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공평-평등과 '경쟁'
'공정'(公正, fairness)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공평하고 올바름'이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평은 또 무엇인가? '공평'(公平, equity)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고름'을 의미한다. 그러면 공정은 공평에 올바름(正義, justice)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공평과 '평등'(平等, equality)은 같은 의미인가? 평등한 것은 정의로운 것인가? 공평하지 못한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용어의 미묘한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것 같고, 현실에서는 상황에 따라 적당하게 사용하여도 사실은 큰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뫼비우스의 띠에 들어온 것처럼 헷갈리는 상황에서 이 용어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아 엉킨 실타래를 풀어볼까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공평권도 공정권도 아닌 평등권을 보장한다. 평등권은 국가가 모든 국민을 차별 없이 고르게 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뭔가 차별이 있기 위해서는 차별의 비교 대상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헌법에서도 모든 사람을 조건 없이 똑같이 대우하는 사전적 의미의 평등은 평등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이다. 즉, '본질적으로 같은 것은 같게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할 것'이 요구된다. 다만,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할 때, 자의적인 기준에 의하면 그 차별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관점에서 차별대우의 정당성이 필요한데, 규제의 목적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고려에 기인하거나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합리적인 이유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 두 비교대상 사이의 차별대우와 차별목적의 상호관계를 비례의 원칙을 기준으로 한 허들을 한번 더 넘어야 한다. 즉, 정당한 차별목적이 있어야 하고, 자별대우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적합해야 하며, 차별대우가 불가피하여야 하고, 차별대우를 통하여 달성하려는 입법목적이 그 성질과 비중에 있어서 차별대우를 정당화할 정도로 현저하고 중대한 것이어야 한다.
결국, 평등의 법적인 의미는 사전적인 것과 같이 조건 없이 고르게 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각 개인의 고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우하는 공평 내지는 형평의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철학자들의 정의에 관한 생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이나 사람은 각각 고유한 영역을 차지하며, 그 영역을 넘어서는 일은 '불의'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과 소질 덕분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넓은 영역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들이 더 많은 몫의 행복을 누려도 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합당한 몫을 주는 것이 정의라고 인식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귀족이었으니, '정서적 빈곤에 빠져 잘난 체한다'는 현대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예컨대 능력에 따른 공평한 대우가 정의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벤담과 공리주의자들은 정의를 평등으로 해석하는데, 두 사람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올바른 결정 방향은 전체의 최대 행복을 산출하는 쪽이며, 어느 쪽이 행복을 누리는지 그들에게 어떻게 배분할지는 따지지 않는다. 이에 따르면 정의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대비시켜 편들지 않고 오로지 관련된 행복의 양만을 고려할 때 실현된다.
우리는 이제 공정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해처럼 공정은 단순히 동일하게 나누는 것이 아니고, 상황과 기여에 따른 합리적인 배분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면, 측정할 수 없는 불공정을 식별하고 제도적 장치로 이를 완화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공정은 효율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에, 공정은 정의의 문제이고 인간 존엄의 문제이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신뢰의 문제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라는 정언명령을 통해, 칸트가 '어떤 제도나 거래도 인간을 착취하거나 수단화할 경우에는 불공정한 것'이라고 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이러한 '공정'(fairness)을 실현하기 위해 태어난 경쟁법에서 공정성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 과정'이 불공정하게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 남용을 방지하고 불공정한 행위를 규제하여 시장참여자가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하도록 보장함으로써, 소비자와 소규모 사업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그 숙명으로 한다. 경쟁법에서의 ‘공평'(equity)은 개별 시장참여자의 시장 지위와 개별적인 속성을 고려하여 공정한 ‘결과’를 보장한다는 개념으로서, 특히 약자 보호와 시장 균형의 맥락에서 논의된다. 즉, 중소기업, 신생기업, 소비자 등 취약한 지위에 있는 경제주체를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횡포로부터 보호하여 시장에서 공정한 분배를 보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평등'(equality)은 경제주체가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하며, 결과보다는 ‘기회’의 공정을 중시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정', '공평', '평등'처럼 흔하게 쓰이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말도 드물다. 상황마다 맥락이 다르고 사람마다 주관적이어서 언제나 긴장과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러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