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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 혼자 이혼한다 Oct 14. 2023

죄책감 중독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 못하는 남자의 3일째 별거 이야기

집을 나온 지 3일째, 여전히 A한테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

(와이프, 전와이프 등 호칭을 고민하다 그냥 A라고 해버린다.)


지난날 A는 나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A왈 : "당신이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와이프인 나에게 말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A의 말은 늘 정답 같다. 마치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듯, 이게 정답인데 다른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A한테 참 많이도 전화받았다. "지금 어디야?" "지금 누구랑 있어" "그 여자는 누구야?" 등등.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집을 나오니 A한테 전혀 전화가 오지 않는다.  


어떤 날은 A에게 이렇게 하소연해보기도 했다.


A왈 : "왜 이렇게 늦게 퇴근하는 거야! 집안일하고 육아는 나한테 내팽개치고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미안해. 내가 무능력해서 회사에서 늦게까지 야근해야 했어."


그렇게 "미안해"라는 단어로 간신히 무너질 것 같은 일상을 붙잡고 살았던 지난 9년의 시간들.

몰랐다. 그 사이에 내 마음은 메말라 바스러져 버린 것을...


나는 아직도 A 가 두렵다. 아직도 A가 쏘아붙이면, 미안하다 말해버릴 거 같고, 그렇게 미안하다 말하면 A는 더 크게 화를 내고... 죄책감에 길들여져 버린 지난 9년.


아직도 여전히 죄책감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일까? 내가 A한테 더 노력하고 잘해주면, 이 관계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아니다. 이 노력으로 이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꾸 더 노력을 해봐야 할 것 같은 미련이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지난 9년의 지옥 같은 날들을 붙잡고 살았던 이유는 오직 "아이들" 때문이다. 마치 A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는 착각. A의 말은 정답인데, 그 정답을 해내지 못하면 좋은 가장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다.


이제는 나도 안다. 이 모든 것이 허상이다. A 또는 A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뒤틀린 허상이다. 허상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나 홀로 새로운 삶은 개척하자. 당당하게 이 지옥 같은 현실에 NO라고 당당히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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