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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22. 2023

서로 다른 게 당연하다

독서 : <타인을 듣는 시간>을 읽고

 나이가 들면 모두가 지혜로워지고 현자가 될까. 아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 모두 대단한 현자가 되었기 때문에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늙기 마련이고, 때가 되면 죽음이 찾아올 뿐이다.


 삶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할 나이가 됐음에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진상 부리는 노인을 마주할 때마다 안타까웠다. 이 생에서 아직도 안식을 찾지 못했구나.


 사회나 환경을 핑계로 악행을 변호할 마음은 없지만, 전적으로 개인의 잘못일까 하는 의문은 가질 수 있다. 존중받고 사랑받는 말년을 보내고 있을까. 개개의 사건을 보고 판단하기 힘들다면 대한민국은 노인 자살률 1위의 국가라는 걸 떠올려보자.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선 나이도 차별의 이유가 된다. 노인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약자가 됐다. 노인 공경은 약자를 배려하자는 말이그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너도 나도 살아남는다면 노인이 될 테니까.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하고 대우한다면, 그것은 오직 살아온 세월에 경의를 표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 그를 대우하는 것. 하나의 세계를 존중하는 것. 그런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배려하고 존중하는 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일이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성별, 나이, 세대, 장애, 외모, 직업, 종교, 경제력 등으로 서로 차별하고 혐오하는 분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격렬한데, 나는 그게 하나의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자극적인 가십에 눈길이 끌리듯이 그렇게 소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진심으로 마음 깊숙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실제 생활 속에서 타인을 비방하고 혐오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을 대면하게 되면서 크게 당황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곤란했다. 그들은 진심이었다.


 혐오 가득한 사고방식까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며 포용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 어떤 사고방식은 틀렸다 감히 내가 말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부턴 잘못된 태도일까. 누가 그런 범위나 기준을 정할 수 있을까.


당연한 소리가 필요한 때가 있다.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해야 할 때가 있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간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한다.


나는 이걸 당연한 소리, 그러니까 상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여전히 통용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이야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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