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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Sep 25. 2024

사하에서 보낸 하루

<감천 문화마을 일부>

 인터넷으로 미리 살펴둔 교통편을 이용해서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감천 마을로 향했다.  부산지하철 1호선을 타고 토성역 6번 출구로 나와 부산대학 병원 앞에서 마을버스 2번을 탔다.

  「감천 문화마을」은 이름만으로 생각했던 위치와는 달랐다. 위치만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을 형태도 사진으로 본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서울로 이사 가기전 부산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어 더욱 낯설었다. 감천동은 50년대 전쟁을 전후해 생겨난 태극도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집단촌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산토리니, 레고 마을 등으로 불린다지만 난 단번에 오래전 여행을 갔던 이탈리아의 친퀘테레가 떠올랐다. 그곳은 다시 가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감천 마을은 친퀘테레처럼 바다와 바로 붙어있지는 않아도 마을 분위기가 흡사했다. 언덕을 터전 삼아 색색의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미로 같은 길이 이어진 가파른 계단들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오전의 영글지 않은 볕을 받으며 그들 틈에 섞여서 또 다른 이방인이 되어 골목을 누벼보았다.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란 글귀가 대문도 없는 미닫이 출입문에 붙어서 주인장의 마음을 대신하는 집을 발견했다. 민들레나 야생화가 어울릴 듯한 마당 모서리에는 꽃대 튼실한 제라늄이 빨갛게 웃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곳 장독대 옆에서 자리 잡고 살았던 터줏대감처럼 보였다. 마당이 집주인의 영토인지, 좁은 골목길인지 모를 그곳을 지나다 보니 아득한 꿈속의 풍경 같기도 하고 가보지 못한 어느 별나라 같기도 하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달구어진 볕이 피로와 함께 등짝에 붙었다.

  마을 전경과 멀리 감천항을 볼 수 있는 언덕 위 조그만 다과점에서 생강차 한 잔을 주문했다. 따끈한 차에 마음을 기대고 잠시 쉬었다. 다시 거리를 눈에 담으며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았다. 감천 마을이 레터링 되어있는 에코 가방을 하나 사고는 기웃거리던 골목을 벗어났다. 골목 끝점에 노랑 병아리 모양이 달린 작은 핀을 파는 곳이 눈에 띄었다. 천 원을 주고 산 병아리 핀을 머리에 달고나니 어린 왕자처럼 아기 공주처럼 몸과 마음이 달떴다. 그 감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사하구 신평동에 있는,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돼지국밥집을 찾았다. 이 역시도 이번 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지매, 머리에 빼가리 달았네.”

  국밥을 건네주는 아주머니가 약간의 의구심이 묻은 말로 인사를 건네면서 나를 살펴본다. 빼가리는 병아리의 사투리다. 참 오랜만에 들어본 잊어버렸던 고향 사투리에 나도 반가워 너스레를 떨었다.

  “감천 마을에 갔더니 이게 나를 꼬시길래 귀여버서 달아 봤심더.”

  아주머니는 그곳에 갔다 왔다면 늙은 여자 머리에 빼가리가 달려도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건넨다.

  이상해 보이는 여자에게 무심한 듯이 안녕을 물어서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나그네의 마음을 툭 건드려 보는 주인장의 마음 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마음도 배도 든든해진 나는 다대포로 향했다. 1호선 종착역인 다대포 해수욕장 역에서 내렸다. 다대포항은 부산의 여느 바닷가와는 약간 달라 보였다. 지하철역에서 백사장까지 가는 길에는 고층 빌딩이 아닌 솔숲이 바닷바람과 속살거리고 바다는 수평선 위로 노을을 이고 있다. 끝없어 보이는 모래톱 자락엔 바래기(바랭이)와 온갖 잡풀들이 주인처럼 푸르름을 빛내고 있었다. 태곳적의 바다 한 귀퉁이를 뚝 떼다 놓은듯했다.

  모래톱에 발을 적시며 사부작사부작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몰운대와 이어진 해변의 끝자락에 닿았다. 그곳에 해당화가 붉게 피어 있었다. 해당화라니! 섬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꽃인 줄 알았다. 다대포가 이런 곳이었다니 감동과 그동안 한 번도 와 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함께 느꼈다. 꽃은 세 송이가 달려있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고 있는 꽃송이, 화양연화처럼 만개한 꽃송이, 입을 반만 벌린 꽃송이가 달려있었다. 꽃을 보니 요병원에 누워계신 엄마 생각이 났다. 한때 저 모든 과정을 거쳐오면서 인생을 살았으리라. 비록 숨은 쉬고 있으나 표음하지 못하는 엄마는 마지막 한 잎만 남겨놓고 져버린 꽃이다. 가엽지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해서 더 아프다. 엄마의 길이 나의 길이기도 할 것 같은 생각을 애써 파도 속으로 밀어 넣어 본다.

  다대포 해수욕장은 화려한 해운대나 광안리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내 마음에 남아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

  아직 해가 걸려있다. 몰운대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몰운도沒雲島 라는 섬이었는데 낙동강 하구에서 밀려와 퇴적된 토사가 다대포 해수욕장과 연결되어서 몰운대沒雲臺라 부른다고 한다. 이름처럼 안개와 구름 때문에 시야가 흐릴 때가 많다고 하는데, 날씨가 참 좋아서 오월의 신록이 더 빛났다. 바다와 맞붙어서 수백 년의 사연을 담은 아름드리나무들이 해풍을 맞고 버티고 있었다. 울창한 숲을 걷다가 사백여 년 전 부산포 해전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정운공 순의비』를 만났다. 역사 앞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사하구의 또 다른 절경으로 빛나고 있는 몰운대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주위가 어둑해져 왔다.

  항구에 왔더니 비린 것이 먹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찾지 않고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물었다.

  “생선구이 잘하는 집이 있을까요?

  “조오기 골목 끝에 정식 식당 비죠. 그 집에 가면 생선구이도…”

  어둑한 낯선 거리에서 더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서너 개의 탁자에 생선구이와 초록색 술병을 두고 사내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순간 잠시 망설였다. ‘어쩔까? 도로 나갈까’ 하는 생각과는 반대로 “생선구이 됩니꺼?”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이층에 자리가 있다는 주인을 따라 허리를 굽히고 올라가 본 다락에는 이미 두 팀의 노동자들이 밥인 듯 술인 듯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테이블로 안내받았다. 예전 같으면 도로 나왔을 텐데….

  어느새 내 귀가 옆 테이블에 가 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다대포에서 마주 본 해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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