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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fton Parker Jul 07. 2024

20. 여행 5: Orlando, FL (1/3)

Christmas, 2021 ~ New year's day, 2022

(커버 이미지 : 플로리다 올랜도 씨월드의 대표 공연인 범고래 쇼. 범고래가 꼬리지느러미로 물을 뿌리면 흠뻑 젖게 된다.)


겨울에 떠나는 여름여행 : Road trip to Florida


항상 여름이 기다리고 있는 플로리다


우리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세은이에게 주는 진짜 선물은 바로 이번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준비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번에 미국의 동부 제일 남쪽에 있는, 겨울에도 항상 여름인 플로리다, 그중에도 올랜도(Orlando, FL) 다녀오려 하기 때문이다.

올랜도는 디즈니월드(Disney World),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rsal Studio), 씨월드(Sea World) 같은 미국 최고의 테마파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미국 어린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꼭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어릴 때 못 가 본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 한을 풀기도 한다. 그래서 남녀노소 모두가 가게 되는 곳.

테마 파크들 중에 디즈니 월드는 세은이의 버킷 리스트에 있는 곳이지만, 정말 너무 넓은 곳이라 4~5일은 꼬박 써야 다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1주일치 휴가를 오롯이 올랜도 디즈니 월드에서만 쓰는 사람들도 많다고들 한다. 

하지만 일단 테마파크를 가면 많이 걸어야 하고 오래 기다리기도 해야 하니 세은이 체력 소모가 걱정되어 디즈니 월드에서 휴가를 통째로 다 쓰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 대신 씨월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각각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는 걸로 하고 그 외의 일정엔 주변 관광지를 찾아보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 시기엔 미국 전체가 휴가를 떠나는 초 극성수기 기간이라 각종 예약 잡는데 어려움이 많다.

숙소나 비행기 예약이 어려울 건 당연히 예상했지만 테마파크도 순탄치는 않았는데, 단순히 티켓을 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원하는 날짜에 입장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한 뒤 예약이 되는 시스템이다.

심지어 입장료도 정가가 없고 성수기, 비수기에 따라 가격이 변동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기 극성수기라 그런지 올랜도가 워낙 관광도시라 그런 건지, 우리가 하려는 대부분의 활동이 예약 필수였다. 그래서 뭔가 하나를 예약하면 다른 일정엔 빈자리가 없기도 하고, 설령 빈자리가 있어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기도 하다.

결국 아내까지 나서서 몇 날 며칠을 밤늦게까지 검색을 한 끝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일정을 적정가에 예약 확정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세은이 학교까지 하루 결석하게 하면서 만든 정말 힘들게 만들어진 테마파크와 숙박일정이었다.


그리고 그 외의 일정을 정하기 위해 그 근처 지도를 찬찬히 찾아보고 있었다. 올랜도에서 1시간쯤 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바닷가에 데이토나 비치 (Daytona Beach)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이 이름 좀 낯익은데? 아, 어릴 때 오락실 게임에서 봤는데. 그게 여기였구나.'

알고 보니 데이토나 비치엔 역시나 미국 자동차 레이싱 "NASCAR" 본부가 있고 경기장도 있는 미국인들에겐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해변도 가깝고 경기장 투어도 있어서 하루쯤 보내기 적당해 보인다. 이곳도 이번 여행의 일정에 추가했다.


어떻게 가야 할지를 정하는 것도 문제였는데, 숙소와 비행기 가격이 정말 너무 비싸고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라 코비드 때문에 공항에 챙겨 가야 할 것이 많아서 좀 번거로웠다.

이럴 거면 차라리 운전해서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론가 며칠씩 운전해서 찾아가는 로드 트립(Road Trip)은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추운 겨울에 출발하면 도착해서 여름이 되는, 이동하면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경험일 거다.

우리는 첫 여행 뉴욕시티부터 워싱턴 DC에 이르기까지 운전할 수 있는 거리를 조금씩 늘려가며 이때를 준비해 왔고, 지금이 바로 며칠짜리 로드 트립을 떠날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2021년 마지막이자 2002년 첫 여행으로, 2일 동안 이동, 3일간 즐기고 2일간 돌아오는 총 7일짜리 로드 트립을 떠나기로 했다. "Let's hit the road!"


로드 트립 준비하기 : 편도 2,000km & 총 19 시간


지도를 보면 알바니에서 올랜도까지 약 1,250마일(2,000km), 총 운전시간 21시간이 필요하다. 서울에서 부산을 두 번 왕복하는 거리다.

