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고 내가 거쳐온 선생님들을 떠올려본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계단에서 '슈퍼맨'을 하면서 뛰어내리다 골절당한 나를 업고 병원까지 데려다 주셨다. 그 외에는 기억이 안 난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항상 정장을 입는 중년 남자 분이셨다. 항상 알림장에 영어 문장을 적도록 하여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까지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분에게 마지못해 촌지를 드렸다고 했다.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보고 '아이디어 뱅크'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칭찬받은 기억이 지금도 뚜렷한 걸 보면 칭찬의 힘은 정말 강하다. 하지만 파리 두 마리를 실내화 한 방에 때려잡은 걸 그분께 보여주며 자랑했을 때는 못 들은 척 하셨다. 그 장면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4학년 때 선생님께 호되게 혼난 기억이 난다. 내가 청소를 하기 싫다고 당돌하게 말한 것 같은데, 그때 호랑이처럼 소리지르신 분이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방과후까지 교내 대회 제출용 찰흙 작품을 만들어주셨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정의롭고 사명감 넘치는 멋진 분이었다.
5학년 때 선생님은 내가 정말 좋아했다. 중년의 남성 선생님이셨는데, 별명이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그때 나는 반에서 성적으로 1등이었다. 나는 그 분이 좋아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나는 그분을 정말 좋아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마주 앉아 급식 먹을 때 그분이 '남아있는 밥톨은 국물을 부어서 긁으면 잘 긁어진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선하다.
6학년 때 선생님은 젊은 남선생님이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좀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분의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고 성적도 수직 하락했다. 그분께서 한 아이를 심하게 때리던 장면, 울부짖던 그 아이의 목소리만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아이는 왜 맞아야 했을까?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들은 거의 기억이 안난다. 1학년 때 선생님은 나이 지긋한 도덕 선생님이셨다. 그때 나는 사회주의 관련 책들에 흥미를 갖고 있었는데, 사회주의는 말도 안 되는 이념이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난다.
2학년 때 선생님은 도덕 선생님이셨다. 좋은 분이셨다. 학생을 존중해주셨고, 등교길마다 자전거를 타셨다. 그분께서 중간고사인지 기말고사인지 감독을 보실 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의 기술>은 대학교 가서 나도 읽어보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지금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3학년 때 선생님은 누구인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누구였더라?
중학교 한문 선생님은 받아쓰기 할 때 내 필체가 좋다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칭찬을 해 주셨다. 그 후로 나는 그분에게 칭찬받기 위하여 정말 열심히 한자를 외웠다. 내가 중국 고문헌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중한 번역까지 손을 댄 것은 따지고보면 그 분 덕분이 아닐까 싶다. 수업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슬플 수(愁)가 '가을(秋)의 마음(心)'이라고 설명하시던 것만은 왠지 모르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다. 그분이 소개해주시는 작가들 책을 나도 읽어보았다. 유시민과 백석의 책이었다. 그분이 나에게 끼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2학년과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셨다.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들을 회초리로 가끔 때렸지만, 선생다운 선생님, 선비다운 선생님이셨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분의 총애를 받으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분을 존경한다. 자습 시간에 내가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원문으로 읽고 있는 것을 보며 나즈막히 "로렌스의 책을 읽고 있구나."하고 지나가신 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잘 지내고 계시려나?
담임 선생님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3년 동안 나를 지켜보며 격려를 해준 영어선생님도 계셨다. 그분은 내가 독학으로 '성문 기초 영어'부터 '성문 종합 영어'를 독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항상 모두의 앞에서 칭찬해주셨다. 나는 그분의 칭찬에 힘입어 외국 문학과 외국어에 대한 열정을 키울 수 있었다.
교육대학교에 다니던 대학생때는 기본적으로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서양철학을 가르치던 교수님께 수업 이후 희랍어를 몇 번 배운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음성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에겐 내가 한번 뵙고 싶다고 하여 한번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있다. 영어를 혼자 배운 내가 영어스러운 발음을 습득한 것은 그분의 수업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고마운 분들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본다.
2024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