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지진뿐이랴
2016년, “어제는 파라다이스이더니 오늘은 ‘단테의 인페르노’로구나!”
신문기사에 인용된 아마트리체 지진을 겪은 어느 관광객의 말이다. 인페르노는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가 쓴 서사시 ‘신곡’의 ‘지옥편’을 말한다. 2016년 8월 24일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아마트리체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6.2의 지진은 292명의 비극적인 인명피해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사진엽서의 고장이자 ‘알아마트리치아나 스파게티’로 알려진 아름답고 운치 있는 이 도시와 수천 년 쌓아 올린 로마제국과 르네상스 문화의 자취마저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로마제국의 번성하던 도시 폼페이를 일거에 화산재 속에 묻어버린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던 날도 8월 24일(서기 79년)이었다고 한다.
김수종의 ‘자연 앞에 인간은 무력했다’는 제하의 칼럼이 전하는 내용이다.
당시 한국일보는 “일본 대지진 이후… 한반도 땅 밑이 수상하다” 제하의 기사에서 그 해 지진발생 횟수가 최근 3년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고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 이후 한반도의 지진발생 횟수가 일정패턴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으며, 강진 발생 확률은 여전히 높지 않지만 7월 이례적으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하고 지진발생 횟수도 늘어나는 만큼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9월 12일 경주시의 8km 부근에서 규모 5.1과 규모 5,8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피해도 컸다. 한반도 계기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강의 지진이다. 이는 그동안 심리적 저지선이던 규모 5.0을 훌쩍 넘어선 것이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고는 지진은 또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2023년, 인천 계양의 대단지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저 혼자 붕괴되었다.
그리고 철근을 빼먹고 지어진 "순살 아파트"라는 신조어는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것도 대한민국 아파트 건설을 이끌어 온 국가 공공기관이 건설한 수많은 현장이 그 중심이다. 아파트 입주를 기다려 온 사람들만 복장이 터진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경악했다. 국가를 믿어도 되는 것인가라는 불신의 싹은 이미 뿌리가 깊어졌다.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는 그래도 수십 년 쓰다가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순살 아파트'는 사안이 더욱 심각하다.
이 기회에 우리 사회의 가동과 관리의 얼개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하고 재구조화(Restructuring) 해야 한다고 제대로 된 이성은 아우성친다.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현대과학으로도 예측이 불가능한 자연의 대재앙이 지진현상이다. 우리나라도 지진의 예외지대가 아니다. 높은 기록문화의 덕으로 우리는 과거에 어느 정도의 지진을 겪었는지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다. 이를 역사지진이라 하는데 지각판 내부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주기가 수백 년 이상인 것을 감안할 때 몇십 년의 계기지진 기록이 줄 수 없는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역사지진에서 가장 큰 지진은 서기 779년 신라의 경도(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삼국사기』 와 『증보문헌 비고』의 기록에 “경도에 지진이 있어 민옥이 무너지고 죽은 자가 100여 명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1643년 7월 24일(인조 21년 6월 9일) “울산부에서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으며 큰 파도가 육지로 1,2보 나왔다가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라고 쓰고 있다. 일본 지진의 영향이 아닌 자체 쓰나미 현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1995년 우리나라 지진재해대책법을 만들 때 내진설계 기준을 규모 6.5로 설정했다.
지진의 피해는 혹독하며 대재앙이다.
우리와 같은 지각판 내부에 위치한 중국 허베이성 탕산에서 1976년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24만 명이 넘게 사망했다. 2008년 중국 쓰촨 성에서 7만여 명이 희생된 규모 7.9의 강진도 지각판 내부지진이다. 일본과는 다르게 판경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잦은 지진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행운만을 바라고 있기에는 참으로 무서운 것이 지진이고 역사적으로 볼 때도 지진의 위험에 반드시 대비해야 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인구의 92%가 도시에 밀집하여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진의 피해는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대책은 없을까.
유일한 대책은 단언컨대 건물도 시설물도 튼튼하게 짓는 것 외에는 없다.
예측할 수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지는 대재앙의 참사에 대비하는 유일한 길은 내진설계를 적용한 건축이 그 답이다. 그러나 내진설계를 적용한 건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설계대로 내진시공이 이루어진다고 믿을 수도 없다. 세월이 필요하고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국학교의 85%가 지진 무방비 건물임을 생각할 때 한없이 세월에만 맡겨둘 수도 없다. 그래서 정책과 예산과 제도적 노력이 긴요하다.
특히 무엇보다 선결문제는 건축공정의 부실을 바로잡는 것이다. 입주자는 이미 내진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당시에 국토부에서 건축공사현장을 점검한 결과를 보면 구조설계는 12.8%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802개 현장 중 130개가 부적합한 것으로 지적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안전확인서의 허위작성도 만연되고 있다.
점검이 무슨 소용이 있었는가? 그 점검 후 7년이나 지났는데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더욱더 나빠졌다.
더욱더 기가 차는 것은 지진은 고사하고 이제는 저절로 무너지는 판인데 내진기준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정밀시공과 품질관리가 안 되는 판에 내진설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따지고 보면 건축만이 문제일까. 우리 사회 곳곳이 규정대로 되는 곳이 있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국민의식의 문제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관리의 문제이다. 선진국에서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은 국민의식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관리 때문이다.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가 사람들을 규정대로 살게 만든 것이다. 선진국 사람들이라고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말로 시스템적인 관리체계의 확립과 확실한 집행이 절실하다.
이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국민이 세금 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