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에피소드> D-341
겨울철 군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인 제설 작전, 이 작업이 정말 의미 없는 이유는 한낱 인간 따위가 대자연의 힘을 거스르겠다는 무모한 도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23/12/16 토요일 아침, 기상과 동시에 막사에 다급한 방송이 울려 퍼졌다. 용사들은 방한 대책을 강구해 제설 도구를 챙겨 밖으로 빨리 나오라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하룻밤 사이 부대가 눈에 뒤덮여 있었다.
“하…… X됐네?”
그렇게 아침 점호마저 생략한 채 멈출 줄 모르는 눈을 계속 파고 날랐다. 손발은 얼어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한 시간쯤 지나도 눈이 없어지지 않자 머리끝까지 현타와 빡이 차올라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짬만이들을 따라 눈치껏 마무리를 한 뒤 막사로 돌아와 행정반에서 커피를 타 마시며 몸을 좀 녹였다. 이제 좀 살만하다 싶자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보다 늦은 브런치를 먹으러 식당에 도착했고 눈앞에 라면이 보였다. 고작 라면 따위에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방금 전까지 느꼈던 현타와 빡은 쥐도 새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라면 국물 한입, 취사병들이 가져다준 주먹밥도 한입 하며 평정심을 되찾아갔다.
배를 채우고는 식후땡을 때리며 눈으로 뒤덮인 부대를 한동안 바라봤다. 이렇게 가득 쌓인 눈은 워낙 오랜만인지라 동심으로 돌아가 기분이 좋아졌다. 한 번까진 낭만으로 받아들이겠으나 두 번은 절대 안 하고픈 제설이다. 그러니 올해 내리는 눈은 오늘이 마지막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