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은 <시>, <서>, <예>, <악>, <역>, <춘추> 6경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유교의 경전이다. 원래 주나라 백성들의 노래 모음집이었던 <시>는 어떻게 귀족교육의 필수교재 <시경>이 되었는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는 새 시대를 연다. 주나라는 넓어진 영토 각지에 영주를 파견하여 통치하는 봉건제를 실시한다. 그런데 각 지역에 보내진 영주들이 군사력에만 의지하여 지역을 강압적으로 관리하기 기란 어려웠다. 따라서 봉건 영주들은 각 지방의 민정을 파악하여 백성들을 잘 다스릴 방법을 찾게 된다. 당시 그 지역에서 불리는 민가는 백성들의 생활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재료였다. 그 민가들을 채집하여 책으로 엮고 참고하며 통치를 했는데, 이것이 바로 <시>이다. 따라서 수록된 시들의 내용은 대부분 주나라 백성들의 애정, 가족, 생계, 희노애락의 감정에 관한 소박한 표현이다. <시>는 훗날 유가에 의해 <시경>으로 떠받들어진다.
처음 민정을 살피기 위한 목적으로 수집되던 민가 모음집 시경은, 훗날 다른 목적으로 읽히게 된다. 당시 귀족들 사회에서 시경이 공통 상식이 되면서, 귀족들은 대화 중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내용을 시경 구절을 인용하여 에둘러 표현하였다. 이렇게 시경은 원래 맥락을 벗어나 외교적 수사를 위한 일종의 코드화된 언어(coded language)로 쓰이게 되었다. 외교적 목적을 위해 시경을 활용하다 보니, 전체 시의 앞뒤 내용을 무시하고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인용하는 '단장취의' 식 독법이 보편화된다. 그러다 주자(朱子)에 이르러서는 시경의 모든 구절이 엄숙한 도덕적 훈계를 암시하고 있다는 이른바 '미언대의' 식의 억지스러운 독법까지 출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경의 첫 번째 시 <관저>의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들쑥날쑥한 마름풀을 이리저리 헤쳐 흘러오게 하고
아리따운 아가씨를 자나 깨나 구하네.
구해도 얻지 못해 자나 깨나 그리네.
아득하고 아득해라, 잠 못들며 뒤척이네.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이 시는 명백히 남성이 여성에게 구애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학자들은 이 시에서 주나라 문왕(文王) 후비(后妃)의 아름다운 덕이라는 함의를 억지로 끄집어내었다.
이렇듯 오랜 세월 동안 곡해된 방법으로 읽혀온 시경, 더 나아가서는 고전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전은 현대인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시경에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성현의 가르침이 들어있지도 않다. 시경은 현대인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주나라 백성의 노래일 뿐이다. 따라서 시경을 읽고 지혜를 얻어 오늘날에 적용하겠다는 자기중심적 독해는 지양하자고 저자 양자오는 말한다.
양자오는 크게 두 가지의 독법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역사적 독법'이다. 이것은 고고학자의 자세로 고전을 탐구하는 방법이다.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눈으로 고전을 읽는 것이다. 즉,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천 년 전 주나라 사람의 입장으로 돌아와 시경을 감상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문학적 독법'이다. 이것은 첫 번째 역사적 독법과 연결된다. 역사적 독법을 통해 우리는 현재 우리 시대의 경험과는 이질적인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우리는 현재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고, 상식과 시대정신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있던 감수성과 지적능력을 시공간을 넘어 확장할 수 있다. 고전 읽기는 과거를 복원하는 행위인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