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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라파고스 Sep 01. 2024

#3 전역 후 적금 털어 여행 가기

<군생활 에피소드> D-81

비록 자유는 억압받지만 여느 말년 병사처럼 정해진 일과대로 살아가는 게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가끔은 편하다 느끼곤 해 요즘 제대로 미쳤나 싶기도 한데 이 조직에 몸담은 시간이 어연 1년 6개월을 향해가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말은 이렇게 해도 매일 집 갈 날을 기다린다)


자유를 되찾으면 진정한 성인으로서 당장 맞닥뜨릴 미래가 두렵기만 하다. 그런데 일단 두려움은 제쳐두고 제일 먼저 여행이 하고 싶다. 작년 5월, 군 입대를 미루지 않고 과감히 결심한 것도 부모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여행 경비를 충당하려는 이유가 컸으며 또 나중에 해외여행을 다닐 때 미필자 신분으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았다.


군 적금과 매칭 지원금을 포함하면 1천500만 원에 이르는 목돈이 생긴다. 난 이걸 여행에 몰빵하기로 했다. 전역일로부터 나흘 후 미국 여행, 미국 여행을 다녀오고 일주일 뒤 유럽 여행을 떠난다. 두 차례에 걸친 여행이며 기간은 미국 22일, 유럽 63일이다.


지금껏 가장 길게 떠난 여행이 22/23년도 겨울 유럽인데 그땐 36일 일정으로 포르투갈에서부터 아일랜드까지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영국을 거쳐 올라갔었다. 그때 난 지금 생각해도 후회하지 않는(물론 미식 여행 측면에선 영국 때문에 실망스러웠다) 풍부한 경험과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아마 그것들이 이직까지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어서 지금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이 글은 앞으로 100일도 채 남지 않은 미국 여행 프롤로그다. 나중에 유럽 여행 프롤로그로도 쓸까 생각 중인데 미국 여행 시점이 유럽 여행과 멀지 않기도 해서 <군생활 에피소드>에서 함께 언급하고 싶었다. 이번 글은 미국 여행 프롤로그로 마치려 한다.




약 10년 만에 밟는 아메리카 대륙, 미 동부는 가고 싶다만 외치고 아예 가보질 못했다. 애초에 미국의 스케일이 유럽에 맞먹을 만큼 크고 잘 알려졌듯 미식과 배낭여행에 적합한 나라는 아니니까. 하지만 어떻게든 미국을 횡단하고자 하는 결심이 컸기에 여러 여행 루트를 찾아봤고 마침내 알게 된 암트랙 California Zephyr

암트랙 California Zephyr는 시카고에서 에머리빌(샌프란시스코 인근)까지 운행하는 기차 노선이다. 무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깔린 철도를 아직까지 쓰고 있어 유서가 굉장히 깊은데 암트랙의 여러 중장거리 노선 중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니즈에 부합하는 암트랙 캘리포니아 제퍼를 통해 미대륙 횡단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고 여행 마지막 도시는 자연스레 샌프란시스코가 되었다. 그럼 첫 도시를 정해야 하는데 시카고는 탈락이었다. 시카고가 one of my dream 이긴 하지만 one of my best dream은 아니다. 애초에 미 중부로 분류되다 보니 시카고에서 여행을 시작한다면 동부에서 서부로의 대륙횡단이라는 간지나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

미 동부에 여행을 시작할 만한 도시는 보스턴과 뉴욕이 있다. 둘 다 대도시긴 하지만 미 동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뉴욕이다. 이걸 부인할 사람은 전혀 없으리라 생각하고 나 역시 최근 몇 년간 뉴욕을 버킷리스트 여행지 1위로 꼽아왔다. 그러니 뉴욕은 당연히 일정에 넣었는데 한국에서 바로 뉴욕으로 들어가자니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보스턴에서 뉴욕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고 (미국 기준으로) 동부 끝자락에 있는 보스턴을 in으로 정하면 정말 완벽한 동선이 만들어지니 말이다.

그렇게 보스턴 in이 확정됐다. 뉴욕을 거쳐 시카고로 가는 길엔 언제 또 가보겠냐는 생각이 들어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를 들르기로 했고 또 뉴욕에서 워싱턴 D.C.로 가는 길엔 미국 최초의 수도였고 미국의 독립이 선언되었던 필라델피아(크림치즈 아님)를 일정에 넣었다.

보스턴(2)>뉴욕(7)>필라델피아(2)>워싱턴 D.C.(2)>시카고(3)>샌프란시스코(3)

도시 간 이동은 전부 육로(암트랙)로 하는 걸 계획했으나 워싱턴 D.C.에서 시카고만 안타깝게도 유나이티드 항공 국내선을 이용한다. 시간과 비용을 따졌을 때 비행기를 타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도시마다 규모와 볼거리를 따져 위와 같이 몇 박을 할지 다 정했고 숙소 예약까지 마치며 여행의 주요 골자가 다 갖춰졌다.

이제 남은 건 11월 25일 오전 9시 대망의 출국일까지 기다림뿐이다.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여행이 가시권에 접어들어 설레는 심정을 주체하기 힘든데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 여행을 앞두고 있을 때라 하듯 지나고 보면 이 또한 큰 추억이리라 생각한다. 내게 있어 얼마나 이 여행이 큰 의미인지를 전역 후 작성할 미국 여행 포스팅에 녹여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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