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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사요 Oct 30. 2023

시련에 맞서는 법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그날 대구시민 야구장에 모인 이들은 오로지 단 하나의 대기록만을 기다렸다

 2003년 10월 2일, 그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다. 살면서 그다지 기대할 만한 일이 없었던 시기, 그들에게 이 놀라운 이벤트는 자부심이자 매일이 기다려지게 하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수만명의 사람들 사이로 긴장감이 흐르고, 드디어 모두가 기다려왔던 순간이 왔을때, 기대는 곧 함성으로 바뀌었다. 대구시민 야구장, 2회 말 선두 타자로 나온 이승엽이 당시 아시아 홈런 신기록이던 56호 홈런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어머님께서 차를 산다 하시니, 자네가 가서 계약해 얘기해놓을테니.” 어느 날 이전에 근무하던 곳에서 차를 판매하며 인연이 되었던 국내 'N'사 대기업 대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께서 내가 재직중이던 브랜드의 차량을 눈여겨보셨고, 나에게 먼저 전화를 주셨던 것이다. 당연히 고마운 마음으로 계약을 진행하려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 차량은 내게 전화를 주신 대표님 회사의 본사 총무과에서 이미 다른 딜러사와 계약을 진행하려던 차량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표님은 본사 총무과에 지시해 내게 계약을 맡기는 걸로 정리해 주셨지만, 당연히 본인들 업무에 갑자기 끼어든 내가 불편했을 총무과 담당자는 조금이라도 하자가 발생하면 신차로 바꿔줘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그 담당자가 어떻게 생각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조건을 별 걱정 없이 받아들였다. 내가 근무하던 딜러사에서 판매하는 브랜드는 잔고장이 없는걸로 명성이 높았던 ‘LEXUS’였고, 해당 모델은 그때까지 중대 결함 한번 없던 모델이었으니까.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믿음은, 아니 어쩌면 별탈없이 넘어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곧 무너졌다. 


 잔고장이 없고 신뢰성이 높은 걸로 유명했던 그 차는 출고하자마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부랴부랴 AS센터와 브랜드 본사를 들락거리면서도 운전기사의 작은 실수 같은 것이기를 바랬지만, AS센터의 상무님은 긴장된 얼굴로 내게 진실을 선고했다. 그건 단 한번도 없었다던 중대한 기계적 결함이었다. 


 내게 엄포를 놓았던 총무과 담당자는 기다렸다는 듯 거친 항의를 시작했고, 당시 수입차 딜러사는 브랜드 본사에 대한 발언권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AS센터와 본사에서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그대로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책임 돌리기와 변명에 총무과 담당자는 일주일 내내 내게 폭언을 쏟아냈고, 회사 임직원들의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상무님과 대표님에게 까지 막말을 쏟아낼 때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시련 앞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정면 승부를 하는 것만이 답이다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 당시 ‘56호 허용투수’라는 뉴스 자막과 함께 이름을 알린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이정민은 실은 그날 5이닝 3실점으로 데뷔 첫선발승을 거둔 ‘승리투수’였다. 세월이 흐르고 은퇴한 후에 한 인터뷰에서 이정민은 그날에 대해 “나에게는 한 게임일 뿐이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홈런을 맞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나한테는 데뷔 첫 선발 기회였기 때문에 기록에 대해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사실 롯데 자이언츠는 바로 얼마전인 동년 9월 2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맞대결에서 8회 초 이승엽의 4번째 타석에 고의사구로 승부를 피하면서 성난 관중들의 반발에 소요사태를 겪은 직후였다. 감독은 경기의 승부처이기에 중심 타자를 고의사구로 내보냈다고 했지만,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을 보기위해 경기장을 찾은 만원 관중 앞에서 승부를 피한 결과는 전투 경찰까지 출동하고 감독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관중들에게 사과를 해야 할 만큼 끔찍했다. 


 결단을 내리고, 나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총무과 담당자와 담판을 지었다. 그간의 폭언과 고압적인 태도에 대해 항의하고, 최종 결정권자인 대표님과 독대해 직접 말씀 드리고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거의 고함에 가깝게 쏟아내며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정면 승부 외에는 답이 없었다. 


 다음날 회사를 찾아간 나는 대표님을 만나 그간의 일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 브랜드 본사와 AS센터 담당자의 말은 사실 변명이며, 우리 회사의 베테랑 AS 상무님의 말씀에 따르면 부품 하나만 교환하는 것으로 정상 작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래도 문제가 생긴다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도 함께 였다. 그리고 총무과의 지나친 항의에 대한 자제도 함께 부탁 드렸다. 


 최종 결정권자에게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니 일은 쉽게 해결되었다. 상황이 잘 마무리되자 브랜드 본사에서는 오히려 내게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물어왔다. 나는 단지 솔직하게 이야기 드렸을 뿐이라고 답했다. 사실 딜러인 내가 기계적 결함에 대한 AS 책임까지 질 이유는 없었지만 나는 고객과의 신뢰를 지키고 싶었다. 두렵고 골치 아픈 일이지만 변명하고 회피하며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싸운 자에게만 승리의 기회가 주어진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인터뷰에서 이정민은 “원래 내가 선발은 아니었지만 하필 그날 선배들이 아프다고 해서 감독대행을 맡고 계시던 김용철 감독님이 내게 등판 의사를 물으셨고,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겠다고 말씀 드렸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2회 말, 이승엽과 마주한 이정민은 그의 말처럼‘심플한’ 사인에 맞추어 정면 승부를 선택했고 ‘기록의 사나이’, ‘허용투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날의 선발 투수 이정민은 그 ‘심플한’ 사인을 낸 포수 최기문과 함께 5회까지 5피안타 3실점으로 막으며 데뷔 첫 선발승을 올렸고 그날의 ‘승리투수’로도 기록되었다. 이후 이정민의 선수생활은 그다지 화려하지는 못했다. 그가 두번째 선발승을 올린 것은 그날로부터 무려 9년, 3,254일이 지나서 였고 그외에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불펜 투수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던 2014년 10월 15일, 이정민은 또다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기록과 맞붙는다.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서건창은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200안타에 단 1안타만을 남겨둔 상태였고, ‘허용투수’ 이정민을 기억하던 모든 이들의 시선은 그들의 맞대결에 향했다. 이 대결에 대해 이정민은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니 올라갔고, 넥센에게 강했었다. 점수를 주지 않았다는 게 중요했지 기록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결과는 유격수 플라이 아웃으로 기록 불허, 이번에는 그에게 ‘불허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4세의 신인 투수는 35세의 노장 투수가되었지만, 변함없이 대기록 앞에서도 상대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있다. 탓하지 말자. 변명하고 회피하는 것도 습관이다.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더라도 상대와의 신뢰를 위해서는적극적으로 해결해야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도망친다면 누구도 당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두렵고 어려운 일일수록 솔직하게 정면 승부해야 한다. 물론 정면 승부가 ‘허용’으로 이어져 타격을 입을 수도 있지만, 승부하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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