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동굴에 떨어진 치토스 한 봉지
1. 발상의 시작
언옵테늄(Unobtainium). 영어로 읽으면 왠지 언-옵테이니움 정도로 길게 읽어야 할 것 같지만 ㄴㅇㅂ 검색해 보면 언옵테늄으로 쓰는 듯 합니다. 일단 보편적 발음을 따르겠습니다.
이 주제를 생각하게 된 것은 (위 부제에 썼듯이) '동굴에 떨어진 치토스 한 봉지'에 대한 기사를 읽은 다음입니다. 해당 기사를 읽고 나서 며칠 동안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대충 시나리오 정리를 하게 됐습니다.
동굴에 떨어진 치토스 한 봉지. "음~ 치~토스. 언젠간 먹고 말 거야!" 라는 광고 멘트로 유명했던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과자가 한 관광객의 손에서 미끄러져 동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관광객은 자신이 떨어뜨린 과자를 치우지 않았죠.
옥수수 과자 한 봉지는 동굴 밖 세상의 대형생물들에게 한 끼 식사도 안 될 수준이었지만, 동굴 안에서는 달랐습니다. 생체활동의 근원이 되는 화합물(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치토스 한 봉지 분량의 소화 가능한 열량'은 실로 어마무시한 축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치토스 한 봉지는 동굴 안 생태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원래 이 동굴 안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곰팡이가 대규모로 번식했고, 기존에는 있는듯 마는듯 조용히 지내던 곤충들과 세균들이 미친 듯 증식했다고 하네요.
결국 동굴을 관리하는 사람이 곰팡이로 오염된 치토스 조각들을 치워 버리면서 축복(?)은 끝납니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교훈(!)과 함께.
제 소설 패턴상 이런 이야기를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저는 천부인권 같은 인간우월주의 사고방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요. 소설 안에서도 인간을 상당히 하찮게 다룹니다. 핵전쟁 일어나면 인간 10억 명 죽는 건 일도 아니죠;;
아주 자연스럽게 [동굴 안 곤충과 세균 = 지구 안 인간] 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습니다. 저 우주 밖 어딘가의 초월적 존재가 우연히 지구에 치토스 같은 주전부리 한 봉지를 투척한다면 우리 인간들도 미쳐 날뛸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구 차원의 치토스. 그걸 뭘로 정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죠.
그래서 끌고 들어온 게 '언옵테늄'입니다. 아바타1을 볼 때 처음 알게 된 개념인데, 나름 지구 차원의 치토스에 적합할 것 같네요.
우선 언옵테늄에 대해 썰 풀고 나서 시나리오로 넘어가겠습니다.
2. 언옵테늄 : 아바타 이전 / 이후
(1) 아바타 이전의 언옵테늄
언옵테늄은 영어 obtain을 기본으로 부정 어근 + 원소기호 비스무리한 명사화 어미 를 붙인 구조입니다. '얻을 수 없는 금속'이라는 뜻이겠죠.
영화 아바타 이전의 언옵테늄은 '공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최강 금속'이라는 뜻으로 쓰였던 것 같습니다. 대략 요약하면
- 강철보다 가벼우면서 강철보다 훠어얼씬 더 강하고
- 녹이 슬지 않아 한 번 만들면 몇십~몇백년은 끄떡없고
- 열에 강해 1만 도 이상의 온도에도 구조가 약해지거나 휘어지는 일도 없으며
- 그 짱짱한 강도+경도+내화성 덕분에 우주선 선체의 재료로 쓸 경우 우주와 지구(혹은 비슷한 암석행성)를 자유롭게 왕복 가능한
금속을 의미했습니다.
현실에서 이 언옵테늄과 가장 가까운 금속으로 주목받은 게 '티타늄'이었습니다. 일단 강철보다 가벼우면서 강철과 비슷하게 강했고, 내화성도 좋았습니다. 실제로 20세기 중반까지 티타늄을 언옵테늄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하네요.
가벼울수록 좋은 '항공기'에는 티타늄이 킹왕짱이었습니다. 특히 군용 항공기에는 티타늄이 거의 필수재료 급입니다.
기존에 알루미늄 합금인 '두랄루민'으로 가벼운 항공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두랄루민 급으로는 방탄(防彈) 기능까지 기대하긴 어려웠습니다. 티타늄을 쓰면서 비로소 군용 항공기에 최소한의 방탄 성능을 부여할 수 있었죠. 높은 온도에 버티는 것도 중요했구요.
물론 현실의 티타늄(합금 포함)으로는 '강철보다 훠어어얼씬 더 강하고 1만 도 이상의 온도에 버틴다'는 것까지 구현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 상상의 티타늄 합금 중 가장 유명한 게 '건다리움'입니다. 전세계에 수많은 오덕후를 양산한 로봇만화 '기동전사 건담'에서 이 상상의 합금 건다리움이 등장하게 됩니다.
