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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사요 Nov 13. 2023

나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소품이 아닌 연기에 집중하라


  2004년 말, 개인용 컴퓨터 즉 PC라는 개념을 처음 대중화 시킨 것으로 평가 받던 IT 회사의 CEO는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당대에는 정말 압도적으로 IT 산업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스 사의 임직원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상대는 그 CEO에게 마이크로소프트가 태블릿 PC 소프트웨어로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라며 그의 회사는 자신이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에 대한 라이센스를 얻어야 한다는 말을 저녁 식사 내내 10번은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거의 일생동안 내내 그랬던 것처럼 상대방의 말을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기 까지만 읽어도 모두가 알겠지만 그는 스티브 잡스이니까. 그리고 스타일러스 펜을 사용해야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블릿 PC에 대한 이야기를 한심하게 생각했던 그가 다음날 팀을 모아 놓고 만들자고 이야기한 “진짜 태블릿”은 훗날 ‘iPad’가 될 프로젝트의 시작이 된다. 



 수입차 딜러사로 이직한 후 첫 여름에 나는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요일별로 입을 깔끔한 반팔 와이셔츠를 준비해 단정하게 다림질 해 입고 출근 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사무실에서 쫒겨 난 적이 있었다. 반팔 와이셔츠를 금하는 복장 규정을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수입차 딜러에게는 그 외에도 고가의 차량을 구매하는 고객을 상대하기 위한 응대 매너, 취미 생활 등의 여러가지 제한 및 권고 사항이 존재한다. 


 꼭 수입차 딜러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기 위한 복장과 애티튜드를 갖춰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대에 대한 배려, 나에 대한 인상을 고려해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과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일부에서는 이것을 잘못 해석해 무리하게 명품으로 치장을 하거나 수입차를 타고 비싼 식당과 술을 고집하는 등 본말이 전도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지난번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처음 자동차 세일즈를 시작할 때 나는 정장 한 벌과 구두 한 켤레가 전부였다. 무일푼으로 상경해 고시원에 사는 형편에 옷 한벌, 구두 한 켤레를 더 장만하는 것은 엄청난 사치였다. 당연히 명품이나 값비싼 시계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단벌로 고객들을 만나야 했지만 복장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를 꾸미는 ‘소품’이 아닌 내가 '나'로서 보여줘야 하는 ‘연기’ 자체에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우연한 계기로 인해 스타일러 펜을 없앤 태블릿을 만들기 위해 개발 중이던 멀티 터치 기능을 활용하여 Apple은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의 전설적인 프레젠테이션에서 직접 언급한 것처럼 iPod, 전화, 인터넷 통신기기를 합친 iPhone을 내놓았다. 이후 iPhone이 거둔 성공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그 저녁식사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블릿과 2010년 출시된 iPad가 각각 어떤 결과를 냈는지에 대해서도 아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iPhone, iPad의 성공을 이끈 스티브 잡스가 iPhone 4S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인 2011년 10월 6일 사망하면서 Apple은 곧바로 위기에 빠진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지명한 후임자인 CEO 팀 쿡은 재무나 물류에 대해서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창의성이나 아티스트적인 면모는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이후 Apple은 ‘드디어 혁신은 끝났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스티브 잡스 개인의 영감과 인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것이 약점이 되어 대체자를 찾지 못하며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일견 당연한 일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상대에게 무리하게 보여주는 것은 ‘소품’ 이상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것은 매번 성별도, 나이도, 취향도, 성격도 모두 다른 이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 중에는 내가 입은 옷이나 구두, 손목에 찬 시계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물론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정하고 정돈된 모습과 준비된 애티튜드에도 그런 것들을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소품’은 기본적인 것만 갖추었더라도 내가 '나'를 보여주는 ‘연기’를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VIP 고객을 만난다고 해서 항상 일식집이나 호텔 레스토랑만을 예약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취향을 적절히 파악해 상대가 소탈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삼겹살 집과 포장마차를 함께 찾을 수 있는, 그리고 언제 어디서라도 고객에게 내가 가진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상황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성공적인 세일즈를 하기 어렵다.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팀 쿡이 그의 모교인 오번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던 “스포츠나 비즈니스에서 승부를 결정 짓는 기회가 오는 것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준비 자체는 통제할 수 있다.”는 말처럼 그는 기회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팀 쿡의 Apple은 그 이전 세대의 디즈니가 월트 디즈니 사망 이후 겪었던 ‘월트 디즈니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와 같은 생각에 갇히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당연히 그것은 승부를 결정 짓는 정답이었다. 스티브 잡스도, 우리도 그렇듯 팀 쿡 역시 유일한 사람이니까.


 팀 쿡의 Apple은 한 손에 들어와야 하기에 4인치를 넘기면 안된다던 스티브 잡스의 제한을 넘어 iPhone을 다양화하고, 스타일러스 펜을 없애는 것으로 혁신을 시작했던 iPad는 스타일러스 펜을 도입하면서 다시 혁신을 이루었다. 또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AirPods, Apple Music, Apple Watch, Apple Pay 등 시장을 주도하는 상품과 플랫폼을 계속해서 내놓고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그러는 동안 시가총액은 3조 달러를 돌파했다. 스티브 잡스 사후의 애플이 오히려 그의 생전보다 더 높은 성장의 지속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혹은 남이 성공했던 방식을 ‘소품’으로 삼아 상대에게 보여주는 일에 대해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나'의 미래를 밝혀주는 존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카사요’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쟁 업체의 성공 사례나 외형적인 보여주기식 기업 홍보에 집착하지 않고 '나'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연기’에 집중하여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연기’를 준비하고 해내는 일에 대해 더 충실할 때, ‘소품’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진짜 신뢰와 성공을 얻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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