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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 Nov 02. 2023

프랑스 소도시에서 동양인으로 산다는 것

내가 "선택"한 내 인생의 짐.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 저는 현재 프랑스에 살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알테넝스라 불리는 제도를 통해,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는 회사, 목요일과 금요일은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인사조직(human ressources)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데요.

이번주에 있었던 황당하고도 마음 아프지만 나름 잘 극복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일에 대해 써 내려가볼까 합니다.


사실 제가 2015년에 프랑스에 온 후로 지금까지 인종차별을 겪어본 적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없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제가 한국인이라 하면 호의적일 때가 많았고, 가끔 언행에 문제가 있는 부분들도 사실 알고 보면 거의 무지에 비롯해 생긴 문제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학교에서 세 명이서 준비해 온 조별과제를 발표해야 했습니다. 저희 팀은 저와 다른 프랑스 여자아이 둘이었고, 우리는 서로 맡은 부분을 잘 나눴다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학교 풍경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프랑스는 챗지비티가 들어온 후로 아이들이 심각할 수준으로 의지합니다. 그래서 저희 팀원 중 하나(A라고 칭하겠습니다)가 회사에서 심심할 때 자료조사 미리 다 했다면서 저의 부분까지 챗지비티 조사내용을 찾아줬습니다. 기분이 묘했지만 어쨌든 할 일은 줄은 것 같아 A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부분이 하나도 없으니, 그럼 제가 ppt를 준비하겠다 했지요.


다른 팀원 중 하나, 즉 B양은 자기 회사 사수에게 인터뷰 요청을 짧게 해서 보내주겠다 했어요.

제가 맡은 것은 ppt 그리고 인터뷰영상 편집이었습니다. 약속한 대로 저는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ppt를 열심히 만들고, 인터뷰 영상까지 편집하니 오전은 다 지나갔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사립학교가 아닌 대학교에 다닐 때는 ppt를 만들 기회가 거의 없었고, 발표할 기회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이 기회에 불어실력이 확 늘겠다, 자신감이 더 생기겠다 생각이 들어 너무 좋았습니다. 약속한 대로 만든 자료들을 보내고, 드라이브에 좋은 주말을 보내라는 메시지까지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망의 학교 가는 날이 됩니다. 목요일, B양은 제게 와보라 합니다. 그 둘이 같이 앉았으니 전 갑니다. 혹시 ppt색깔을 바꿀 수 없냐 합니다. 저희 발표 주제는 코로나 전과 후의 인사조직의 디지털화였기에, 제가 고른 테마가 짙은 하늘색, 어두운 색인 게 어지간히 맘에 안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반박의 말을 하니, 그제야 A양이 사실 자기가 따로 ppt를 만들었다 합니다.

저는 이해가 안 갔지만 그 이유를 들어보기로 합니다.

제가 공유했던 ppt에 들어가서 볼 수 없어서 따로 만들었다 합니다.

이해가 더 가지 않습니다. 남자친구에게도 보내서 확인을 했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말을 바꿉니다. 제가 너무 많은 단어를 썼다는 둥, 자기 부분이 맘에 안 든다는 둥.

그래서 드라이브에 너희 부분은 맘대로 수정하라고 쓰지 않았냐고 말했습니다.

B양이 뚫어질 듯 저를 노려봅니다. 저도 지기 싫어 같이 노려봅니다.

고개를 내리더니 "어쨌든 이건 쓸 수 없어. 어쩌고저쩌고..."

저는 힘을 잃고 말했습니다. "너희 알아서 해. 어차피 난 하나고 너넨 둘인데 내가 더 말해서 뭐 해."

말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둘이 화가 났더군요. 그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너무 허무하더군요. 누가 봐도 잘했다 칭찬해 주는 제 PPT가, 제가 편집한 영상이 그들은 뭐가 그리 아니꼬왔는지. 혹시 제가 혼자 잘했다 생각한 걸까 봐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물어봤습니다. 정말 어떤지. 모두가 다 너무 잘했다 말해주는 거였습니다.

창피하지만 저는 학교가 끝나고 바에 가서 맥주를 마시다 울어버렸습니다.

다행히 제 앞엔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만든 것에 문제는 없고, 단지 제가 불어할 때 한국인 악센트가 있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 거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들이 해야만 맘이 풀리는 인간들일 거란 위로도 해줬습니다.


남자친구의 응원을 받고 다음날 교수님이 혼자 계실 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저가 만든 것을 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안 그러면 제 정서상 문제가 있을 것 같으니, 저 여자애들 때문이 아니라 절 위해서라도 보여드리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 다행히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저는 메일로 모든 걸 보냈습니다. 점수는 20점 만점에 12점을 받았고 제 속상함이 다 풀렸습니다. 교수님께서 저에게만 따로 코멘트를 남겨주셨는데 멋진 PPT였다는 말씀이 참 감사했습니다.

학교 친구들한테도 말해보니 참 못된 애들이라며, 너의 남자친구가 하는 말이 맞다, 너의 악센트밖에 이유가 없다는 말에 다시 한번 속상했지만 저를 응원해 주는 친구들 덕에 힘이 났습니다. 프랑스 사람들도 사람마다 다 다르니 배려 없는 여자애들은 잊어버리자 생각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생각합니다. 이 모든 걸 이겨낼 만큼 프랑스의 삶이 가치 있는 걸까? 모든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그렇다입니다. 그럼 이런 제가 겪은 상황의 아픔도 결국 저의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저의 선택이기에, 제가 저를 보호해야 할 의무도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왜 더 따지지 못했나, 왜 더 큰소리로 주위사람들 다 쳐다볼 정도로 말하지 못했을까 솔직히 후회가 됩니다.

이제 차츰 배워나가면 되는 거겠죠? 참 힘 빠지는 한 주였지만 그게 다 언젠가 밑거름이 될 경험이다 생각하고 넘기려고요. 짐이라 생각하면 짐이고, 동양인이기에, 외국인이기에 여러 가지 문화를 알고 있는 장점이 크다 보니 이런 작은 단점도 있을 수 있다 생각하고 넘기려고 합니다. 모든 해외에서 사시는 분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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