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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fton Parker Aug 25. 2024

25. 미국에서 경험과 정보를 얻는 경로

February 2022

(커버이미지 : 눈 오는 날 찾아갔던 TGI Fridays. 대학시절 많이 갔던 곳인데 한국에선 매장을 철수한 지 오래되었다. 뉴욕 우리 동네의 매장에 갔더니 결혼하기 전 데이트 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미국 생활의 상식과 경험치가 부족해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점점 사라지자, 어떻게 지내야 '미국에서 살고 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왜냐면 우리는 하루 세끼를 한식으로 먹고, 왓챠, 넷플릭스에서 한국 프로그램을 보고,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통해 미국 소식을 보는 등 한국의 삶을 미국에서 그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건 어떤 것이고, 어떤 게 부족하고, 어떤 방법으로 그 부족한 걸 채울 수 있을까?


미국 음식을 먹으러 다녀보자

어느 날 나는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 와서 집에서 한식만 먹고, 한국에서 하던 것만 하고, 한국 드라마만 보다가 돌아가게 되어선 안 되겠다.

세은이가 학교 가고 나면 아내와 둘이서 점심을 먹는데, 나는 가급적 나가서 사 먹자고 했다. 배달도 하지 말고 꼭 나가서 식당에서 먹자고. 한식은 아침, 저녁에 집에서 먹는 걸로 충분하다.

외식하는 비용은 좀 들겠지만 미국 사람들의 일상에 우리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또래 미국인이라면 식당에서 밥 먹는 건 수 천 번도 넘게 경험했을 일이다. 나도 해봐야 한다.

물론 밥 사 먹는 것 정도를 못해서 연습하는 건 아니다. 동네 맛집이 어디인지 찾아보고, 실제로 먹어보기도 하고, 분위기도 보고, 주문/계산하는 것도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싶어서 시도하는 것이다.

다음 날부터 구글 맵을 뒤져서 점심 먹을 식당 찾는 게 아내의 오전 일과 중 하나였다. 패스트푸드, 일식, 중식, 멕시코 음식, 미국 가정식(Diner), 마트 음식(Deli)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찾아 먹으러 다녔다.

여러 번 다녀보니, 어색했던 주문도 익숙해지고 점원(Server)이 어떤 순서로 어떤 말을 걸어오는지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도 체득하게 되었다. 팁은 어떤 곳에서, 얼마나 줘야 할지도 대략의 기준이 생겼다.

자꾸 해보니 여유도 생기고, 잘 모르는 메뉴를 물어보기도 하고, 추천도 받고 상황에 따라 짧은 농담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역시 해보고 익숙해져야 하는 거였다. 어색하니까 안 하고 싶었던 거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매일 동네 맛집 목록을 만들어 갔고 아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왼쪽) 아내가 좋아한 식당 겸 가게 'Vischer Ferry General Store' (오른쪽) 동네 Pub, 'Dog Haus'. 맥주 한잔은 음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이다
(사진) 옆 동네 하프문 타운홀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Farmers Market. 마트보다 질 좋은 식자재가 많이 있다. 가격은 조금 비싼 편.
유튜브로 찾아보는 미국 정착

요즘 세상엔 무엇을 배우는 데 있어서 유튜브만 한 선생님이 없다. 몇 번의 검색만으로도 미국 정착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미국 이민'이라고 검색해서 볼 수 있는 한인들 생활 정보 영상은 굉장히 유용했다. 마트에서 장 보는 영상이나 요리하는 영상을 많이 봤다.

어떤 것을 사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한국에서 쓰던 물건의 대체품은 무엇인지, 동일 품목인데 왜 다른 제품인지 등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아이 학교 보내는 일상, 운전면허 시험 준비, 동네 나들이등 선배 이민자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서부 쪽 영상이 많아서 좀 아쉽다. 그래서 뉴욕에 살면서 미국 뉴스를 알려주는 '뉴욕 키다리쌤' 채널을 구독하고 빼놓지 않고 봤다.


유튜브에서 'New York'을 검색하면 대부분 뉴욕시티 영상이고 여행으로 유명한 지역이 아니면 영상 자체가 많지 않다. 동네 관련한 것은 'New York Upsate', 'Albany', 'NY Capital Region'로 검색해 봐야 한다.

부동산 업자들 영상이 몇 개 있는데 살기 좋은 점, 불편한 점 등을 알려주는 게 재미도 있고 정보도 된다.

알바니 곳곳을 아무 말 없이 1시간 넘게 운전하거나 걸어 다니는 영상도 여러 개 있었다. 알바니 관광 포인트를 실제로 보여주니 멍하니 보다 보면 도움이 된다.

