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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Oct 13. 2024

식당의 탄생

53. 슬기로운 배달 생활

    수년 전의 일입니다.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습니다. 전에는 주로 해안 지역의 리조트나 펜션에 머물며 관광을 즐겼지만 이번에는 한라산 기슭의 중산간 지역에 숙소를 정했지요. 유명 핫플과 비교하여 이곳이 좋은 점은 관광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기 때문에 유유자적하며 힐링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던 바, 음식 배달이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지리적 약점이 있음을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지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여행지에서의 밤은 길고 깁니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제주도의 밤을 만끽하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다시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했지요. 습관처럼 휴대폰의 배달앱을 켜고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음식을 배달시킬 음식점을 찾았건만... 안타깝게도 배달이 가능한 식당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술을 마셨으니 운전을 하여 나갈 수도 없었지요. 그렇게 아쉬워하며 밤을 지새운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배달 서비스 문화의 편리함을 새삼 느낀 날이었던 겁니다.


  물론 우유나 신문 배달의 경우는 제법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다양한 음식 배달 서비스를 지금처럼 당연시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닙니다.  음식 배달이라면 짜장면, 짬뽕밖에 없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으니까요. 그러던 것이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여러 배달 전문 회사가 생겼고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참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가끔 잊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세상 만물에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함께 하기에 배달 서비스가 사회적으로 순기능만을 지니고 있지는 못합니다. 또한 사회 참여자의 입장에 따라 불만도 적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만 해도 식당 자영업자의 입장과 음식 배달을 시키는 고객의 입장이 서로 상충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음식 배달 서비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즘 들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배달 서비스 이슈 아닌가요? 편리함은 편리함대로 누리면서 배달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 불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제가 그렇습니다). 한편 배달을 시키는 고객 덕분에 매출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거대 배달업체들의 탐욕과 횡포 때문에 빛 좋은 개살구처럼 실익 없는 장사라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제가 또 그렇습니다).


  오늘은 그저 조용히 자영업자로서의 제 입장을 말씀드려 보렵니다.

자영업자로서 음식 배달 서비스는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한 몸에 품고 있습니다. 한쪽의 날은 매출을 증가시키고 식당을 널리 알려 줍니다. 특히 코로나 상황하에서 정부가 국민들에게 외식 자제를 권장할 때 배달 서비스는 궁지에 몰린 자영업자들에게 긴 가뭄 끝에 내린 단비처럼 고마운 존재가 되어 주었습니다. 빙하기처럼 모두가 대면 활동을 멈춘 시기에 배달 서비스처럼 고마운 것이 없었습니다. 저희 식당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고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방역 대책으로 확대되었던 2020년 연말부터 2021년 초까지 배달 서비스의 도움이 정말 컸습니다. 배달 서비스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매출은 처참했을 겁니다.


  한편 이렇게 고마운 배달 서비스의 한쪽 날이 자칫 잘못하면 도리어 식당 주인을 벨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것의 무서움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추가로 지출되는 배달 수수료 따위의 수익 감소는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배달 이용자의 리뷰입니다. 바로 고객들이 만들어내는 '평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식당의 盛과 衰와, 浮와 沈이 좌우됩니다. 최근 고객들과의 소통 문제로 문을 닫거나 그 이상의 고통으로 치닫는 사회 문제를 바라보면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두려운 마음마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한쪽 날이 지니고 있는 원치 않는 공포의 얼굴입니다.


  아시나요? 손님들을 줄 세우는 식당 대부분은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맞이하기에도 역부족이기에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득 보다 실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튼 저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배달 서비스란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팔고 사 먹을 수 있는 '신명 나는 판'을 만들어준 플랫폼 업자들에게 감사하면서도 그들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적당히 해라'가 잔소리가 아니라 경구처럼 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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