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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우린 Mar 10. 2024

미친놈과 마주한 일

교육기관의 행정직으로 일을 시작하여 적응한 지 조금 지나서의 일이었다.

기관 내에서는 기숙사동에 체육교사가 한 명 더 필요하여 나와 같은 계약직으로 직원 한 명을 더 채용했다. 그분은 나와 다른 건물인 기숙사동에서 일하기 때문에 마주 칠일은 거의 없었다.

대화하거나 마주쳐야 할 일이 있다면 회의시간이나 학생들 생활기록부, 상장관련해서 대화하는 게 전부였다. 앞으로도 그렇게 주욱 아무 탈 없이 지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간다고 했던가.


회의시간을 통해 각 선생님들의 업무에 조금씩 변동이 생기면서 그 분과도 기존일과 다른 종류의 일로 서류를 확인해야 하는 때가 한 번 있었다.

그분에게 전달받은 서류가 첨부내용이 빠진 것인지 사내양식에 맞춰 작성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둘 중 하나의 문제가 있어서 메신저로 참고내용과 함께 다시 한번 전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내 그분에게 전화가 왔는데 할 말이 있다며 자기가 있는 기숙사동으로 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서류수정에 어려움이 있다면 전화로도 충분히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분이 나보다 나이도 어느 정도 있으시고 오라고 하는 걸 보면 말할 내용이 많은가? 싶어, 전혀 의심 없이 기숙사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간 그 기숙사동에서 기다린 것은 말도 안 되는 그의 화풀이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자기가 나이도 있고 다른 곳에서도 일한 경력도 있는데 왜 그런 메시지를 보내냐며 자기를 무시하는 거냐고 정말 미 X 놈처럼 날뛰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어이없지만,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렸고 사회생활경험도  적었기 때문에 대처방법을 몰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왔다. 그리고 내가 있는 건물로 돌아가는 동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비난한 그 인간에게 화나기도 하고 왜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서럽기도 하고 처음 입사했던 회사에 받았던 비난도 생각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 때문에 회사일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울지 않은 척 내 자리로 돌아가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학부모 전화였고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잘 전화를 받는가 싶었지만 말하는 중간에 머리가 하얘지는 동시 서러움이 복받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왔다. 전화를 한 학부모도 내가 목소리를 떠는 게 느껴졌는지 당혹스러움과 함께 조심스러운 말투로 뭐라 뭐라 얘기했으나, 그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냥 지금 당장 전화를 끊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울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다는 한계에 도달했을 때쯤, 누군가 내 손에서 수화기를 낚아채 갔고 그분이 내가 의지하고 좋아하는 직장상사이자 상사라는 걸 확인하자 안도감이 드는 동시 눈물이 흘렀다.

휴지로 눈물을 닦고 있는데, 몇 분도 안되어 전화를 마친 사수는 내 상태를 살피고는 조용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왔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기숙사동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다 크게 얘기한 게 없는데도 사수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갔는지 크게 분노하며 한 번 얘기는 해야겠다며 나섰다. 참 좋은 사수였다. 자신의 후배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나서주는 상사가 몇이나 될까.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고 이후 나에게 화풀이했던 그 체육교사와는 더 이상 마찰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인간과 마주치지 않으려 내가 최대한 피한 것도 있었지만 그 인간도 나에게 말 걸지 않고 말수가 짧아져서  그런 걸 지도. 그러나 나와 거리를 두려는 그 인간의 태도가 미안함이 있어서 혹은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어서 그런 거라고는 볼 수 없었다.

들리는 이야기로 봐서는 강약약강의 인간으로 윗분들에게 아부를 떨어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인간과의 일을 통해 내 환경이 전과 달라졌다는 것과 스스로 조금은 성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 직장에서는 나를 비난하고 무시하는 사람들만 있어서 위축됐다면 여기서는 비난을 받아도 도와줄 누군가 있으며, 숨이 턱턱 막히고 미숙했던 전화업무도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으니까.


그렇다. 나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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