대개 웬만큼 알려진 도시는 이런 류의 소개 영상이 꼭 있었다. 'Walking Alice'같은 채널의 유명한 관광지 거리를 걷는 영상을 여행 가기 전에 미리 보면 도움이 되었다.

(사진) 미국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올리버 쌤'. 초창기 영상에는 미국의 사회 현상에 대한 설명이 많다.
(왼쪽) 영어 및 한국에 사는 외국인 관련 영상을 만드는 '션 파블로' (오른쪽) 미국 뉴스, 한인 사회 뉴스를 다루는 '뉴욕 키다리쌤'

미국인들이 볼 때 한국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독특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나 그들 스스로 말하는 미국의 모습등이 궁금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의 영상도 많이 찾아봤다.

그들 역시 이민자로서 겪었던 어려움과 한계를 볼 때는 마치 거울을 보는 듯 그 감정이 이해되기도 했다.

한국어가 아주 유창한 유튜버 '올리버 쌤'의 초기 영상들을 보면 미국 사회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된다. 미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내용도 굉장히 흥미 있었다.

미국의 관광지는 역사 및 전쟁과 관련된 곳이 많아서 미리 공부를 하고 가면 세은이랑 대화하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미국 지역 TV 방송 보기

작년 가을부터, 마트나 병원 같은 곳에 갈 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징어게임(Squid Game)을 얘기하곤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것 같아서, 내가 먼저 "I'm from South Korea, Home of Squid Game on Netflix, You know."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다들 피식 웃으면서 재밌어한다.

이쯤 되니 나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여기 사람들도 퇴근해서 TV 보면서 쉴 것 아닌가. 나도 어떤 게 관심사인지 어떤 게 유행하는지 알고 싶다. 미국 TV 광고라도 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미국에 오면서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왓챠를 신청했고 셋톱박스를 하나 사서 가져왔다.

그리고 인터넷 접속 위치를 변경해 주는 VPN 서비스도 가입해야 했다. 왜냐면 넷플릭스, 디즈니가 아무리 글로벌 서비스라고 해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영상들이 있고 자막 지원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준비해서 왔는데... 이제는 VPN에 접속해서 왓챠나 넷플릭스로 한국 예능 방송을 보고 있으면 뭔가 잘 못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알 수 없는 고립감이 든다. '나 이러고 있어도 되나?'

뉴스라도 보겠다고 CNN, CBS 같은 인터넷 방송을 보면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일상에 전혀 관련이 없는 캘리포니아/텍사스/플로리다 같은 다른 주, 연방 정부, 미국 외교 얘기 같은 건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미국 사람들이 보는 유료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이나 스펙트럼, 훌루 같은 케이블 방송을 무작정 신청하기엔 무슨 채널이 있는지도 모르니 돈 낭비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미국 생활을 검색해서 보고 있다가 미국에선 '실내 TV 안테나'로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이 생각을 일찍 하지 못했을까?

미국에서는 기지국에서 공중에 전파를 쏘고 각 가정에서 안테나를 설치하여 무선 신호를 잡아서 TV를 보는 이른바 '지상파' 방식을 아직도 지원하고 있다.

옛날엔 한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TV를 봤었다. TV 바로 옆에 안테나를 설치하기도 했고 아파트 옥상에 대형 공동 안테나(Yagi-Uda type)를 설치해서 실내 안테나 없이 봤었다.

지금 한국은 거의 모두가 케이블 TV를 보고 있어서 지상파 방송 수신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식적으로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운영관리가 안 되는 탓이다.

미국 사람들도 한국처럼 케이블 TV를 많이 보기는 하지만, 케이블 설치가 안 되는 지역이 많기 때문에 지상파를 제대로 지원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유튜브에서 본 내용은 LA에 사는 사람이 찍었던 거라서 무려 한인 방송까지 잡히는 것 같다. 아마 여기는 그런 건 없겠지? 뭐라도 나오기만 해도 좋겠다. 녹화된 것들 말고 살아있는 방송을 보고 싶다.


나는 곧바로 아마존에서 $25 정도 하는 사각형 실내 안테나를 샀다. 안테나가 오자마자 창에 붙이고 TV를 연결해서 채널 scan을 누르니 20개 정도의 채널이 잡힌다. 성공이다. 잘 나온다.

이 동네에선 CBS(6), ABC(10), NBC(13), FOX(27) 이렇게 4개 채널이 Main인 듯하고 나머지는 재방송이나 홈쇼핑 같은 것들이다.

