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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Aug 11. 2024

오늘 밤은

  장맛비가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날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었다. 꿈나라로 막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화재경보기가 연거푸 심하게 울렸다. 화재가 났으니 빨리 대피신하라고. 밖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후다닥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 보니 아파트에 불이 났다고 다들 혼비백산하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엘베는 타지 말고 빨리 내려가야 한다고.


  맨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내려가는 것이 힘드니까 옥상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계단에 서서 옥신각신하고, 사람들은 집집마다 현관문을 두드려 불이 났다고 알리며 내려갔다. 갑자기 불이 낫다고 하니 무엇을 들고나가야 할지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또다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빨리 나오라. 나는 잠옷 위에다 츄리닝을 걸치고 차키와 지갑 핸드폰을 잽싸게 챙겨 계단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그런데 계단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계단과 복도에 쌓아놓은 자전거와 짐들 때문에 사람들이 넘어지고 난리가 났다. 10층에서 내려가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렸다. 앞으로 이사를 가면 고층은 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뒤엉켜 넘어지면서 다치는 사람도 있고, 필자도 내려가다 복도에 세워둔 자전거에 다리를 부딪쳤다. 몇 층에서 다쳤는지 기억도 안 났다. 다리가 까져서 벌겋고 욱신거렸다.  


  사람들은 거의 잠옷 차림이고, 8층에 사는 할머니는 러닝셔츠에 고쟁이 속옷만 입고 자다가 불이 났다고 사람들이 문을 두들겨대니 놀라서 반려견만 안고 나왔다. 사람과 뒤엉켜 안고 있던 개를 놓쳤는지 개가 멱따는 소리를 냈다. 사람 소리와 개소리가 혼합되어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기괴한 소리를 들었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가 내려오다 계단에서 넘어졌다. ‘아이고 나 죽네. 사람 살려’라고 했고, 사람들은 할머니를 부축해 겨우 밖으로 나갔다. 한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바닥에 널브러지며 나뒹굴었다. 서로가 어디서 불이 났느냐고 두리번거렸다.


  결국 장마로 인해 날이 습해 기계가 오작동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화재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 있으니 구급차가 왔다. 내려오다 계단에 넘어진 할머니가 다리를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모두가 그렇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엘베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새벽 2시 다시 화재경보기가 심하게 울렸다. 아파트 주민들은 또다시 혼비백산하며 계단을 통해 빠르게 내려갔다. 극기 훈련도 그런 극기 훈련이 없었다. 주민들이 관리실 앞에 모였다. 이번에도 오작동이었다. 양치기 소년이 된 거 같았다.


  다음날 선약이 있어 잠을 설치고 일어나 친구와 산행을 하고 왔다. 친구와 헤어져 집에 오니 다시 화재경보기가 심하게 울리고 있다. 관리실에 문의하니 수리 중이라고. 밤새 난리부르스를 춘 몸을 이끌고 산행을 했더니 몸이 지쳐서 천근만근이고, 이명이 들리는 것 같다. 몸이 구름에 뜬 것 같아 오늘 밤은 정말로 불이 났다고 해도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제발 오늘 밤은 편안한 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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