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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Dec 03. 2024

폭풍성장 부작용의 원인분석1 - IPTV의 위협

1년 반 동안에 5개의 SO를 인수하며 덩치를 확 불린 헬로비전. 제 기억에, 당시 헬로비전은 16개 권역에서 23개 권역으로 약 50% 이상 덩치를 키웠었습니다.


그리고 헬로비전은 유선방송 이외의 영역에서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매출 규모를 더 확대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알뜰폰'이 있었고, 기업영업이라 불리는 B2B 시장에서도 각종 상품을 팔아치웠으며, (지금은 E&M이 운영하는) '티빙'도 2010년대 초반에는 헬로비전이 운영했었습니다.


이렇게 덩치를 키운 결과, 헬로비전은 3년 만에 2배로 커졌습니다. 2011년에 매출 5천억 규모였는데 2013년에 8천억 가까이 되었고 2014년에는 1조를 넘어섰습니다.


실로 '폭풍성장'이라 할 만 했죠. 당시 헬로비전 기업영업팀이 [폭풍성장의 중심]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회사 전체적으로 폭풍성장하긴 했습니다.


그 부작용이 좀 심각했을 뿐.


앞서 챕터에서 말한 대로, 헬로비전 폭풍성장의 부작용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는 대외요인과 대내요인으로 나눠서 정리할까 합니다. 우선 대외요인으로 IPTV부터 보죠.



1. 대한민국 IPTV 상품의 특수성 : 통신3사의 위용


유선방송업은 기존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종래에는 방송신호를 케이블로 단순 연결해 송수신하는 방식이었는데, `90년대 후반에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신호로 송수신하는 방식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디지털 유선방송'은 구조적으로 IPTV방식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방송법상으로는 별도의 사업자고 디지털 방송신호에서 일부 차별성을 두긴 합니다만, 구조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요. 초기에는 유선방송 선을 따로 연결하느냐 / 인터넷선 하나로 연결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었지만 2010년대에는 유선방송도 인터넷선을 통해 동시 송출하게 되면서 사실상 동일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이게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애당초 유선방송과 IPTV를 구별할 만한 이유도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 미국은 유선방송사가 유선인터넷을 운영했었거든요.


즉, 미국은

모바일 이동통신을 중심으로 한 무선인터넷 시장 / 유선인터넷과 유선방송 시장 이 각각 분리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이동통신 쪽이 무선인터넷에 집중하는 동안 유선방송사업자가 유선인터넷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미국 자체가 워낙 넓으니 지역별로는 일부 경쟁이 있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각자의 사업 영역이 달랐어요.


그런데... 한국은?


잘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통신3사는 압도적인 매출과 순이익을 자랑(!)하면서 유선인터넷 시장까지 모두 지배하고 있습니다. SK, KT, LG 3개 통신사가 무선인터넷(모바일 이동통신) 시장을 나눠먹고 있으며 유선인터넷 시장은 그냥 그 무선인터넷 상품에 결합하는 부가상품 정도로 인식되고 있죠.


이렇게 [통신3사가 유.무선 인터넷 시장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는 상황이 한국적 특수성으로 작용해 유료방송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통신3사가 유선인터넷을 활용해 IPTV서비스를 개시하자, 기존에 유료방송을 하고 있던 유선방송사업자 측이 확 쫄리게 되죠.

(쫄리냐? 쫄리면 뒈지시던가...는 아니고.)



2014년인가 뭐 그 때를 기준으로 하면,


당시 방송사업자 총 매출이 4조 수준이었습니다. 유선방송뿐만 아니라 그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지상파 3사 및 각종 PP(프로그램 프로바이더)들의 매출을 모두 합쳐서 4조였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한국 방송 콘텐츠를 해외에 판매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내수산업이었고 그 전체 크기도 작은 편이었습니다.


반면 통신3사 측은... 총 매출이 30조 넘었을 겁니다. 통신3사 중 가장 작은 LG유플러스의 한해 매출이 5조 이상이었고, 1위 사업자 SK텔레콤은 15조인가 20조 정도 됐어요. 압도적으로 컸죠.


게다가 통신3사는 순이익 규모가 장난없습니다. SK텔레콤은 기본으로 조 단위 찍어 주고, KT도 1조 전후에서 움직입니다. LG는 가끔 적자 나지만 전반적으로는 5천억 수준의 순이익을 유지하죠.


즉, 덩치로 보면 통신3사가 방송업을 쓸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작정하고 덤비면 지상파3사 포함해서 모든 방송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어요. 물론 지상파3사를 인수하는 건 정부 허가가 필요하고 정부가 그 정도로 독과점을 허용할 리는 없으니 지상파3사는 논외로 해야겠지만, 그 외의 모든 유선방송사업자와 방송제작업자 전체를 인수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통신3사가 IPTV 사업을 시작했죠. 대략 2007년 즈음에 시작했던 것 같은데, 이들의 영업력과 모바일 결합상품의 힘을 고려하면 유선방송사업이 위축되는 건 불 보듯 뻔했습니다.


유선방송 측은 큰 위기의식을 느꼈고, IPTV에 맞서기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했습니다. 뭐 그 대책 중 일부는 '담합'이 되기도 했었죠;; 다 지나간 일입니다만 당시에는 부당공동행위로 공정위 제재를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긴 해도 결국은 IPTV의 위협에 버텨낼 수는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러했죠.


