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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IN Apr 15. 2024

신분 사회

유용주

평소에 돼지로 살다가

술에 취하면 개새끼였다

평생을 머슴으로 살았다

평생을 종으로 살았다

한 번도 양반이었던 적이 없었다


늦가을 홀로 반바지 입고 팔공산을 내려오는데

석천리 청년 회원 여섯 명이 버섯 따러 올라와 깜짝 놀란다


―안 무섭소?

―뭐가 무서운가요?

―짐승이 무섭지, 뭐가 무섭겠소

―멧돼지들이 만나면 아재 아재 부르는데······


산짐승보다 사람이 무서웠다

사람이 짐승보다 무서웠다


엊그제 새벽에는 나 닮은 무리가

옥수수밭을 박살내고 돌아갔다

내년부터 산짐승이 좋아하지 않는

나무를 심어야겠다


마을 주민들은 망을 두르거나

민원을 넣어 전기가 흐르는 선을 설치하라고 한다

나는 그만두었다

고라니나 멧돼지보다 사람이 훨씬 더 위험하다


담배와 술을 끊었다

돈을 끊었다

인간관계를 끊었다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비로소 사람이 짐승으로 보인다



유용주,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겨 (문학동네시인선 104)", 문학동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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