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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써니
Jul 23. 2024
꼰대의 일변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 나는 이미 꼰대
가 된 것이라는 문장을 어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꼰대.
은어로 늙은이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꼰대를 떠올리면 꼬장꼬장한 말투에 양 미간에 힘을 잔뜩 준 고집 불통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좋게 생각하면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낸 연륜이 묻어난 어른이지만
꼰대의 의미는 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이들이 답답하게 여겨지는 선생님을 칭할 때도
직장에서 뻣뻣하기 그지없는 상사를 칭할 때도 흔히 꼰대라고들 한다.
아이들 키우며 바쁘게 살 때는 의식하지 못하던 단어였다.
그게 내 인생의 한편을 대변하는 말이 될 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책 속에서 그 문장을 읽자마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강력한 깨우침의 끄덕임이 있었던 만큼,
난 이미 꼰대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던 건지.
올 초에 새 집으로 이사하신 부모님의 불화가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가족문제에선 한 걸음 물러나 있던 난 언니의 다급한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엄마가 이상해. 처음엔 엄마를 이해하려고 엄마 편을 들어줬지만
이제는 이해도 안 되고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만 들어``
`평소의 엄마랑은 너무 다른 모습이긴 해.. 혹시 치매 초기 증세는 아닐까.. 성격이 바뀐다고들 하던데.``
``내가 먼저 돌아버릴 거 같아.. 네가 잠시 들어와 주면 안 되겠어?``
지금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공감해 주고 잘 이해해 주던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끊어 한국으로 향했다.
급히 들어가는 만큼 주변 지인들에겐 아버지가 몸이 좀 안 좋으셔서 잠시 다녀올 거야.. 란
메시지 문자를 남기고 길을 서둘렀다.
새로운 환경 속 무엇이 변화의 원인이었을까!
부모님께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조금의 미동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해 보였다.
겉으로는.
사는 내내 곪아있다 썩어버린 감정의 찌꺼기들이 한꺼번에 터져버려
상황은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
부모님께 좀 더 신경을 쓰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부분이 많아지겠다는 생각만을 안고 귀국해야 했다.
``언니. 잘 다녀오셨어요? 우리 얼굴 볼까요?``
``응. 잘 다녀왔어. 그래 밥 먹고 커피나 마셔~``
그렇게 A와 둘이서 자리를 함께 했다.
``언니, 새 집 이사
가서 좋으실 텐데.. 무슨 일이래요?
무슨 일이었어요?``
난 A 가 의도하는 바가 무슨 뜻인 줄 잘 안다.
그녀는 자주 그런 식으로 힘든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매도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국으로 귀임하게 된 어느 지인이 있다.
갑자기 친정 부모님의 초기 치매 진단과 남편의 암진단,게다가 난청으로
친정과 집을 오가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언니, 그 선생님..
아마 집터가 잘 못
됐을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왜 갑자기 이런 일이 겹쳐 일어난대요?
선생님, 어디 가서 좀 물어보라고 해요.
안 좋은 일이 너무 많네요.``
``뭔 그런 소릴 하니. 연세 드신 부모님이면 일어날 법한 일이고
남편 암발병은 누가 장담하겠어?``
``그래도 뭔가 찜찜해요.. 집터 잘 못 된 게 맞아.``
그렇게 반응했던 A였다.
그녀의 그 걱정 어린 말투가 그런 의미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난,
``응,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가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있으셔.
어디 몸이 아픈 건 아니고 ,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게 외로우신가 봐.`
``아~~ 그런 거라면 ,,, 외부활동을 좀 하시면 좋으실 텐데...``
이렇게 무마되는가 싶은 대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그 말이 계속 떠올라 찜찜한 기분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엄마의 행동에 적잖이 놀라고 힘들어했던 가족들이었다.
`이사를 잘 못했나`라는 말이 왜 안 나왔을까.
그럼에도
애써 편한 노후를 위한 딸들의 수고로움이 그런 되지도 않는 믿음으로 매도되는 게 너무 싫었다.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택시로 귀가하는 내내 곱씹고 곱씹으며 그 말을 내뱉는 그녀의 마음이 미워졌다.
`말로 뭔들 못하랴만, 도와줄 일이 없어 그렇게 나를 도우는가 `싶다가
`A는 매사에 미신을 너무 믿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정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심박수가 올라갔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걸터앉았다.
마음에 생채기를 안고 한국서 돌아오던 날
언니와 나는 부모님과의 기나긴 노년 생활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염려했었다.
아직은 체력적으로는 건강하시지만 언제 병환으로 몸져누워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였다.
그렇게 무겁게 돌아온 내 맘도 모르고 A는 불을 지펴댔다.
어쩌면 우리 가족도 생각했던 그 일이라... 그녀가 그렇게 물어오는 게 이해가 가기도 했다.
단지 내가 내뱉는 것보다 곱절은 더 아프게 사실로 인식되는 게 무서웠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토를 달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잡념에 빠져 허우적 대는 시간도 길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의 폐해는 너무 잘 알고 있는 나였다.
다시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내 또래의 우울증을 여러 번 본 바였다.
나름 그런 늪에 빠지는 걸 조심하며 스스로 할 일을 찾아가고 있다 자부했지만
그럼에도 그 행동에, 그녀의 말투에 꼬투리를 잡아
판단하고 단정 짓고 단죄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꼰대의 대열에 들어서 있던 나여서,
A의 그 말에 더 기분 나빠했는지 모르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닐 터였다.
그녀의 생활방식을 옳다 그르다 판단할 권리가 내겐 없다.
그녀의 말이 기분 나쁘더라도 그녀를 단죄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있는 말, 할 수 있는 행동
거기에 발끈하는 내가 이 시대의 꼰대였던 것일까!
남의 사고를 탓하기 앞서
내 부모님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내 부모님의 안위가 우선이란 걸로 결론지으며
그날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 A 에게로 향한 화살의 촉을 겨누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꼰대 일지언정,
못난 면만 지적질하지 않고
나쁜 것만 들추어내는 그런 꼰대는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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