 것을 넘어, 플랫폼 시장의 공정성(fairness)과 접근성(access)을 사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경쟁법의 목표를 선제적으로 지원한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시장법(DMA)은 이러한 입체적 조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DMA는 거대 플랫폼인 게이트키퍼(gatekeeper)를 지정하고, 그들에게 데이터 이동성 보장 의무, 자사우대 금지, 앱스토어 외부 결제 허용 등 구체적인 행위 의무(do's and don'ts)를 사전적으로 부과한다. 이는 경쟁법의 사후 심사를 기다리지 않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 환경이 조성되도록 구조적인 조건을 만드는 산업규제의 접근 방식이다.
보고서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경쟁 정책과 산업 정책은 지속 가능한 발전과 같은 새로운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상호 협력해야 하며, DMA는 "공정 경쟁" 환경 보장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규제가 경쟁법적 목적을 수행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논의에 대한 최신 시사점은 이러한 경쟁법과 산업규제의 결합에서 명확히 도출된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 논의는 주로 거래 공정화에 초점을 맞추어 대규모 유통업법과 유사한 성격의 산업규제 법안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와 국제적 동향을 고려할 때, 온플법은 단순한 거래 공정화 수준을 넘어 시장 지배력 남용 방지를 위한 사전적 규제의 성격을 강화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는 우리나라 경쟁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에 행위 규제의 권한을 부여하거나, 최소한 이미 도입된 플랫폼 독과점 심사 지침을 통해 데이터 독점, 알고리즘 차별 등 디지털 특유의 반경쟁적 행위에 대한 신속하고 예측 가능한 집행 기준을 마련하는 동시에, 온플법은 경쟁법의 장기적인 심사 부담을 덜고, 온라인 플랫폼 산업의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진입 및 퇴출 환경을 조성하는 산업 기반 규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경쟁법을 보완해야 하는 인터페이스 설계도를 제시한다.
나아가, 일관된 집행을 위한 규제 기관 간의 협력과 경쟁 옹호(competition advocacy)의 협력 강화도 필수적이다. 보고서에서는 경쟁 정책과 산업 정책 간의 긴장 관계를 해소하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기관 간 협력 및 조정의 필요성을 특히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ICT 규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통신 및 방송 규제), 공정거래위원회(경쟁 규제)가 온라인 플랫폼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목표와 관할권을 가지고 있어 규제 비효율이 발생할 위험이 매우 높다. 따라서 온라인 플랫폼의 혁신적 특성과 독과점적 폐해를 동시에 고려하기 위해서는 범부처적인 규제 협의체를 구성하고, 경쟁 옹호 기능을 강화하여 다른 부처의 산업 육성 등의 정책이 불필요하게 경쟁을 제한하지 않도록 사전 검토가 실질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경쟁 옹호 기능의 제도화 과정에서 OECD 경쟁영향평가 툴킷(competition assessment toolkit)을 결합하여 활용하는 것은 매우 생산적인 접근 방식이 될 수 있다. OECD 툴킷은 정부가 새로운 법률, 규제, 행정 조치를 도입하거나 기존의 정책을 개정할 때, 해당 조치가 시장의 경쟁을 불필요하게 저해하는지 여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도구와 방법론을 제공한다. 이 툴킷은 규제의 목표와 경쟁 제한 효과를 비교 분석하여, 동일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경쟁을 덜 저해하는 대안을 모색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OECD의 권고와 툴킷의 정신을 반영하여 2009년 1월부터 「행정규제기본법」상의 규제영향분석 단계에 경쟁영향평가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으나 그 적용이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우선, 온플법과 같이 플랫폼 시장의 진입과 행위를 규율하는 새로운 산업규제를 도입할 때, OECD 툴킷의 면밀한 적용이 필수적이다. 이 툴킷의 필수 질문(essential questions)(예컨대, '제안된 조치가 시장에 진입하거나 퇴출하는 능력을 제한하는가?', '제안된 조치가 기업이 자유롭게 가격을 책정하거나 생산량을 결정하는 능력을 제한하는가?')을 적용하여 규제의 경쟁 제한 효과를 사전에 정량적/정성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 결과가 특정 규제 내용의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실질력인 강제력을 갖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쟁법의 원칙을 침해하거나 혁신을 과도하게 저해하는 독소 조항을 사전에 효과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툴킷을 기존 법령 및 규제의 재검토로 확장해야 나가야 한다. 이미 시행 중인 ICT 관련 법령 중 플랫폼의 경쟁을 불필요하게 제한하거나, 특정 사업자에게 특혜를 주는 규제가 있다면 OECD 툴킷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규제 개선(regulatory reform)을 전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예컨대, 특정 기술 방식이나 표준을 강제하는 산업 진흥 규제가 사실상 신규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면, 경쟁영향평가를 통해 그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함으로써 경쟁법의 목표(시장 개방성)를 달성할 수 있다. 이처럼 OECD 툴킷은 경쟁법 집행 당국이 아닌 다른 부처의 산업 정책에 대해 경쟁의 렌즈를 들이대고 생산적인 정책 권고를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는 경쟁법의 사후적 제재와 산업규제의 사전적 행위 규율이라는 양축을 확립하는 동시에, OECD 경쟁영향평가 툴킷을 활용하여 규제 간의 충돌을 예방하고 협력의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즉, 규제 설계 초기에 경쟁영향평가를 의무화하여 규제의 정당성과 비례성을 확보하고, 규제 기관 간의 협의체를 통해 규제 집행의 중복과 공백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입체적이고 조화로운 규제 모델만이 거대 플랫폼의 독점적 폐해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고, 디지털 산업의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