21시간이면 24시간이 못되니 줄곧 달리면 하루 만에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운전대를 잡는 시간 외에도 식사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주유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길이 막힐 수도 있고 아내와 세은이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유일한 운전자인 나의 건강상태가, 이 여행 전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서 하루 최대 운전 시간을 적당히 잘 정해야 했다. 

돌아올 때도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하니 여행 내내 내가 아프면 안 된다. 무리가 될만한 일정을 짜면 안 된다.

나는 하루에 10시간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경험으로 볼 때 로드 트립을 하면 중간 휴식에 생각보다 시간이 꽤나 소모된다.

미국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는 대부분 화장실만 있는 Rest Area여서, 주유 또는 식사를 하려면 아예 고속도로 출구 근처의 마을로 찾아가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렇게 대략 계산해 봤다.

10시간이면 대략 600마일(~1,000km)을 간다. 그러면 주유는 하루에 두 번이 필요하고, 주유소로 찾아가는 시간, 화장실 및 식사 시간을 고려하면 주유 한 번에 한 시간 정도 써야 하네.
그러면 10시간 운전은 실제로는 12시간이 필요한 거구나. 그럼 아침 8시에 운전 시작하면 저녁 8시에 끝나네.
숙소에서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짐 챙기고 아침 먹고 차에 타면 저녁 9시쯤이 되어야 다 정리되고 침대에 누워서 쉴 수 있게 된다. 아... 10시간 운전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만약 우리가 전기차를 샀다면 충전 시간까지 써야 할 테니 10시간 운전은 못하겠구나.

시뮬레이션 결과가 좀 빡빡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밤 운전은 정말로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참고 : 여행 3. Niagara Falls), 이렇게 가면 올랜도까지는 꼬박 이틀을 달려야 도착한다. 

이것을 이틀 연속으로, 갈 때 한번 올 때 한번 해야 한다. 정리가 되고 나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미국 사람들도 이렇게까지는 안 하지 않을까?


하루 최대 이동거리의 기준을 10시간으로 정하고 나니 경로 위에 중간 숙소를 정하는 건 일사천리였다.

지금이 극성수기라고는 해도 고속도로 옆 작은 마을엔 브랜드 호텔이라고 해도 비싼 편은 아니었다.

차를 가져가니까 공항에서 서야 하는 긴 줄도 안 서고, 불편한 짐 검사도 없고, 짐 많다고 돈 내는 것도 아니니 맘이 편하긴 했다.

뉴욕에서 사용하고 있는 EZ Pass(한국의 고속도로 하이패스와 유사) 우리가 거쳐가는 동부 지역 대부분의 고속도로에서 호환되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니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젠 정말 가면 된다.

긴 여행을 가기 위해 아내는 차에서 먹을 간식과 김밥을 준비하고, 세은이는 만화책을 챙기고 태블릿엔 게임을 설치했고, 나는 유일한 운전자이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최대한 많이 잤다.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출발한다.


(왼쪽) 전체 여행 경로. (오른쪽) 흔한 주유소 편의점. 아내는 이곳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핫도그를 좋아했다. 빵과 소세지 가격만 내면 토핑은 무료다.


올랜도로 가는 길, "1,700km 직진 후 고속도로 출구로 진출하세요."


첫 목적지는 버지니아 리치먼드(Richmond, VA)다. 520마일, 9시간. 이제껏 가장 멀리 갔던 워싱턴 DC를 지나고서도 두 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이곳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의 수도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볼거리가 많은 곳인데 이번엔 아쉽게도 그냥 지나친다. 이곳에서 하루 잠만 자고 다음날올랜도까지 가야 한다.


첫째 날 : From Albany, NY to Richmond, VA (520 miles)

출발해서 리치먼드까지 가는 동안 운전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경로의 상당 부분은 워싱턴 DC 갈 때 이미 한번 가 봤던 길이다.

뉴욕에서 여기까지 가는 데는 번화한 도시가 많아서 도로가 넓고 휴게소도 Rest Area가 아니라 주유소와 식당이 있는 Sevice Area로 되어있다. 

이곳에서 한국 수준의 편리함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주유소, 패스트푸드, 편의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에선 정말 대단한 편의가 제공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2시간 30분 정도 I-87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동부 최대 한인 타운이 있는 뉴저지 팰리세이드 파크이고, 이곳에서 I-95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플로리다까지 계속 직진하게 된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이 지점부터 올랜도까지 직진 거리가 무려 1,100마일, 1,700km가 넘는다. 오! 역시 이 엄청난 미국 스케일.

우리 차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기능이 있어서 제한 속도에 맞게 정속 주행을 하면서 앞차와의 간격도 잘 맞춰준다. 기능이 있으면 장거리 운전이 아주 편해진다. 특히 트럭 운전사들에겐 필수일 것 같다.