건담 이전의 로봇만화들은 딱히 복잡한 설정을 도입하지 않았지만, 건담은 나름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설정을 확립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주공간에서 사용되는 전투기계와 대기권 진입 상태에서 싸우는 전투기계가 서로 다르다거나, 굳이 로봇에 다리를 달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거나 등등. '말이 되는 설정'을 만들려고 했었죠.
그렇게 나름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설정을 도입했지만 '주인공 버프'는 남겨 둬야죠. 건다리움은 이러한 주인공 버프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건담은 우주전투-대기권 진입 전투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잘 싸우며, 허접한 적에게는 몇 대 맞아 봐야 긁힌 정도로 끝나고, 엄청 뜨거운 레이저 열선포를 맞아도 잘 버팁니다. 이런 하이스펙 소수정예 로봇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무지막지하게 비싼 합금으로 만들어서 킹왕짱 좋지만 1대 만드는 데 드는 돈이 나라 말아먹을 수준이라 많이 만들 수는 없어!"라고 하는 게 제일 좋죠. 건다리움 설정은 매우 탁월했습니다.
여담인데, 제 기억에 '로보트 태권V'는 원자폭탄의 20배에 달하는 에너지로 직격해도 버텨낼 만큼 강력한 합금으로 만들었다는 설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건 뭐 언옵테늄 수준을 넘어서서 인빈서블륨(invinciblium) 급이겠네요. 태권V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이 설정은 기억나네요.
기존의 언옵테늄은 이렇게 '겁나 딴딴하고 파괴하기 어려운 금속'이었는데, 영화 아바타1이 개봉하면서 언옵테늄의 개념이 완전히 바뀝니다. [상온 초전도체]의 개념으로 넘어가죠.
(2) 아바타1 이후의 언옵테늄
아바타1에서 그 회사 지부장이 임팩트 있게 설명해 주죠. 1kg에 2천만 달러가 넘는다는 초초초 희귀 고가 물질이며, 사무실의 정상 온도 속에서도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물질이 바로 '언옵테늄'입니다.
영화에서는 그냥 '정상 온도에서 공중에 떠 있다'는 정도로만 보여 주고 그 때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습니다. 그런데, 2023년쯤 이 대한민국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죠.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기사가 났었습니다.
상온 초전도체 기사가 날 당시에 자료사진으로 '금속판 위에서 아주 살짝 고개를 쳐들고 있던 금속 조각 사진'을 많이 썼는데요. 초전도 현상이 발생하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자기장 반발로 금속을 공중에 띄울 수 있다고 하는데, 이걸 상온(常溫)에서 달성할 수 있다면 세상이 크게 바뀐다고 합니다. 정말정말 크게 바뀐다고 합니다.
상온 초전도체가 가장 크게 바꿀 분야는... [핵융합]입니다. Nuclear fusion. (silo is ready 부분은 생략)
핵융합은 핵분열에 비해 몇십 배 강한 에너지를 낸다고 합니다. 문송한 수준이라 자세히 설명할 능력은 없습니다만 대략 핵융합이 상용화되기만 하면 현재 운영되는 원자력발전보다 수십 배 낫겠죠.
다만, 아직까지는 핵융합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폭탄으로 히밤쾅 터뜨리는 건 70년 전에 이미 달성했지만 원자력발전 방식처럼 '필요한 만큼 조금씩 에너지를 꺼내 쓰는 방법'으로는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핵융합은 현재 지구인들이 쓸 수 있는 최고 최강의 에너지원이긴 하지만, 그 강력함 때문에 역으로 에너지를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임계 플라즈마 조건을 달성하려면 제한적인 범위에서 섭씨 1억도까지 올려야 한다는데, 금속이든 도자기든 다 기화(氣化)되어 버리겠죠.
이걸 가두려면 [진공의 공간에 띄우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 '띄우기'를 위해 초전도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구 중력을 이겨 내고 핵융합 원재료가 될 삼중수소들을 공중에 띄워 놓으려면 강력한 자기장 반발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겠죠.
그런데, 현재 기술로 초전도체를 만들려면 거의 절대0도(섭씨 기준으로 -276도) 수준까지 냉각해야 합니다. 이 냉각에 필요한 에너지만 해도 어마무시하게 많이 들어갈 겁니다.
어마무시한 에너지로 절대0도에 가까운 환경을 생성해 내고 그걸로 초전도체를 만들어 핵융합 물질들을 공중에 띄웠는데 막상 핵융합 시작되면 거기에서 1억도 급으로 뜨거운 열이 뿜어져 나오고 이 뜨거운 열을 (가급적 매개체를 최소화하여) 복사 에너지로 받아낸 뒤 그 복사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데 이 복사 에너지만으로도 너무 뜨거워서 티타늄 급 챔버가 손상될 수준인데 그 와중에 초전도체를 절대0도로 유지하느라 계속 냉각시켜야 하는 상황. 이게 현재 핵융합 방식이라고 합니다.
(문송한 걸 저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상온 초전도체'가 등장한다면?