뉴스를 볼 수 있게 되니 정말 반갑다. 뉴스는 지역 내용으로만 채워지고 연방 정부 수준의 뉴스는 거의 보기 어렵다. 날씨 예보를 보면 이 뉴스의 방송 범위가 짐작된다. Capital Region에만 나오는 채널인 것 같다.

광고를 보는 것도 좋다. 감기 걸렸을 때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요즘 유행하는 게 어떤 것인지, 실용적인 영어 발음이나 표현 등을 익힐 수가 있다.

이제 비로소 세상과 연결된 느낌이 든다. 자기 지역의 지상파 방송 스케줄을 알려주는 사이트(www.tvtv.us, 미국에서만 접속 가능)있다. 나는 밤 10시 뉴스와 스포츠 중계는 즐겨찾기 하고 챙겨 보았다.

(Major 스포츠를 보려면 시청료를 내고 별도의 VOD서비스를 가입해서 보는 것이 미국인들에겐 일반적이다. ESPN Live를 가입해서 보거나 NFL+같이 해당 스포츠에만 가입해서 볼 수도 있다. 심지어 NY Yankees의 YES 채널과 같이 특정 팀 경기만을 보여주는 서비스도 있다. 물론 나처럼 지상파로 불편하게 보면 무료다.)


소셜 미디어의 활용 - 페이스북, NextDoor

한국에서는 SNS, 여기선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라고 한다. 한국에선 아내도 나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계정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 공지, TV 광고, 식당 메뉴 같은 것을 보면 꼭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링크가 있다. 평소엔 그냥 그런가 하고 지나치다가 문득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정보가 부족하니 광고라도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페이스북을 가입했다. 아저씨는 옛날 사람, 페이스북이지. 계정을 만들고 나니 나에겐 필요하지 않은 한국 소식들이 메인 피드에 가득하다.

나는 우선 세은이 학교 이름과 우리 동네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학교, Town 공식 페이지가 있고 개별 학부모 모임, Town 주변 중고거래 페이지도 여럿 보인다. 보이는 족족 모두 가입했다.

점점 더... 매일 보는 뉴스 이름, 앵커 이름, 뉴욕 주지사, 알바니 시장(Mayor), 옆 동네, 풋볼팀, 야구팀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검색해서 닥치는 대로 모두 가입했다.

내 페이스북 메인 페이지는 온통 미국, 뉴욕과 우리 동네 이야기로 가득 찼다. 매일 접속해서 피드에 뜨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정보의 질이 확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지금 뉴욕 주의 코비드 정책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가정용 무료 테스트기는 어떻게 신청하는지

지금 일하고 있는 파트너사는 뉴욕 주로부터 왜 추가 세금지원을 받게 되었는지, 신규 투자는 어느 지역으로 하는지

학교의 야외활동 개시에 대한 학부모들의 생각, 심지어 댓글에 달린 은어와 욕설들.

중고거래에선 어떤 상품을 어느 정도 가격에 파는지, 저런 물건이 왜 필요한지 등등

동네 맛집, 중고 매장 등이 어디에 있으며 뭘 사고, 뭘 먹을 수 있는지, 사람들은 뭘 좋아하는지

눈이 얼마나 내릴 것이며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왜 오게 되었는지, 도로 제설 작업은 어떻게 되는지. 고립되면 어디로 신청해야 하는지.

집수리, 눈 치우기 등을 대행해 주는 Handyman의 광고. 각종 동네 업체들의 광고들. 행사 광고들

또 한 가지 크게 도움이 되었던 그룹은 미국에 사는 한인 그룹 페이지들이다. ('미국 사는 한국인 그룹' 등)

미국 전역의 이민 온 지 오래된 분들, 나이 어린 유학생, 나와 같은 주재원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뉴욕+한인' '미국 동부+한인' 이런 식으로 지역을 넣어서 검색하면 다양하게 있다.

영주권/시민권, 비자, 연금 같은 이민 정보도 많고 자녀, 직장, 은퇴 등 어디나 다를 바 없는 인생의 고민도 있다. 그리고 미국 전역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시야가 확실히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은 우편이 하나 왔는데, 내용을 보니 당근마켓과 유사한 'NextDoor'라는 서비스에서 보낸 초대 링크가 담긴 편지였다.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 중 누군가가 나를 이 앱에 초대해 준 것 같다.

가입하고 보니 우리 마을 사람 50여 명이 가입되어 있는 그룹도 있고, 집 주변 수마일 내의 각종 서비스(아이 보기, 강아지 산책, 집수리 등)를 부탁할 수 있는 사람들도 검색할 수 있다.