세은이를 위해 미리 준비한 최신 k-pop을 들으면서, 아내는 주변 명소나 역사에 대해 검색해서 알려주고, 한국과는 다른 미국 시골 풍경을 눈에 담기도 하고 잠들기도(나 빼고) 하고 정말 먼 길 가고 있다.

운전은 긴 시간 해야 하지만 막히는 길을 가는 게 아니라서 그렇게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틈틈이 경찰이 어디 있는지도 신경 써야 하니 긴장을 놓아서도 안된다. 운전하다 보면 경찰차가 도로의 중앙분리 안전지대나 갓길 잘 안 보이는 모퉁이에 숨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과속 단속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뒤에서 다가오면 미리미리 차선을 비켜줘야 하고, 경찰관이 갓길에서 딱지를 떼고 있으면 그 옆으로는 지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찰관이 통행을 방해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딱지를 떼는데 옆으로 지나는 차가 위협적이었다고 느낀다면 적발 대상이 된다. 

'경찰관에게 위협적'이라는 판단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이민자는 가급적 도로에서 경찰이랑 마주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잘 안 보이니 집중해서 봐야 한다. 이럴 땐 한국식 단속 카메라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뉴욕 집에서 아침 9시에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버지니아 리치먼드까지 왔다. 저녁 7시 30분. 차 안에서 점심을 김밥으로 먹으면서 왔던 게 시간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된 듯하다.

차에서 내리는데 몸이 좀 뻐근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앞으로도 할 만하겠다는 느낌이다.

아직 겨울인 뉴욕에서 남쪽으로 꽤 왔기 때문에 패딩 점퍼를 입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그래도 좀 쌀쌀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치먼드의 위도는 서울이랑 비슷하다. 

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났지만 여전히 산타클로스가 반겨주는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하고, 아내가 챙겨 온 전기주전자로 컵라면 하나씩 먹고 나서 더 먼 길 가야만 하는 내일을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둘째 날 : From Richmond, VA to Orlando, FL (730 miles)

미국 호텔을 계속 다녀보니 조식 메뉴는 어딜 가나 항상 똑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부분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데, 즉석 조리해 온 에그 스크램블과 감자 소시지 볶음이 기본으로 있고, 토스트나 와플은 직접 해 먹는다. 

오렌지, 바나나, 시리얼, 요구르트 같은 것들은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고, 우유, 커피, 오렌지 주스가 테이블 한편에 있다. 신기하게도 어느 호텔이나 똑같다.

끼니를 해결해야 하니 먹기는 해도 몇 번 먹어보면, 먹지 않고 상상만으로도 그 맛을 머릿속으로 재현해 낼 수 있는 식상한 맛이다. 그래도 먼 길 가는데 이게 어디인가. 감사히 먹는다.

식사를 하고 호텔을 떠나기 전에 과일, 커피, 얼음 같은 것들을 챙겨서 출발한다. 아침 8시다.

오늘은 어제보다 2시간은 더 멀리 가야 한다. 호텔 주변을 떠나기 전에 주유하고 다시 I-95에 들어서서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버지니아를 지나 남쪽으로 가니 나무들이 점차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사진) I-95에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웰컴센터. 세은이는 이미 반팔을 입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심벌은 야자수이다. 
(사진) I-95에 있는 조지아 주의 웰컴싸인. 고속도로로 운전해서 다른 주에 들어갈 때 볼 수 있다. 복숭아는 조지아의 심벌이다.


지금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 I-95는 보스턴, 뉴욕시티,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워싱턴 DC, 잭슨빌, 마이애미에 이르기까지 동부 해안의 대도시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미국대륙의 주축 고속도로 중 하나다. 

그래서 시골이라 부르기도 무색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인데도 도로 위엔 차가 많다. 다니는 차가 많으니 길이 막히기도 하고 사고도 있어서 내비게이션은 종종 우회로로 길을 안내한다.

한국 명절 때도 그렇지만, 우회로로 가면 모든 차들이 다 똑같은 안내를 받기 때문에 어디로 가든 계속 길이 막혀서 내비게이션이 우회로의 우회로의... 우회로를 안내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한 번은 길이 너무 막혀서 3차, 4차 우회로까지 안내받아 가는데 나무가 빼곡한 숲 속 비포장도로로 들어서게 된 적이 있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조금 들와서 보니 큰 돌이 길 가운데에 놓여있고, 쓰러진 썩은 나무를 피해서 가야 하고, 숲에서 동물이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말 그대로의 비포장 숲 길이다.