유선방송사업자 각각의 대응전략에 대해서는 항을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2. 각각의 대응전략 : 캐쉬카우냐 / 덩치를 키우느냐


앞 챕터에서 얘기했듯이, 2010년대 초반에 유선방송사업에는 5개 MSO가 있었습니다. 헬로비전(CJ계열), 티브로드(태광계열), C&M(MBK계열), HCN(현대백화점계열), CMB. 이들 5개 MSO가 사업을 주도했고 군소 SO는 그걸 따라가는 상황이었습니다.


IPTV의 위협이 있을 때 '유선방송사업 전체를 통합하자!'는 논의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실행할 수 없는 전략이었습니다. 각 소속 그룹이 해당 유선방송 회사를 현물출자하거나 지분 전체를 매각하고 그 지분들을 통합해 거대한 하나의 단일 회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룹 별로 판단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전체가 단일대오를 이룰 가능성은 0%였습니다.


그룹 별로 다른 판단. 크게 나누면 '캐쉬카우냐 / 덩치 불리기냐' 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다르겠지만 큰 틀에서는 둘 중 하나예요.



사업이 숙성~쇠퇴 단계에 접어들어서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해 내긴 하지만 성장성은 크게 둔화된 회사를 캐쉬카우(Cashcow)라고 부르긴 합니다. IPTV의 위협 초창기의 유선방송사업은 전형적인 캐쉬카우였어요. 당장 돈을 잘 벌긴 하는데 그렇다고 사업을 더 확대할 가능성은 낮은 산업이었죠.


이 상황에서, 태광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은 '캐쉬카우 상태로 쭈욱 밀고 나가자!'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즉, 계열 유선방송사를 무리하게 키우지 않고 현금 따박따박 적립하면서 그 현금을 활용할 기회가 있으면 활용하고 아니면 그냥 현금 쌓아놓기만 하자는 식으로 대응전략을 수립.시행했습니다.


2012년까지는 CJ그룹도 비슷한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헬로비전을 무리하게 키우기보다는 현금을 쌓아 놨고, 그 현금이 3500억원에 달했었죠. 매년 벌어들이는 돈이 있으니 계속 현금 적립했으면 최대 1조 이상 쌓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헬로비전은 2013년부터 전략을 바꿉니다. '캐쉬카우로 만족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유선방송사를 인수해 덩치를 키우겠다!'는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한 것입니다.



이 덩치 불리기 전략이 그 자체로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유선방송도 종래의 케이블 방식에서 셋톱박스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었고, 덩치가 커지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여 셋톱박스 구매협상 등에서 원가를 대폭 절감할 수 있거든요. 적절한 수준에서 잘 키우면 IPTV에게 잠식당하는 시장에서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적절한 수준에서 잘 키운다'는 게 참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3. 헬로비전의 덩치 불리기 전략은 제대로 운영되었는가?


이제 좀 민감한 얘기를 해야겠네요. 헬로비전이 캐쉬카우에 만족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유선방송사를 인수한 게 과연 바람직했는지, 부작용은 없었는지 따져 보겠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전략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닙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잘 키웠으면 참 좋았겠죠. 적절한 가격으로 적절히 좋은 SO를 인수해 잘 키웠다면 나름 좋은 전략이 되었을 겁니다.


다만... 사후적으로 판단할 때 헬로비전은 이 SO인수 전략을 과도하게 남용했습니다. 대놓고 말하면 '비싼 가격으로 별 가능성 없는 SO를 인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웹소설 소재 모음집에 올린 '유선방송업의 역사'에서 상세히 다뤘으니 이 글에서는 짧게 요약하면,


- 지방의 군소 SO의 경우 별도 사업을 말아먹는 등으로 인해 자금사정이 매우 열악한 SO가 많았고

- 지방의 특성상 인구밀집도가 낮아 유선방송을 새로 개통하려면 통신선을 매우 길게 연결해 줘야 했으며

- 공시청가입자 및 0원 가입자 등 가입자 숫자 부풀리기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잘 운영해 온 SO도 있었지만 심하게 망가진 SO도 있었어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초반에는 '잘 운영해 온 SO'를 인수했었습니다. 수도권에 있던 '의정부나라방송'이 그러했었는데요. 여기는 나름 경기도 지역이라 인구밀집도가 괜찮았고, 원래 LG-GS 방계였던 깨끗한나라(제지회사) 측이 운영하면서 사업 방식도 투명했었습니다. 인수가격도 이후 M&A건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죠.


그런데... SO인수에 탄력 받으면서 헬로비전은 점점 더 안 좋은 매물에 손을 뻗치기 시작합니다. 자본잠식 상태에 인구밀집도가 낮아 케이블 까는 것도 어려운 지역이며 0원 가입자가 8~10%에 달하는 SO를 몇백억 주고 사들이게 됩니다.



3500억원의 현금은 봄날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매출은 1조를 넘어 2배로 성장했지만 회사 영업이익은 1천억원 초반으로 약 33% 감소했습니다. 새로 인수한 SO들은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깎아먹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헬로비전은 계속 성장전략을 추구했습니다. 덩치를 키우는 게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상황인데도 계속 덩치만 키우려 했습니다.


결국 헬로비전이 망가진 건 대외적 요인보다 내부 요인이 더 컸습니다. IPTV의 위협이라는 외부의 파도가 정말 높고 험난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CJ그룹 내부적인 요인이 훨씬 더 나빴고 치명적이었습니다.


CJ그룹의 내부적 요인. [그레이트 CJ]라 불리는 이상한(!) 사상이 큰 문제였습니다.


이건 다음 편에 다루겠습니다. 당시 CJ그룹에 계셨던 분들은 불편해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 또한 당시 CJ 실무자로서 fact를 제 경험대로 가감없이 재평가하는 것이니 불편하든 말든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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