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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26. 2023

불안과 산책하기

독서 : <불안의 책>을 읽고

-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을 들여다보려는 단 한 번의 노력을 해야 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나를 응시한다. 말 그대로 내가 어제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고,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 지를 나 자신에게 설명하려 한다.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문학동네, p.31


나는 산책중독자였다. 나가서 걷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은데 그걸 감당할 수가 없었다.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 무엇에도 뛰어들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지. 모든 기억은 흐려진다. 단절된 시간만큼, 그때와 지금의 나는 같은 이름과 기억을 공유할 뿐 같은 사람은 아니다.


 오래 걸으면 지구력이 생기고, 그게 이어져 오래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은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깨졌다. 걷기가 달리기에 도움이 아예 안 됐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미미했다. 걷다 보면 종아리부터 무릎, 허벅지, 몸 전체가 피로해지긴 했지만 숨이 찬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오래 걸으면 오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될 뿐이었다. 긴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긴 거리를 달려야 했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나는 항상 돌아가곤 했다. 결국엔 그곳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평생 주변만 맴돌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내 근황을 전하니, 다들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새벽 수영, 마라톤. 생각해 보면 놀랍다. 나는 평생 정적인 인간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본질은 그렇다. 생각이 너무 많고, 생각이 행동을 가로막아왔다. 이제는 세상만사 모든 행동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는 것. 행동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출발선도 넘지 못하고 다른 주자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길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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