지금은 낮이라 차에 돌이 튀는 것 빼고는 괜찮았지만 만약 밤 중에 이런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면 그 공포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로등? 전화? 인터넷? 사람? 당연히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어쨌든 무사히 빠져나와서 다시 고속도로로 갈 수 있었지만, 만약에 밤에 내비게이션이 이길로 안내했다면 제조사를 반드시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미국에선 이런 상황에서의 사망 사고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미국 내 Network connectivity 확보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많이 있다.)


(사진) 뉴욕 번호판. 나이아라가 폭포와 뉴욕시티가 그려져 있다. 하단에 적힌 뉴욕의 모토인 'Excelsior'는 라틴어로 '더 높이'라는 뜻이다.
(왼쪽) I-95에 있는 조지아 웰컴센터. (오른쪽) 웰컴센터 내부. 조지아에서 가 볼만한 곳, 유명한 것들에 관련된 내용이 전시되어있다.


운전을 오래 하니 좀 심심하기도 해서 주변에 달리는 차들의 번호판을 관심 있게 보게 된다.

미국은 주 별로 번호판 디자인이 다른데, 해당 주의 특징을 담은 글귀와 그림을 넣기 때문에 멀리서 봐도 어느 주에서 왔는지 구분할 수 있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주나 인접한 주의 번호판이 많이 보이는 게 당연하지만, 가끔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온 차를 보고 놀랄 때도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을 때는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보고 신기해했던 적이 있다. 아마 여기 사람들은 우리 차가 달고 있는 "The Empire State" 뉴욕 번호판을 신기하게 보겠지.

자동차 번호판은 숫자와 알파벳 조합으로 되어 있다. 보통은 등록할 때 랜덤하게 부여된 번호 그대로 사용하지만, 원한다면 등록번호를 바꿀 수도 있는데 신청/심사/수수료 등 6주에 걸친 여러 절차를 거치면 자신이 원하는 문구로 등록이 된다. (중복 번호, 모욕적 문구, 사생활 관련 내용은 등록 거부된다.)

가족의 이름을 넣어 사랑한다는 문구, 혹은 어떤 메시지 등을 넣은 차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내가 본 것 중에 정말 잊을 수 없던 번호판은 'ILOVEBTS'였다.

추가 비용도 내야 하고 6주간 심사도 받아야 해서 귀찮기도 할 텐데 , 이 정도면 정말 엄청난 팬심이다.


고속도로를 따라 새로운 주에 진입하게 되면, 보통 그 입구에 특별한 휴게소인 '웰컴 센터(Welcome Center)'를 만나게 된다.

마치 작은 박물관처럼 그 주의 역사, 관광지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고 지도도 무료로 나눠주고 간혹 특산품으로 만든 간식도 나눠줄 때가 있다.

가끔 직원들이 관광객 정보 수집 차원에서 어디에서 왔는지 묻기도 하는데, "뉴욕에서 왔는데, 원래는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하면 깜짝 놀라기도 했다. 큰 도시 출신이 아니라면 한국 사람 처음 봤을 수도 있다.

우리는 운전해서 지나는 곳이더라도 가능하면 웰컴센터는 놓치지 않고 들렀다 가려고 했다. 이것도 여행의 과정 아닌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웰컴센터에선 이른 점심을 먹었고 여기서부턴 더위가 느껴져서 반팔로 갈아입었다.

한참을 달려서 오후 늦게 들른 조지아 주 웰컴센터엔, 포레스트 검프가 영화에서 처럼 벤치에 앉아서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초반의 벤치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은 조지아 주 서배너에 촬영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플로리다에 들어섰을 땐 이미 밤이 되어 아쉽게도 웰컴센터가 문을 닫았다. 우리는 곧장 마지막 목적지인 올랜도로 향했다.


썩 내키지 않는 밤운전을 하게 되어 좀 불안함이 있었는데, 플로리다 고속도로엔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굉장히 맘에 들었다.

플로리다의 I-95에는 사우스 캐롤라이나나 조지아에 비해 도로포장 상태가 좋고 무엇보다도 뉴욕에도 없는 고속도로 가로등이라니, 상당히 부유한 곳인가 보다.

이미 밤이라 웰컴센터도 그냥 지나야 했고, 주변을 볼 것도 없었고 가로등 불빛과 경찰차를 보면서, 플로리다에 들어선 지 2시간 30분 뒤에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 9시 30분. 밤이 되어도 더운 기운이 가득한 올랜도. 우리가 정말 뉴욕에서 플로리다까지 운전해서 왔다.

체크인하고 들어온 호텔 창 밖으로는 테마파크가 보이는데 마감 시간이 되었는지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아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겨울을 떠나서 여름으로 왔네.'

우리의 본격적인 플로리다 여행은, 내일, 범고래가 기다리고 있는 씨월드부터 시작한다.


Continued...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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