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의 역설'을 넘어서

경쟁법,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서 공정성과 소비자후생 가치의 대립

by 날개

우리 사회는 지금 온통 '공정성'(fairness)'을 향한 열망으로 뜨겁다. 분배의 공정, 과정의 공정 등 사회 전반에서 공정이라는 가치는 최우선의 도덕적 척도로 요구된다. 그러나 법률 및 정책 전문가인 '마우릿츠 돌만스'(Maurits Dolmans)와 '완지 린'(Wanjie Lin)은, 2020년 전후로 디지털 경제에서 공정성 논란이 고조되던 시기에 작성된 그들의 논문 "경쟁정책에서 공정성 역설을 피하는 방법"(How to avoid a fairness paradox in competition policy, 2020)에서, 이처럼 널리 추앙받는 '공정성'이 사실은 "매우 부정확하고 모호한 도덕적 개념"이며, 정책의 기준으로 사용할 경우 오히려 일관성이 결여된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그들은 공정성의 개념이 인류의 깊은 진화적 뿌리를 가진 보편적인 본능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진화론적 게임 이론가인 '켄 빈모어'(Ken Binmore)는 공정성 감각이 '호혜적 이타주의'에 기반한 우리 마음의 "심층 구조"(deep structure)에서 나오며, 이는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균형을 선택했던 해답이 유전자 속에 새겨진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보편적 원칙을 찾으려는 노력은 서구 철학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순수한 합리성에 기반하여 도출하려 했던 '정언 명령'이 그러하며, 롤스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뒤에서 사회 체제를 설계하는 '원초적 입장'이라는 사고 실험을 통해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보편적 규범은 '필 코닝'(P. Corning)이 제시한 '평등'(필요 충족, equality: basic needs), '공평'(능력에 따른 분배, equity: merit), '호혜성'(기여 의무, reciprocity: obligation to contribute)이라는 세 가지 원칙으로 공정성을 정의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심층 구조'와 이상적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관찰되는 공정성의 규범은 문화적, 상황적, 개인적 변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행동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 '잭 크네치'(J. L. Knetsch), '리처드 탈러'(R. Thaler, 1945-)가 1986년에 수행한 연구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들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기업의 가격 인상이나 임금 결정에 대해 공정성을 판단할 때,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만장일치에 근접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찬반 의견이 3:1 또는 2:1로 나뉘는 '불일치'를 보였다. 이는 비교적 동질적인 문화권 내에서도 공정성에 대한 개인의 기준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주관적인지를 입증한다. 더 나아가 스페인, 미국, 일본의 그룹을 연구한 '핑켈'(Finkel) 등의 실험은 미국인이 "결과"에, 스페인인이 "개인의 존엄과 존중"에 공정성의 가치를 두는 등, 그 판단 기준 자체가 문화적 가치에 따라 "현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저자들은 이러한 공정성의 모호성이 '공정성 역설'(fairness paradox)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공정성은 법과 정책에 반영되어야 할 도덕적 개념으로 인식되지만, 막상 정책의 집행 기준이 될 경우 그 다양한 해석 때문에 일관성 없고, 불공평하며,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 정책의 영역에서 이러한 역설은 더욱 심각하다. 경쟁법은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소비자후생을 증진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이는 본질적으로 경쟁에서 승리한 유능한 기업이 대가를 얻고, 비효율적인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을 용인하는 공리주의적 결과론에 가깝다.


그러나 공정성이 요구하는 가치들, 예컨대 '결과의 평등'(redistributive justice)은 모든 개인에게 자원을 균등하게 분배하거나 약자를 특별히 보호하려 하며, 이는 경쟁법의 기본 전제와 상충한다. 또한, 공정성이 강조하는 '호혜성'이나 '상호 협력'은 경쟁법에서 담합이나 경쟁자 간의 정보 공유로 의심받는 행위로 간주되어 엄격히 금지된다. 경쟁법은 기업들에게 스스로의 정보와 자원을 확보하고, 서로에게 경쟁적 투자를 하도록 촉진하며, 협력보다는 경쟁을 요구한다. 즉, 공정성이 미덕이 되는 지점에서 경쟁법은 극도로 회의적이며, 이 둘은 양립하기 어려운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고 그들은 강조한다.


