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우린 Apr 20. 2024

한심하게 보낸 기회

두 번째 회사에서 잘리고 나서부터는 고용노동부로 가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집에 있는 컴퓨터로 국비지원으로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찾아봤다.

확실히 첫 번째 회사를 그만뒀을 때보다는 마음이 편하다고 느껴졌다.

아마 두 번째 회사에서 1년 정도 일하며 자잘 자잘하게 배운 사회생활과 사무능력

그리고 실업으로 인해 받게 된 생활비와 새롭게 알게 된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국비지원이라는 교육프로그램 덕분이었던 것 같다.

국비지원으로 받을 수 있는 교육을 찾아보니

대부분 회계, 사무, 액셀, CAD와 같은 것들이었고 종종 미용, 제과제빵, 바리스타 같은 것들이 보였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회계사무와 같이 딱딱한 일들은 흥미도 없었고 맞지도 않았으며

미용, 제과제빵, 바리스타의 경우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져야 해서 그 당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던 나에게는

별로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했던 분야가 웹디자인이었다.


웹디자인은 컴퓨터 언어를 통해 웹사이트를 꾸미거나 배치하는 일이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숫자와 영어를 친근히 해야 하는 일이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숫자와 영어에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갈 수 도 없는 노릇이었고

국비과정에서는 이것만큼 관심 있던 분야의 교육과정도 딱히 없었기에 불만 없이 수업을 계속 들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터득하며 할 줄 알게 되어 재미있고 집중도 잘 되고 해서 나름 만족하며 배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 실력에 만족할 순 없었다.

같이 듣는 교육생들 중 훨씬 잘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하나 배워서 하나를 깨우치면 그 사람들은 하나를 배워 둘을 깨우치고 셋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나름 혼자서 잘하고 있다고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다 보니 내가 보잘것없이 느껴졌고 비교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죽어라 노력하면 그 사람들의 반은 가거나 그 사람들과 동등하게라도 됐을 텐데

죽어라 노력은 하기 싫고, 잘하는 사람을 제치고는 싶으니 참 내가 봐도 한심했다.


교육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게임을 켰다.

채팅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내가 배운 것들을 복습하는걸 뒤로 한 채, 하루를 보냈다.


그게 더 재밌으니까.


이 배움조차 하나의 작은 기회라고 생각하지 못한 나는

그렇게 어영부영 다른 교육생들과 다르게 조금 뒤처진 채로 국비 6개월 과정을 마쳤다.

작가의 이전글 낙하산의 최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