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베일 속에서 깨닫게 되는

존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

by 날개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모든 개인적, 사회적 모든 지위와 정보를 다 포맷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에 가려져 이상적인 사회제도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사회를 선택할까? 이러한 가정은 비현실적이고 꿈과 같은 이야기지만,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는 그의 저서 'Theroy of Justice'(정의론)에서 이러한 가정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하여 그 원칙을 도출하였다. 이에 관한 자세한 얘기를 Raymond Wacks 교수의 저서 'Philosophy of Law'(4. Rights and Justice)를 일부 참고하여 살펴본다.


롤스가 말하는 정의는 'Jutice as Fairness'(공정으로서의 정의)이다. 그는 사회적 후생(welfare)을 최대화할 수 있는 경우에도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는다. 후생은 이익(benefit)에 관한 것이 아니고 자기존중(self-respect)을 포함하는 주요한 사회적 재화(primary social goods)라고 전제하고, 정의의 문제는 행복의 문제보다 중요하며 어떤 쾌락도 정의롭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롤스는 무엇이 '좋은가'보다 무엇이 '옳은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리주의자(Utilitarian) 들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선이라는 주장이나, 소비자후생(consumer welfare)을 우선 시하는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의 소비자후생론과는 확연하게 대비된다.


롤스는 먼저 사회계약론을 확장시켜 나가는데, 사회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초기에 각자의 평등한 위치를 전제로 결사(association)된 것이라고 하면서, 정의의 원칙은 계약의 중요한 전제 구조가 되는 원칙이므로 사회적 협력과 정부의 형태도 이러한 원칙에 구속된다고 한다. 그는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진정한 판단과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직관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데, 둘 사이의 간극을 인정한 후 스스로의 판단을 재검토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균형적으로 조화를 이룬 상태('reflective equilibrium')에 도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롤스는 모든 사람이 가진 원래의 위치를 백지화시킨 원초적 상태에서 '무지의 베일'에 가려져 만장일치로 살아갈 사회 제도를 선택하는 상황을 상상한다. 즉, 성별, 계급, 종교 등 사회적 위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이 똑똑한지 멍청한지, 힘이 센지 약한지,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나 계층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과학과 심리학의 법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특정 사회 제도를 선택하게 된다면 어떨까?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최대한 머리를 굴려 합리적인 선택할 것인데, 롤스는 사람들은 자신이 최악의 자리에 놓였을 경우에도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즉, 'maxmin'(최대최소)의 원칙을 적용한 결과다. 롤스는 무지의 베일 아래에서 사람들이 다음 두 가지 원칙에 합의할 것이라고 보았다.


평등한 자유의 원칙 : 모든 개인은 모두를 위한 자유가 양립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로 보장되는 기본적인 권리를 동등하게 가져야 한다.

차등의 원칙 :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도록 허용되며,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의 부여를 통해 개방된 공직에 연결되어야 한다.


두 번째 차등의 원칙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 원칙은 불평등이 사회 전체의 이익, 특히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때만 용인될 수 있다는 것, 불평등을 낳는 모든 직책이나 지위가 특정 계층에만 독점되지 않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실질적으로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즉, 정의로운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롤스의 이론은 여러 분야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 가치관, 심지어는 자신의 재능이나 삶의 목표까지도 모른다는 극도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하여 현실의 인간을 도외 시한 점이 지적된다. 또한,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과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롤스의 '차등의 원칙'이 개인의 정당한 소유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하는데, 이들은 개인이 노력과 재능으로 얻은 재산은 그 사람의 것이며, 국가가 이를 강제로 재분배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일종의 약탈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즉, '정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오히려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보호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논쟁은 결국 어떤 제도와 규제를 선택할 것이냐는 본질적인 문제와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특히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드는 경제법의 영역이나 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의 현안에서는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경제와 법의 복잡한 문제를 떠나서, 공정성과 관해 롤스의 '무지의 베일' 상상 실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관계와 거래 속에서 사람이든 기업이든 모든 계급장을 다 떼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정의가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John Raw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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