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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우린 Feb 19. 2024

공장알바가 낙하산으로 취직한 일.

첫 직장을 퇴사한 뒤, 채용공고 사이트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사이트에는 정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내가 있는 지역에는 거의 사람을 대면하는 서비스직군이 대부분이었다. 이때 당시 나는 원래 내향적인 성격도 있었지만 전 직장의 영향으로 인해 더 사람을 기피하고 대면하기 힘든 경향이 있어 서비스직군에는 지원하기 어려웠다.

열정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또다시 전 직장에서 같은 일을 겪으면 내 정신이 정말 못 버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 서비스직종과 비슷한 음식점, 카페, 편의점, 매장 등과 관련된 서비스 일은 모두 걸렀다.

그렇게 거르다 보니, 남는 일들은 막노동과 같은 일밖에 없었고, 나는 그중에 화장품포장아르바이트를 지원하여 일하게 됐다.


매일매일 회사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가서 아침에서부터 저녁까지 8시간을 일했다.

월급은 최저시급으로 환산한 120만 원 정도였고 잔업을 하면 수당이 붙어 조금 정도 더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잔업은 정말 특별한 게 아니면 잘 안 하려고 한 것 같다.

왜냐하면 8시간을 같은 자세로 서서 장시간 일하는 것도 손이 까지거나 물집이 잡히고 허리와 다리가 아픈데 잔업까지 하면 몸이 더 심하게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 파스도 종종 붙이면서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며칠 안가 그만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몸이 그렇게 힘들어도 꽤나 공장일에 잘 적응해 만족하며 다녔다.

친구와 같이 일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같이 일하는 공장이모들이 가끔 간식도 챙겨주시며 일을 빠르게 잘한다며 칭찬해 주셔서 일 수도 있다.

그 전 직장에서는 한 번도 칭찬이란 것을 받아본 적이 없고 무시만 당했는데, 이곳에서는 다들 서글서글하게 잘 대해 주시고 이뻐해 주셔서 좋았다.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그렇기에 아마 나는 아빠의 연락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 공장에서 잘리기 전까지 계속 일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일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인가.

오전일을 마치고 점심휴게시간에 쉬고 있을 때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빠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전화하세요?’

통화 목록을 보니 부재중이 2통 찍혀 있었다.

현장에 들어갈 때는 전화기를 들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받지 못했던 것이다.

곧바로 아빠에게 전화하니 시시콜콜한 안부와 함께 자신의 친구 중에 학교에서 교수하는 친구가 있는데 내 얘기를 해뒀으니 들어가서 일해보라고 권유했다.


교수라니. 그럼 내가 하게 될 일은 조교정도 되는 것인가? 학교는 어떤 학교인거지? 교수라는 직책이 있는 걸로 보면 대학교인가?

아빠의 말을 듣고 수많은 의문점과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아빠도 자세히 알지는 못했는지 대충 얼버무려 답했다.

그리고 그 뒤에 답답하다는 듯이 이렇게 덧붙였다.

‘계속 거기(공장)서 일해봐야 뭐 하냐’


비수를 꽂는 말이었다.

매일 직장인들이 버는 만큼의 돈도 벌지 못하고 배울 것도 없고.

여기서 오래 일해봐야 뭐 할 게 없는 게 맞으니까.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빨리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는 아빠한테 알겠다고 대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친구가 계시는 학교라는 곳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적어도 공장일을 하는 것보다야 아빠가 만들어온 기회가 훨씬 나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거에 일 때문에, 나의 성격 때문에 더 이상 내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를 회피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면접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나는 그 후 정직원은 아니지만 1년 계약직으로 출근을 하게 됐다.

그리고 출근을 이어나가면서 이곳이 학교가 아니라 위탁교육을 진행하는 교육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보자는 마음밖에 없어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곳에서 본 면접은 형식상 본 것이고, 아빠친구라는 인맥으로 취직한 거나 다름없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낙하산이었다는 것이다.


계약직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정정당당하게 서류합격부터 면접합격까지 경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하나뿐인 제일 부끄럽게 취직한 직장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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