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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Y Sep 14. 2023

아, ADHD여서 다행이다.

나는 ADHD 판정을 받았다.


ADHD: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 또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는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연령 또는 발달 수준에 비하여 주의력이 부족한 것으로,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 병적 상태를 가리킨다.


정신과를 방문해 CAT(Comprehensive Attention Test) 검사를 진행했는데, 사실 검사 받으면서 생각보다 검사가 너무 쉬워서 혹시라도 ADHD가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했었다.

나의 덜렁댐과 회피, 충동성, 집중 못함, 정리정돈 못함, 체계화 못함, 산만함, 일을 제때 끝내지 못함 등등 이 모든 증상이 ADHD가 아니면 진짜로 큰일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곧 의사선생님께서는 검사 결과지를 보시더니,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고 고생했겠다며 이 정도면 ADHD로 보인다는 말씀을 조심스레 건네 주셨다.


검사 결과는 "저하" 6개, "경계" 1개.

ADHD가 아닌 사람들은 다 "정상"으로 뜬다고 한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이게 어떻게 다 "정상"으로 나올 수 있는 건지 신기하다. 나는 나름 검사를 정상(?)처럼 잘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그리고 약물치료를 위해 콘서타 27mg를 처방받았다.

약을 먹으면 진짜 신기하게 머릿속에 안개처럼 뒤덮고 있던 그 무언가가 잠시 걷힌 느낌이다.

콘서타를 복용하며 이전에 안되던 집중이 되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하며, '아, 다들 이런 정신으로 살고 있단말야?'라는 세상이 나를 속인 것 같은 배신감(?)과 동시에 '원래는 이렇게 집중이 되는게 정상이구나..'를 깨닫고 스스로에 대한 측은함도 들었다.


CAT 검사 요약 보고서



아니 사실 내 자신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더 크다, 훨씬.


판정을 받기 전, 나는 언제나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데드라인이 임박해서야 일을 해내고 항상 미리 미리 하지 못하고, 덜렁대고 잘 깜빡하는 내 자신을 미워했다.

'남들은 척척 잘 해내는데, 나는 왜 이럴까?' '왜 항상 나는 집중도 안되고 일도 제때 끝내지 못할까?' 등의 생각으로 더 열심히, 더 노력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했었다.


ADHD의 주 증상 중 하나가 일을 미루고 회피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일상을 힘들게 하는 수많은 증상들이 있다. 차츰 공유하겠다.)

"원래 다 그래"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ADHD를 가진 사람의 그 회피와 미루기는 끝판왕. 정도가 지나치다.

나는 할 일을 미루고 미루다 데드라인이 코 앞에 닥쳐서야 할 일을 시작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기한을 맞춰야 하니 새벽까지 일을 한적이 정말 많다. 원래 한 두시간정도면 뚝딱 끝낼 일을, 나는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까지 질질 끈다. 이게 일회성이 아닌, 모든 일에 그렇다. 그리고 이런 내 자신이 정말 괴롭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또한 나 처럼 이런 줄 알았다.

근데 미리 계획을 세워서 그 플랜대로 하나씩 척척 해 나가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됐고, 나는 내 전전두엽이 온전치 못해 계획을 제 때 세우고 이행하는 게 애초에 힘든 사람이었다는 걸 불과 얼마 전 정신과 진단 이후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ADHD 진단이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내가 노력을 안한게 아니라, 난 항상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었네.


내가 여지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나는 마치 이 모습과 같았다.

나는 세모인데 동그라미 안에 날 억지로 구겨 넣으려고 하고 있었고, 다리를 다쳐 제대로 뛰지 못하는게 당연한건데 남들처럼 똑같이 뛰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책하고 더 내 자신을 채찍질 해 왔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깨달았으니 내 자신을 좀 더 보듬어주려고 한다.

고생했다고.


고생했다 나 자신,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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