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하여

by 날개

나는 문득 내가 글을 쓰는 행위가 습관적 반복적으로 사람들의 지속적인 주의와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가치 없는 일을 하는 것이거나, 오히려 기존의 있던 생각과 글을 가공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으로 포장한답시고 오히려 퇴행의 과정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말년의 그의 저서 'Parerga und Paralipomena'에서 '저술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저술가'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거나 경험을 통해 그것을 전달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 그 자체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과,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쓰기 위해 생각하는 사람이다. 후자인 사람은 원고지에 글을 메우기 위해 글을 쓰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고 불확실하고 불명료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 글에는 단호함과 명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저술가가 소득을 얻기 위해 글을 쓴다면 타락하고 말 것이라면서, '명예와 돈은 같은 자루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스페인 격언을 인용한다. 이러한 저술가는 신간만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대중에 의존해 살아간다면서 출판계에 일침을 가하고, 그들을 '날품팔이'에 비유한다. 이에 관해 어떤 사람이 내적인 소명이나 충동에서 나온 글로 명성을 얻은 다음 그로 인해 다작가가 된다면 돈 때문에 명성을 팔아치운 것이라고 그는 부연설명까지 한다.


이어 그는 또 세 가지 부류의 '저자'를 얘기하는데, 사고를 하지 않고 (기억과 추억을 바탕으로 하거나 남의 책을 직접 이용해서)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쓰면서 사고하는 사람, 사고하고 집필에 착수하는 사람이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세 번째 저자 부류는 극소수라고 하면서, 이 중에서도 남이 말한 것과 제공한 사상을 넘어 사물들 자체에 대하여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머리에서 직접 소재를 취하는 자의 글만이 읽을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여러 책에서 소재를 취한 책은, 저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되도록 적게 읽는 것이 좋으며, 새롭게 편찬된 글이 이전의 글보다 진보했다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역설한다. 이는 집필자가 이전의 책들을 철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자기 식으로 고친다며 명확하고 잘 표현된 글을 개악해서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그는 전문 분야에서는 정평 있는 대가의 작품을 읽어야 하고, 최신 내용이 담긴 책 보다 중고서적을 사는 편이 낫다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인용한다.


"좋은 것은 짧은 순간만 새로운 것이므로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쇼펜하우어는 글쓰기를 맑고 정제된 사고의 증거로 보았다. 그의 글을 읽어 보면 아주 명료한 그의 생각이 드러나고 핵심을 비켜가지 않는 통쾌함마저 느낄 수 있던 이유였던 것 같다. 그의 시각에서 글은 이미 완성된 사유가 종이에 옮겨진 흔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쇼펜하우어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인생의 과업이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더 읽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써놓고 여러 번 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좀 더 명료한 생각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에세이 작가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는 그의 저서 '수상록' 서문에서 "내가 의도한 것은 화려한 업적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이다."라고 밝히며, 글을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 과정으로 삼았다. 또, 그는 "내가 이 책에서 하는 말은 모두 내 순간순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자신의 생각이 흔들리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조차 기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몽테뉴에게는 어찌 보면 글쓰기는 사고의 실험이었던 것이다.


몽테뉴가 글에 대하여 미완의 사유가 잠시 머무는 흔적이라고 여긴 것은 상당한 의미와 여운을 남긴다. 우리의 생각은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고, 어떤 영감은 갑자기 찾아왔다가 떠나갈 수도 있다. 그 어떤 시점의 나의 생각을 글이라는 증거로 남기는 행위는, 생각을 추상된 언어로 가두어 버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글이라는 단서를 통해 언젠가 그 생각으로 다시 빠져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줌으로써 인생을 좀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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