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결합이 디지털 생태계에 끼치는 해악?

디지털 생태계의 미래를 예측하라

by 날개

남녀 간의 결합은 혼인신고를 해야 하듯, 회사 간의 결합도 신고를 해야 되는데, 그것을 '기업결합 신고'라고 한다. 어떤 회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소유)하거나, 다른 회사와 합병하거나, 다른 회사의 영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양수하는 경우, 회사 임원이 다른 회사의 임원을 겸임하는 경우 두 기업이 결합되는 것으로 본다. 기업결합 신고는 각 시장이 속하는 나라의 경쟁당국(우리나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이 심사한다. 왜냐하면, 기업결합을 통해서 덩치가 커진 기업이 특정 '관련시장'에서 독과점 회사가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 기업결합 심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대한 공룡이 된 몇몇 온라인 플랫폼은 자신과 수평적 관계에 있는 경쟁자는 물론이고 수직적 관계인 수요·공급 채널에 있는 플랫폼, 유망한 스타트업 등 수많은 기업과의 결합을 통해 그 덩치를 키워왔다. 유럽연합에서는 경쟁당국이 이들의 기업결합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느슨한 심사기준을 적용하여 결국에는 '게이트키퍼'의 출현을 억제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있다.


디지털 시장의 기업결합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추가 이용자에게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이 플랫폼에게 최소한의 한계비용만 발생시키는 ‘규모의 경제’와, 특정 플랫폼에서 다양한 여러 가지 서비스를 더 낮은 비용으로 확장하여 제공할 수 있는 ‘범위의 경제' 효과를 들 수 있다. 대형 온라인 플랫폼은 연쇄적으로 검색-쇼핑-SNS 등으로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쉽게 확장해 나갈 수 있고, 이를 통해 직접·간접적인 네트워크 효과를 크게 누릴 수 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이 제공하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연결되어 시너지 효과를 크게 낼 수 있게 되면 몇몇 공룡이 디지털 생태계를 독식하게 된다. 특정 플랫폼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제품 또는 서비스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이용자에게 커다란 편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이용자는 해당 플랫폼을 떠나지 못하게 된다(lock-in).


전통적인 시장에서는 경쟁사 간의 수평적 기업결합, 수요·공급채널 간의 수직적 결합이 많았지만, 변화가 무쌍하고 합종연횡이 잦은 디지털 시장에서는 자신의 업종과 유사성이 떨어져 다른 시장으로 분류되거나, 지역적으로도 저 멀리 있는 기업과 결합하는 일이 빈번하다. 예컨대, 미국 호텔 온라인 여행사(OTA)가 북유럽의 항공 온라인 여행사를 인수를 시도한 것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쳇 GPT(AI) 주식을 인수한 것 등이다. 이런 경우에는 기존의 전통적인 해악 이론(theory of harm) 이론만으로는 경쟁에 미치는 해악을 포착하기 쉽지 않아, 그 시장을 더 크게 보고 관련 '생태계'(ecosystem)를 전체를 거시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이론이 부상했다. 예를 들어, 합병회사와 피합병회사가 합쳐진 결과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관련시장을 넘어서 주변 '생태계'에 독과점이 발생할지를 예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유럽연합의 경쟁당국인 유럽집행위원회는 Booking/eTraveli 기업결합 사건에서 이 이론을 적용하여 합병을 불허한 사례도 나왔다. 항공OTA-호텔OTA가 결합하면 원스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미국 OTA의 약점인 유럽 내 항공연결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여행 생태계 독점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이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여기를 클릭).


아무튼, 매우 동태적이고 변화가 민감한 디지털 시장의 특성에 비추어 불확실한 미래를 전제로 하여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해악을 분석하고 포착하여 합리적으로 추정해 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나마 가격, 품질, 수량 등 측정이 비교적 가능하고 도구가 개발된 소비자후생 기준과는 달리, 이 기준은 측정이 거의 불가능한 비경제적 해악(non-economic harms) 지표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화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AI 기술을 포함하여 ICT 기술의 급격한 진보가 가속화된 요즘, 시장의 혁신과 발전을 해치지 않으면서 독과점의 해악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심사도구의 개발을 위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생태계 해악이론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아직 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는 생태계 해악이론은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이 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예측 가능성을 낮추고 오히려 과잉규제(false positive)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도입을 서두르기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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