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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 Feb 09. 2024

지나치게 가엾지도 않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닌

20대에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

"괜찮아, 네가 기억 못해도 내가 기억하면 되지 뭐." 친구에게 언제나 듣던 말이다.


나는 그렇다. 이상하게도 친구들과의 추억이나 가족들과의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하등의 쓸모도 없던 수학의 공식 같은 것은 여전히 기억나곤 하는데도 말이다.


내 나이 25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가족의 죽음이란 몇 살에 겪어도 비극적이라지만, 나 같은 경우는 몹시 애매한 경우였다.

글로는 다 적을 수 없는 우리 가족의 상황도 그러하고, '25살'이라는 나이가 그렇게 적지 않은 것도 그렇다.

조실부모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든, 

그렇다고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인.


사실 나는 지금도 나 자신을 조금 가여워하고 있다.

어쨌든,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나는 이곳에 5장도 10장도 쓰려면 마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나 스스로를 연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내가 장례식장에서 친척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고, 그 날의 날씨는 어땠으며 내가 어머니의 유골이 담긴 함을 안고 살던 집을 돌아봤을 때의.... 등등을 술술 풀어내려다가 백스페이스를 몇 번이나 눌렀는지 모르겠다.


나는 추억에 대한 기억력이 좋지 못한데,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한 슬픈 기억만은 여전히 또렷하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는 하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머니의 모습, 목소리, 어머니와 관련한 추억은 빛을 바래만 가는데.

내 자기연민으로 강화된 것인지 뭔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내게 남긴 상처, 어머니의 야위어 가던 모습, 내가 정말 좋아하던 어머니의 냄새를 숨겨버린 악취, 그런 슬픈 마지막만이 여전히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어렸을 적 살았던 지방 도시에 내려갈 일이 있었고,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소꿉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들 입에서 나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열한 나는 그 때서야 깨달았다.

아,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


사랑으로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셨던 어머니에 대한 많은 부분을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 불현듯 두려워졌다.

그래서 그 날 결심했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어딘가에 남겨야겠다고.


감성이 예민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블로그에 일기를 썼었다.

그 나이 대 아이들이 그렇듯 읽어보면 인생에 대한 방황이나 삶에 대한 현학적인 질문만이 가득했다.

글로 남기면, 그 시절의 감성이 기억이 난다. 글로서 남긴 추억은 기억력이 나쁜 내게도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실마리와도 같았다.


그러니까, 글로 남기자.

어머니와 나의 행복했던 시절만을 기록으로 남기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는 나도 어른이 되어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어머니에게 원망스러운 점도 있었고.

또 돌아가시기 전,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정 떼기"라는 것을 실제로 어머니가 했는지 어쨌는지는 이제 와서 알 방도가 없지만, 모진 말을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덧붙여 나 자신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으로 점철이 되어, "어머니"라는 단어는 한동안 내게, 어쩌면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힘든 단어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늦기 전에라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도록,

그래도 아련함에 젖어 어머니를 추억이라도 할 수 있도록....

또렷이 각인 된 어머니와 나의 안좋은 추억은 일부러 배제한 채, 좋은 기억만을 떠올리며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이런 개인적인 글을 굳이 공개적인 장소에 적는 이유는...

사실 주제 넘은 생각이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싶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작고하셨을 당시에는, 내 주변 친구들은 당연히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아이들이 없었고.

딱히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어떤 자조 모임이나 커뮤니티가 있는 것도 아니라,

나는 물 건너 사는 작가가 본인의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을 적은 책까지도 구매해서 읽어보곤 했다.

당시에는 그랬다. 공감하고 싶었고, 나와 같은 상황의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니 혹시라도, 우연한 기회에.

지나치게 가엾지도 않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닌 나이에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은 사람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혹시 나처럼 부모님에 대한 기쁜 추억보다는 슬픈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래도 돌아가신 당신의 부모님 역시 당신을 사랑하셨을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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