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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우린 Mar 03. 2024

마음이 기억하는 직장상사

두 번째로 입사했던 회사의 직장상사는 좋은 분이었고 멋진 분이었다.

물론 그분이 아닌 다른 직장상사를 만났더라도 또 다른 좋은 분을 만났을 수도 있었겠지만, 의미가 달랐다.

교육기관이라는 직장의 특성상 그분도 학생들과 소통해야 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분의 주는 학생들의 진로, 심리 상담 그리고 출결 정리였는데 직장 동료나 후배들의 심리상담도 하시는 걸로 봐서는 꽤나 그런 쪽으로 유능하셨던 분인 걸로 기억한다.

물론 아무나 해주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분의 테두리 내에 있는 사람으로,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어 상담이 필요한 분들 위주로 해주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들이 관리하는 학생들의 고민거리나 상담이 필요한 학생들의 상담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 또한 시간이 지나 그분께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그분의 테두리 내에 들었다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분이 결정적으로 나에게 신뢰관계를 허락해 주었던 것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사건에 있어서부터였는데…

그전에 한번 얘기했지만 나는 이 회사를 나의 힘으로 들어온 게 아니다. 경쟁자 없이 아빠친구라는 인맥을 통해 들어온 것에 가까웠고 이에 신경 쓰지 않는 분들도 있었지만 당연히 경계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계하시던 분들 중 한 명에 그분이 있었다.

그 분과 아빠친구와는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다. 내가 있기 전에 얘기를 들어보니 오랜 회사생활 동안 그 분과 아빠친구 사이 일적으로 트러블이 종종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친구 통틀어 비슷하게 다른 몇몇 좋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분은 회사내부에 관계들에 대해 알려줬다. 입사 초에는 일을 배우고 그런 것에 대해 무지했기에 몰랐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회사 내부에는 정치질, 비리, 인맥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와중, 내 케이스가 인맥으로 인해 취직한 사원이니… 나라도 좋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인맥으로 들어온 친구가 가르쳐야 하는 후배로 들어왔는데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 내 앞에서 말을 잘못 꺼냈다가는 내가 아빠에게 그 얘기를 전달하고 아빠는 또 아빠친구에게 그 얘기를 전달하고 또 잘못하면 윗분들에게까지도 그 얘기가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아빠와 사이가 그리 가까운 것도 아니었고 아빠친구분 하고도 직장에서 만난 게 처음이라 서먹서먹하고 친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아는 아저씨일 뿐이었다. 그러니 내 앞에서 무슨 말을 해도 나는 그걸 굳이 아빠한테나 아빠친구한테나 말할 이유가 없었다.

그분이 나에게 경계를 조금 느슨하게 푼 것은 그게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내가 회사의 어두운 내면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본색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 않은 것.


아무튼, 나는 그분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전문적으로 상담을 받을 기회가 생겼고 이를 통해 자라온 환경, 성향, 비밀 등을 털어놓았다. 처음에 말문을 틀 때는 꽤나 어려웠는데 그분께서 내 얘기를 잘 들어주시고 진지하게 공감해 주시니 쉽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한 환경에서 쉽지 않았을 텐데 바르게 잘 자랐다고.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친구들에게 얘기했을 땐 ‘어쩔 수 없지 힘내’ ‘어떡해..’와 같은 형식적인 위로만을 받았는데 그분은 정말 진심으로 나의 환경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조언해 주시는 것처럼 보였다. 또래가 아닌 연륜이 있으신 분과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아서 그런 걸까.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직장상사라는 것은 기피하고 싶고 긴장되고 초조한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그분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좋은 직장상사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직장에서 직장선배, 동료분들과 잘 지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실제로 그분 포함하여 좋은 직장선배 동료분들과 모여 밥을 먹기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오락실이나 사격체험 같은 것도 했으니 말이다. 여러모로 직장생활의 깨달음에 있어 그분은 중심에 있었다.













현재 삶에 집중하면서 그분에 대해 잊고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글로 그분을 다시 기억하게 될 줄 몰랐다.

내가 그 회사를 나와서도 종종 안부를 물어봐주셨는데 연락처가 없어 연락드릴 수 없지만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 분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내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얘기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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