페이스북처럼 사람들이 글을 쓰기도 하는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글만을 필터링해서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굉장히 유용했다. ('어젯밤에 큰 소리 난 거 무슨 일이에요?', '지금 Rt. 9N 왜 길 막혀요?'와 같은 글과 답변이 올라오는 곳이다.)

동네에서 어떤 일은 해도 되고 어떤 일은 하면 안 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웃들 사이에 좋았던 이야기, 불편한 이야기 등을 읽으면서 나도 배우는 게 많았다.

우리는 이런 앱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우리를 초대해 준 그 누군가에게 정말 감사하고 싶다. NextDoor는 우리가 동네의 살아있는 정보를 곧바로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채널 중 하나였다.

(사진) 페이스북에서 보고 찾아간 동네 한식당 'Sunhee's Kitchen'. 무료 영어 수업, 이민 안내 같은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왼쪽) 차의 계기판 및 내비게이션 화면. 언어는 영어로, 단위는 야드파운드로 바꿨다. (오른쪽) 알바니 라디오 채널 홈페이지 (한국에서도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다.)

숨어서 살아남기가 아닌 함께 살아가기 위한 모습으로


페이스북이나 TV를 보면서 여러 정보를 얻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내가 정말 다른 미국 사람들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손과 입에 딱 붙지 않는 느낌.

나는 미국인처럼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운전할 때 한국 음악 말고 동네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고, 차 설정과 내비게이션도 언어는 영어로, 단위는 미국 단위인 야드파운드로 바꿨다.

그리고 책상에 한국의 미터법과 미국의 야드파운드법 환산표를 적어 놓고 틈틈이 쳐다보곤 했다. 대충의 값으로라도 어림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내가 이런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길이를 예를 들면, 길이 단위는 여러 가지다. 미국은 inch, ft, yard, mile, 한국은 mm, cm, m, km.

환산표가 있으니 값을 변환하는 건 계산기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는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물건의 길이를 말할 때 사용하는 단위는 사회적으로 약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신발 크기는 mm를 사용한다. cm을 써도 될 정도의 크기지만 우리는 mm만을 써서 표기한다. 이것은 어떤 논리가 있는 게 아니고 사회적으로 약속된 거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신발 크기는 inch로 한다. 실제 발크기 기준으로 정해진 길이 단위 ft로 발 크기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운전할 때는 보통 mile로 쓰는데 1 mile이내는 ft로 쓴다. mile과 ft의 중간 단위인 yard는 도로에서 쓰는 단위가 아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사회가 약속해 놓은 표현이다.

신발 가게에서 '제 발 사이즈는 280mm인데, 이걸 ft로 하면... 아, inch로 해야 해요? 그럼 얼마지..?'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누가 봐도 외국인이다. 나는 관광객이 아니니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싫다.

혹시나 운전 중에 경찰관이나 보험회사와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어리바리함이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거리 단위, 지명, 도로 이름 같은 것들은 현지인이 하는 것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국제 표준인 Metric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Imperial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없게 생각하고 심지어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자조적 반응이 많다. 하지만 이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여러 차례 단위 전환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결정하지 못한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물론 꽤나 불합리한 상황인 건 맞다. 그래서 둘 다 표시하는 경우도 많은데, 마트에서 줄자는 inch & ft와 cm & m로 4가지 단위가 동시에 적혀있는 것이 많이 팔린다.)


그리고 키, 몸무게, 가족의 생년월일, 전화번호 같은 중요 개인 정보를 보다 자연스럽고 빠르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했다.

한국에서, 병원이나 학교에서 자신 또는 아이의 생년월일을 버벅거리며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자기 키와 몸무게를 잘 모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더 이상 그런 모습일 수는 없다. 한국에서 말할 때와 똑같은 톤, 속도, 느낌 그대로 미국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이어야 했다.

운전할 때마다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혼자 운전할 때는 라디오를 따라 계속 중얼거린다. 내 입에 익숙해질 때까지. 진짜 뉴욕사람처럼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우리가 여기에 여행 온 게 아니지 않은가?

그냥 무작정 외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외우려면 자꾸 들어야 하고 내가 직접 입으로 소리를 내야 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가 왔을 때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누구이든 간에.


어느 날, 옆집 Mark와 Sarah를 마당에서 잠시 만났을 때, 내가 이런 노력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을 말해주었다.

나에게 이런 면이 부족하고 그래서 아직 미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Mark는 내가 Amazing 하다며 엄지를 들고 웃어 주었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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