결국, 저자들은 공정성이 경쟁 정책의 객관적인 척도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공정성은 그 도덕적 색채 때문에 강력한 '수사적 수단'(rhetorical flourish)이 되며, 청중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내는 매력적인 도구이지만, 이 모호함이야말로 조작자에게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공정성이 의미하는 바가 개인과 문화에 따라 다르고,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를 정책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엇이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영원히 해답 없이 방치하는 것과 같다. 대신 경쟁 정책은 '소비자후생'과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명료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집중해야 하며, 공정성이라는 미명 하에 비효율적이고 일관성 없는 결과를 낳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고 그들은 역설한다.


그들은 공정성 논쟁에 영감을 받아 공정성의 개념(평등, 공평, 호혜성 등)을 AI 시스템의 '윤리 모듈'에 설계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지만, 반독점 집행에 있어서는 법적 개념으로 휘두르기보다는 증거 기반의 경제학적 분석을 엄격하고, 공정하며, 균형 잡힌 절차를 통해 적용함으로써 공정성을 달성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소비자후생', '능력에 기반한 경쟁'(competition on the merits), '효과 기반 분석'(effects-based analysis)과 같은 신중하게 다듬어진 기준에 계속 의존해야 하며, 공정성은 기껏해야 최후의 안전장치나 보조적 테스트로만 기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정성이라는 미명 하에 기업에게 경쟁사와 동일하게 자사를 대우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혁신 및 투자 동기를 감소시켜 반경쟁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고, '탐욕'과 같이 기업의 수익 동기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경쟁과 발명의 근본 동력인 야망을 왜곡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는 오히려 유럽 자유 시장 경제 모델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포퓰리스트들이 유권자를 조작하기 위해 이용하는 '반엘리트' 적대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엄격한 사실, 경제, 법률 분석을 무시하고 감정적인 공정성 호소에 기반하여 거대 기업을 제재하는 것은 결국 혁신을 늦추고 효율성을 저해하여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물론 경쟁법이 우리가 직면한 시대의 문제들, 즉 경제적 불평등, 부의 격차, 디지털 기술의 파괴적 효과, 프라이버시 상실 등 포퓰리즘의 근본 원인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경쟁법이 이러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어도, 그 역할은 확립된 법적 원칙을 훼손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문제는 별도의 입법, 세금, 복지, 교육, 환경 보호, 프라이버시 규제 등 다른 정책 수단을 통해 더 적절하게 해결될 수 있으므로, "공정성" 기준에 기반한 경쟁 정책은 올바른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경쟁 정책 집행에 두 가지 목표를 추가로 제시하는데, 첫째는 경쟁 당국은 조사 절차에서 적법 절차(due process)를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조사와 심의 조직의 분리, 투명성 확보 등 심사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 요건으로 제시한다. 둘째, 정치적 고려 없이 경쟁법을 객관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기존 제도와 법률이 엄격한 분석을 기반으로 성장과 혁신, 소비자후생을 보호할 수 있음을 경쟁 당국이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법이 보호해야 할 소비자후생은 가격, 수량, 품질뿐 아니라 혁신, 선택, 기후 보호나 프라이버시와 같이 가격에 내재화되지 않은 요소들을 포괄하도록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목표를 통합하는 것 역시 공정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분석 도구를 정교하게 다듬어 성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그들은 말한다.


저자들은 경쟁 정책이 직면한 '공정성 역설'을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향으로 '소비자후생'의 개념을 비가격 요소까지 확장하여 적법절차와 증거기반 분석을 기반으로 통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근본적인 의문이 발생한다. 공정성 자체가 "너무 주관적이고 모호하여 법적 확실성을 해친다"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제시하는 프라이버시나 기후 보호 같은 가치들 역시 본질적으로 사회적, 도덕적 합의가 필요한, 공정성 못지않게 불명확하고 가변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즉, 저자들이 경계했던 '모호한 도덕률'을 대신하여 '새로운 형태의 모호한 사회적 가치'를 경쟁법의 분석 틀에 통합하려는 시도는 기준의 불명확성이라는 근본적인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또한, 소비자후생 확장 방식도 결국엔 공정성이라는 가치평가를 수치화시켜야 하는 결론애 도달하게 되므로, 답이 없는 '가치' 문제인 것은 결과적으로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시각의 논의는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이 자체가 디지털 경제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많은 예견치 못했던 경쟁문제들이 이미 수면으로 떠올랐다는 방증이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있어서 소비자후생 v 공정성 가치의 대립은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핵심 과제이며, 경쟁법은 아마도 '영원히' 명확한 법적 기준과 불명확한 시대적 가치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는 최첨단에 있는 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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