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사유와 문법

The rationale and grammar of regulation

by 날개

법학과 경제학이 만나는 교차지점(crossroad)에 위치하는 경쟁법 논쟁의 중심에는 ‘어떤 기준으로 시장을 바라볼 것인가’, '어떤 시장이 바람직한 모습인가'에 관한 근본적이고도 철학적인 의문이 존재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법학이나 경제학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배경에 놓인 철학적·사회학적 사유들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포스팅에서는 법철학의 세 가지 갈래의 주요 흐름을 살펴본 바가 있고, 이전 다른 포스팅에서도 법철학자들의 사상이 경쟁법에 주는 사유와 함의에 대하여 짚어 보았다.


롤스는 ‘정의는 공정성’이라 했고, 법경제학의 창시자 포스너와 같은 공리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했다. 하트는 법을 사회적 규칙의 체계로, 라즈는 법을 권위와 도덕적 정당성의 결합으로 보았고, 드워킨은 법을 도덕적 해석을 통해 권리를 실현하는 규범으로 보았다. 하버마스는 민주적 의사소통과 합리적 담론을 통해 사회의 정당성을 모색했고, 푸코는 권력과 지식이 얽힌 사회구조를 비판하며 권력의 미시적 작동을 탐구했다. 라캉과 데리다는 주체와 언어, 의미의 해체를 통해 전통적 질서와 권위를 재검토하는 데 집중했다. 이 법철학자들은 관점은 서로 전혀 다른 듯 보이지만, 오늘날 경쟁법 논쟁의 밑바탕에 흐르는 중요한 가치의 갈등과 연결된다.


경제학 측면에서 경쟁법의 두 축을 이루는 하버드학파(Harvard School)와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는, 철학적 차이를 경제학적 언어로 풀어내면서 뚜렷한 대립을 형성한다. 시카고학파는 포스너가 대표하듯 법실증주의와 공리주의를 경제학적 분석으로 구현한 진영이다. 이들은 법과 도덕을 분리해 생각하며, 경쟁법의 주된 평가기준을 소비자후생(consumer welfare)과 경제적 효율성에 둔다. 온라인 플랫폼의 독점 현상도 경제적 효율성 관점에서 판단하며, 시장 자율 조정을 통한 혁신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반면, 하버드 학파는 롤스의 ‘공정성’ 개념에 가까운 법철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시장의 권력 집중과 독점적 지배를 문제 삼으며, 민주적이고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중시한다. 푸코가 지적한 권력의 작동 방식을 경제적 권력에 빗대어 비판하고, 하버마스의 민주적 담론과 의사소통 이론을 수용해 시장 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주장한다. 이는 201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 경제와 플랫폼 권력 집중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한 신 프렌다이즘(New Brandeisism)의 이론적인 토대가 된다.


결국, 오늘날 경쟁법 논쟁은 ‘공정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철학적 가치가 경제학과 법학의 접점에서 격돌하고 있는 모양새다(이에 관하여는 여기를 참고). 살펴본 바와 같이, 시카고 학파의 경제학적 효율성 추구와 하버드 학파의 민주적 경쟁질서 수호는, 각기 다른 시대 정신과 철학적 전통에서 출발해 오늘날 경쟁법 정책 결정의 핵심 축을 이루게 되었다. 한편, 경쟁법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디지털 경제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는 이 논쟁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거대한 빅테크들은 네트워크 효과와 데이터 독점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초격차를 벌여가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의 AI 시대를 넘어서 이제 곧 도래할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SI(Artificial Superintelligence)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게 될지 그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는 단순한 경쟁의 문제가 아닌 자본과 권력의 초집중이 현실화된 '통제의 시대'가 도래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미래의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와 질서를 우선할 것인지, 법과 경제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는 자본과 권력의 힘의 논리나 불투명한 음모를 통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어떤 시장과 사회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고민과 논쟁은 투명한 공론장에서 우리 모두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숙고'(independent and autonomous deliberation)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규제에 대한 사유는 나의 문법을 통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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