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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07. 2024

맏며느리

딸만 셋인 우리들은 엄마의 강력한 생각으로 주방에 들어가는 대신 방 안에서 노닥거리는 호사를 누렸다.

``여자들은 시집가면 평생 주방에서 살텐데... 지금부터 할 필요는 없어``라는 엄마의 일에 대한 철학으로.


6남매의 맏딸인 엄마는 그 시절 맏딸답게

동생들에게 좋은 누나, 좋은 언니였고

8남매의 장남에게 시집온 까칠한 맏며느리였다.


예전 우리 부모님들이 늘 그러했듯

시댁과의 불화는 우리 집에도 었던 듯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엄마와 할머니는 살가워 보이진 않았다.


말수가 없는 엄마는 할머니집에만 다녀오면 아버지랑 말다툼하기 일쑤였고

그런 불안한 기운이 싫어 할머니를 미워하는 마음도 들었었다.

천사 같은 엄마를 ,

얌전하기만 한 엄마가 아버지에게 대드는 일은 항상 시골을 다녀온 뒤에 일어났으니까.


어릴 적 할머니와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할머니 집 대청마루에 놓이던 커다란 냉장고와

커다란 TV는  집과는 참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마치  고운 엄마와 주름지고 새카만 피부의 할머니 관계처럼 어색한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있다.


일곱 동생을 다 시집 장가보낸 아버지도 대단하지만

없는 집안에 시집와 시동생들을 집에 데려다 함께 지내고

시누이들 시집 다 보낸 엄마는 아버지보다 더 대단한 사람 같았다.


아버지는 호인에 효자로서 ``우리 오빠``, ``우리 형님``대접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가장이었다.

그에 반해 엄마는 까칠한 며느리, 새침한 올케로 환영받지 못했던 며느리였다.


그런 환경 속 엄마가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맏아들에겐 절~~ 대 시집안 보낸다``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는 세뇌되고 각인되어  세 딸들은 대학입학과 동시에

그 사실을 전제로 교제를 고려했었다.


``걔 첫째지? 안돼.. 엄마 말 못 들었어? 엄마 고생한 거 생각해 봐.. 어떻게 큰아들이랑 사귀냐?

치워치워.~~``

손사래를 지는 것도 흔한 일이었고


``뭐 어때.. 결혼할 것도 아닌데,, 그냥 만나는 사이잖아. 결혼만 아니면 돼~``

``그만해, 요즘 세상에 그게 뭔 대수야..

고부지간도 심하지 않잖아~~ 옛날처럼.``


``그래.. 네들이 살아봐야 알지,, 내 말을 무시하면 큰코다쳐.``


하나 아니면 둘 낳는 시대에

아들이 장남 아닌 경우가 흔하긴 한가.

나를 좋아해 준다는데 그런 거 따져가며 만나는 게 맞나.

멀리 떨어져 살면 되지 뭐 상관이람.

장남 장남 장남..



아 ~나 몰라,~~


그렇게 생각의 흐름대로 살다 보니 언니도 맏아들

나도 맏아들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니가 시집가는 날, 자조 섞인 말로 엄마는 넋두리하듯 뱉어냈다.

``그래. 뭐, 시어머니 자리가 순하니 괜찮겠지 뭐,, 연애결혼인데 ,, 네가 좋다는데 좋은 게 좋은 거지."

한 걸음 물러서며 낮은 음성으로.


``그래, 뭐 까다롭긴 해도 있는 집 맏아들이라면야.,,,,``

내 결혼을 준비하던 중에는 이렇게 자신을 달래고 계셨다.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돈을 들이밀며  맏아들과의 결혼에 따르는 힘든 시집살이를 양보받고 싶어하셨다.


다행히 막내는 둘째 아들이라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셨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딸 둘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셨을까?


우리 사회에서 맏며느리에게 요구되는 일들이 내 세대에도  여전히 실재한다.

지금껏 2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지켜봐 온 엄마는 우리를 보고는

``역시 내 말이 맞잖아.~~``라고 하실까.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그래도 살만했지......``라고 하실까.


요즘 새댁들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들은 도련님은 여전히 비혼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결혼이 싫어진다고 한다

``난 시금치에 `시`자만 들어도 소름 끼쳐.``

``김치 들고 경비실에 놔두고 가시는 것도 싫어``

``용돈만 주고 가시면 좋겠어``

``명절에 안 와도 된다고 하니 얼마나 좋던지. 정말 가기 싫었거든.``


딸이었으면 `맞아 맞아`라며 거품 물고 대화에 끼어들었겠지만

아들이라서 엄마의 입장에서 그 말이 거슬렸을 것이다.


엄마의 기우에도 불구하고 맏며느리의 길을 택한 우리는 고부 갈등 없이 정말 잘 살아온 것이 맞을까?

사는 게 쉽고 즐거운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끼인 세대인 내 또래에게 고부 갈등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간다.

혹시라도 시어머니 잔소리 발사할라치면

아들이 막고 나선다고..

너무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다 난다고.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얘기다.


그저 내 아들이랑 살아주니 고마워해야 하고

조용히 용돈이나 주고

조용히 , 조용히,,


그러면서도 나는 `장남에게 시집가면 힘들어~~`라고 딸에게 슬쩍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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