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사이버 세계의 수많은 연결고리에 과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디지털 속 관계와 활동이 돈과 직결되기에 더욱 집착하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역설적인 삶, 즉 공허함을 안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모순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연결고리를 가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가장 깊은 심연의 단절감을 느낀다.
그런데 본디 인간은 어차피 외로움을 안고 사는 존재이다. 이 근원적인 고립감은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성찰대로 인간이 세상에 던져져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절대적 자유에서 오는 근원적인 불안일 수도 있고, 혹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889) 분석대로 사랑과 애착의 에너지인 '리비도'가 향해야 할 대상을 상실하거나 찾지 못해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초연결 시대의 이 단절감의 원인은 이러한 근원적 외로움을 넘어, 기술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감금'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스크롤 중독이라는 늪에 빠져 수많은 '좋아요'를 타인의 삶에 날려 보내지만, 정작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진정한 메아리는 듣지 못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을 완벽하게 예측하여 듣고 싶은 목소리만 울려 퍼지는 '반향실'(echo chamber)을 만들고, 이 '따뜻한 감옥' 속에 우리를 정교하게 가둔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처럼, 이 예측 가능한 틀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격리된다.
진정한 현존(dasein)은 본래적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지만, 우리는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 속에서 그 현존을 상실하는 모순에 빠진다. 우리는 보정되고 편집된 화려한 디지털 가면을 쓰고 진짜 얼굴은 뒤로 숨긴 채 살아간다. 그래서, 관계망이 빛의 속도로 확장될수록, 그 관계의 밀도는 '0'에 수렴하는 공허함이 된다.
결국, 인간은 가장 시끄러운 디지털 광장에서 가장 빛이 닿지 않는 섬이 되어 버린다. 모든 연결고리를 가졌지만 자신과 연결되지 못한 파편화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설이야말로 기술적 풍요 속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마지막 성찰의 불씨이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깊은 결핍은, 군중의 시선을 멈추고 스크린 너머의 그림자가 아닌 내 안의 진실로 눈을 돌리라는 영혼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은, 낯설게 방황했던 자아를 '나 자신'이라는 영원한 고향으로 향하게 하는 유일한 '귀로'(歸路)이다. 비록 그 길이 멀고 지난할지라도 말이다.
복잡한 외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좁은 방으로 돌아와(歸來), 불을 끄고 홀로 내면을 성찰하며 자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시인 윤동주(1917-1945)는 '돌아와 보는 밤'(1941)이라는 시를 통해 고백한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空氣)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 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