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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 혼자 이혼한다 Sep 14. 2023

이 작은 공간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작은 공간이라도 있었으면

와이프와 이별을 선언하고 무작정 집을 나선 지 하루가 지났다. 울적한 마음에 회사 근처에서 편집샵을 하는 친구를 만났다.

한바탕 내 속사정을 쏟아낸다. 친구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한풀이만 쉴 새 없이 늘어놓는다. 나는 ESTJ의 T발 놈이니깐...


한바탕 한풀이하니 오히려 회사로 돌아가 아무 일 없는 듯이 일하기가 겁이 난다. 가게로 돌아가는 친구를 따라 무작정 경복궁 돌담길을 걸었다.


문득 12년 만났던 전여자 친구가 생각이 난다. 이 돌담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심지어 그녀의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때 환하게 웃으면 나를 보던 그 눈빛이 마치 방금 본 그림처럼 또렷이 기억난다. 그때 참 행복했는데..,


난 지금 행복할까?


와이프는 행복한지, 아들 둘은 행복하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불행할까 봐, 내 아이들이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게 평생의 짐이 될까, 두렵고 또 두렵다. 그렇기에 내가 행복한지 나에게 물어보는 건 이기적 라 생각된다. 아직도 이 마음은 극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마음속의 짐으로 가지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친구랑 무슨 얘기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친구 가게에 도착했다. 얼굴이 참 밝아 보이는 친구 와이프한테 인사를 하고, 대충 근황을 몇 마디 물어보고... 그때 문득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 보인다.


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이다. 친구 와이프가 친절하게 그림을 설명해 준다. 작가는 누구고, 얼마 전에 누가 구매를 해갔고, 최근 이렇게 샵 안에 갤러리처럼 전시하는 일이 많다는 등등... 그리고는 나에게 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작은 엽서 한 장을 건넨.


이제 가야지. 더 있으면 민폐다. 친구와 친구 와이프한테 인사를 하고 나오는 순간, 친구 와이프가 말한다.


"그림 제목은 - 이 작은 공간이에요!"


그 순간 왠지 모를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 작은 공간이라니... 이 작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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