모든 것이 대폭 쉬워집니다. 절대0도 냉각을 위한 장치가 사라지고 오로지 진공에서 임계 플라즈마 조건을 달성하는 문제와 그 강력한 에너지를 복사열 방식으로 받아내 전기로 전환하는 문제만 남습니다.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이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어 내고 소형화까지 성공시킨 게 '아이언맨'입니다. 그것도 동굴에서 만들어 버리죠. 외계인과 맞짱 뜰 만 합니다.
아이언맨 급 소형화는 좀 미뤄 둔다 해도, 상온 초전도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핵융합 발전소가 세계 곳곳에 설치되고 그 어마무시한 에너지를 싼 값에 공급할 수 있다면 인류 문명이 확 바뀔 겁니다.
장기적으로 '핵융합 엔진을 장착한 우주선'까지 개발된다면, 그 때는 더 많은 것이 바뀌겠죠. 이론적으로는 핵융합 엔진으로 광속의 25% 정도까지 가속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정도면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암석행성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 같은 곳으로 이주할 수도 있을 겁니다.
뭐, 아직까지 지구에서 상온 초전도체가 발견되진 않았고 인간 스스로 그런 물질을 만들어 내지도 못했습니다. 단일 물질이든 합성물이든 간에 아직은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상온 초전도체를 툭 떨어뜨린다면? 인간이 동굴 바닥에 치토스 한 봉지를 떨어뜨렸듯이, 저 너머 초월적 존재가 지구에 언옵테늄(상온 초전도체) 한 덩이를 툭 떨어뜨렸다면?
이 시나리오로 소설 전개해 봅시다.
3. 시나리오 : 지구에 떨어진 언옵테늄 한 덩이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처음에는 인간들은 '그것'을 보고 그저 커다란 운석이 떨어지는 걸로 생각했었다. 그대로 히밤쾅 지구에 떨어지면 공룡대멸종 급 재앙이 일어날 것 같으니, 인간들은 핵폭탄을 설치해 뽀개 버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핵폭탄으로 부서진 운석 조각들이 지구 궤도에서 타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지구 궤도로 들어온 뒤 속력을 줄이면서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지상에 맞닿을 때에는 거의 솜털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랬다. 이 운석 조각들은 '반중력 물질'이었고 상온 초전도체로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이었다. 인류가 꿈에 그리던 언옵테늄 그 잡채였다.
운석 조각이 떨어진 나라들은 땡큐베리감사 그레이트 럭키비키. 그들은 상온 초전도체를 이용해 핵융합 발전소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미 핵융합 기술 연구에서 선두주자였던 '대한민국'도 이러한 나라들 중 하나였다.
대형 핵융합 발전소를 만든 나라들은 인근 국가에 전기를 팔아먹었고, 전 세계적으로 전기료가 폭락한다. 화력발전이 거의 의미 없게 되면서 화석연료 사용이 급감했으며, 교통수단도 값싼 전기료를 기반으로 재편된다. 환경 문제가 확 줄어든 건 보너스.
인류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한다. SF 작품 속에서나 보던 미래형 최첨단 도시가 곳곳에 출현하고 잘 사는 나라는 더욱 더 잘 살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언옵테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운 좋게 한 덩어리의 언옵테늄이 떨어지긴 했지만, 인류는 이 물질을 추가로 얻어내지 못했다. 만들 수도 없었다. 지구 곳곳에서 이 언옵테늄을 다 쓰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언옵테늄을 단 1kg이라도 더 확보해야 했다. 이걸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국 '전쟁'이었다.
인류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야기의 주인공도 그 전쟁에 참여한다.
이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것은 '트랜스보병'이었다. 언옵테늄을 활용한 소형 핵융합 발전장치를 일개 병사에게 장착한다는 정신나간 컨셉이었는데, 의외로 이 정신나간 짓거리가 무시무시한 전략병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대충 트랜스보병 컨셉은 아이언맨 급)
주인공은 트랜스보병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 신인류 아무로 레이 정도는 싸댁 날릴 정도로 뛰어나다. 대략 이야기 대부분은 이 주인공의 활약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 인류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지구에 떨어진 언옵테늄은 결국 '동굴에 떨어진 치토스 한 봉지'와 비슷했다는 것을.
동굴에 떨어진 치토스는 동굴 관리하는 아저씨가 치워버렸다. 그 치토스에서 번식한 곰팡이와 각종 곤충과 세균 모두 같이 사라졌다.
지구에서 인간끼리 투닥투닥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치토스를 치우러 오는 (초월적인 외계 생물) 아저씨가 더 큰 문제다.
크툴루 신화 급 청소 아저씨가 지구로 오고 있다. 곰팡이 급 인간은 이 아저씨에게 맞설 수 있...을까?
해 봐야지. 소설 쓰는 사람이 '곰팡이 급 인간'인데 어떻게든 이겨 봐야지.
* 이 시나리오도 고이 간직해 두겠습니다. 80살 전에는 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