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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
Dec 15. 2024
식당의 탄생
60. 미제 사건의 해결
그 사건은 오늘도낙지의 개업 첫 해인 2019년 가을에 일어났지요.
태풍이 북상하던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가게 앞 골목에 들어서던 저는 멘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쑤시개에 꽂힌 오낙 명함 두 장이 입구 화단에 십자가처럼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두 군데나 말이죠.
순간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게 뭐지? 혹시 그 저주 인형...?'
정말 한눈에 봐도 예의 그 저주 인형과 흡사했습니다. 가게 명함을 십자가처럼 만들어 이쑤시개를 찔러 놓았으니까요. 갑자기
머리털이 곤두서고 가슴이 요동쳤습니다.
'도대체 어떤 자식의 소행인 거야? 가게에 대체 무슨 불만을 품었길래 이런 유치한 해코지를...'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이런 짓을 당할 만큼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건 물론
자의적 판단
이지만...'
증거물의 보존을 위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가게로 들어와 곰곰이
생각했지요.
'대체 누가 우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을까? 아, 우리가
아니지
.
초능력자까지는 끌어들이지 말자.
난 대체
누구에게 잘못을 한 거지?'
결국 후회했던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술 취해 소동 피운다고 빨간 뚜껑 두꺼비(도수 높은 진로 소주)를 팔지 않은 일,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손님을 돌려보낸 일, 또
마감
시간이 지나서도 술 한 병 더 달라던 진상을 내쫓았던 일...
영업 규정에
맞다고 한 일이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빴을 일들이 연거푸 떠올랐습니다.
젠장! 내가 많이도 잘못했구나...
그런데
대체 누구
?
한참을 혼돈 속에 빠져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을 찰나, CCTV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지! 그걸 돌려 보면 되잖아.'
흥분과 긴장이 교차하는
와중에
저는 핸드폰 속 CCTV 어플의 녹화 비디오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럴 수가...
범인은 바로 어제저녁에 온 꼬마 손님
!
초등학교 1학년이나 되었을까?
밥을 다 먹었는지
녀석은 카운터 앞에 놓인 명함과 이쑤시개를 들고
태연스레
밖으로 나가더니 화단에 그것을 심는 것이었습니다.
명함꽃을 말이죠.
머릿속은 더 하얘졌지요.
만약 CCTV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하며 불안에 떨었
을까?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의심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스스로가 한심하게만 여겨졌습니다.
미제 사건으로 남았을 음모론자의 망상은 지나간 일이지만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화단에 명함꽃을 심었을까?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지난주 일요일입니다.
모처럼 브런치 글을 일찍 써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티브이를 켰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첫 채널부터 정치 뉴스를 토해냅니다. 참 보기 싫습니다. 한 채널 건너 또 한 채널도 경쟁적으로 똑같은 정치 뉴스를 쓰레기 퍼 나르듯 판박이로 찍어와 제 눈앞에 쏟아놓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일부러 예능 채널을 찾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제발 힘세지만 못난 사람들부터 정신을 차려, 착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평온한 일상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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