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의 10년
대만에서도 이런 책이 팔리나보다. 제목은 <진심으로 학생 지도했더니, 고소장이 날아오네요?> 정도 되겠다.
'교사를 위한 맞춤형 법률 상담소'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대만도 교사하기 힘든 시대인가보다. 한국은 말할것도 없고.
상식적으로정치인, 법조인 외에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법률 공부까지 해야하는 직업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월급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법 공부까지 해야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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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시절 집에 돈만 좀 더 있었다면 교대 같은 곳은 안 들어가도 됐을 것이다...그때 나의 부모님은 아프고 집안 형편은 너무 막막했다.
제일 값싸게 다니면서 졸업장 받자마자 바로 취직이 보장된 곳이 교대였다. 내 밑으로는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 수험생 시절, 성적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나에겐 항상 똑같은 선택지밖에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노력과 상관없이 나의 앞날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몰락하였지만, 당시 교대 입결은 고점을 찍고 있었다. 수시로 교대에 합격하자 아이들은 부러워했고 나를 아끼던 선생님은 안타까워하셨다. 이후 수능을 봤고, 수능 성적표를 받은 그날 밤 방안에서 슬프게 울었다. 결국 교대라니, 초등학교 선생이라니, 하면서.
대학 시절 4년도 지금 생각해보면 끊임없는 불화의 시간이었다. 돈이 없으니 자퇴니 재수니 하는 것도 꿈같은 소리였다. 수업은 듣기 싫었고 알바와 중국어 공부, 독서를 하면서 매일을 보냈다.
그 안 맞는 대학 생활을 용케도 견디고 나는 기어코 교사가 됐다. 품었던 뜻은 꺾고, 나의 특징을 깎고 깎아 교사라는 틀에 자신을 가까스로 끼워맞추며 10년을 보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남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나의 성향을 바꾸는 것,
둘째, 나 따위가 남의 모범이 될 리 없다는 자기비하적 성향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의 핵심인 이 두 가지를 극복하지 않으면 '교사 실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직업을 가질 능력도 없는 나에게 교사 실격은 '인간 실격'으로 다가왔다.
그 고민과 함께 시작된 나의 20대는 그 고민과 함께 끝났다. 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공부에 매달리기도 하고 샛길로 새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나의 성격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서른이 된 지금, 교사라는 직업은 이 사회의 가라앉는 배로 전락해 있다.
25년 8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