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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우린 Apr 13. 2024

낙하산의 최후

팀장님은 곤란한 건지 미안한 건지 헷갈리는 표정으로 내게 재계약을 못 할 것 같다고 통보해 왔다.

며칠 전부터 회사사정이 어려워 구조조정이 있을 거다라는 말을 회사사람들을 통해 얼핏 들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고 나왔지만, 막상 통보받은 장소를 벗어나자 별별 생각이 다 들어서 마음이 뒤숭숭했다.

지금까지 윗사람들에게 아부 떨거나 한 적이 없으니, 찍혀서 잘린 것일까.

아니면 내가 회사에서 만족스러울 만큼 일을 잘하지 못해서 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하는 일 이외 딱히 회사에 도움 되는 게 없어서 가성비가 떨어져서 잘린 것일까.


 참 아이러니했다.

딱히 이 회사에 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래 다니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잘린 이유에 대해 유추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냥 아 회사사정이 어려워져서 잘렸나 보다~ 하고 단순히 생각할 순 없던 것일까.


아무래도 잘린 사람이 몇 안되고, 나 같은 계약직 직원들만 잘려서 그랬던 것 같다.

 마치 수능을 봤는데 친구들은 다 대학에 붙고 나만 떨어져서 비교되는 느낌.

나만 뒤처진다는 느낌.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업급여와 국비지원을 받으며 내가 배워보고 싶은 것도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재계약이 안되었던 것에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렇게 고인 곳에 낙하산으로 들어와 오랫동안 근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을뿐더러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뻔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계약을 안 해준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


나는 두 번째 회사를 나오며 스스로 조금 더 흥미 있고 만족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고 웬만하면 능력도 없이 누군가 무작정 꽂아주는 회사에는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의 작은 성장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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