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판단하는 시선을 남이 아닌 나로 옮기기
이 욕구의 뿌리를 찾기 위해 내 유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나는 만 3~4세에 한글을 뗐고, 어릴 적부터 똘똘한 편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시험을 봐도 항상 80점에서 90점대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점수로는 칭찬받지 못했다. 부모님도 어렸을 때 공부를 잘했기에 100점이 아니면 제대로 된 칭찬은 받기 어려웠다. 그 영향 때문인지 (10회의 심리 상담 끝의 찾은 이유다), 나는 점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곰곰이 생각해보자. 당신의 인정 욕구에도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인정 욕구를 하루아침에 버리는 것은 쉽지 않고,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인정욕구 버리기>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얻은 교훈은 단 하나였다. '내 소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 것.'
소명?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쉬워진다. 그 이유가 대단하거나 멋질 필요는 없다. 다만, 남에게 인정받거나 잘 보이기 위한 이유가 아니어야 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거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거야?’ ‘나를 위한 결정이 맞아?’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나를 위한 행동이 조금씩 쉬워진다.
사람은 변한다. 생각도, 마음가짐도, 가치관도 변한다. 그러니 오늘 생각해낸 소명도 언젠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소명을 바꾸는 주체는 항상 나 자신이어야 함을 잊지 말자.
남과 비교하는 것은 결국 제3자가 나와 남을 비교하며 평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는 인정 욕구와 깊이 연결된다. 부모님의 친구 딸, 상사가 예뻐하는 동료,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등, 내 인생과 소명에 아무 관련 없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미디어 속 더 잘나 보이는 타인들도 마찬가지다.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 습관을 버리는 것은 꽤 어렵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예를 아래에 들어보겠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내 친구는 매일 5km를 뛴다.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도 매일 3km를 뛴다. 하지만 나는 5분도 뛰지 못했다. 그래도 심폐 지구력을 높이기 위해, 나의 건강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비교의 기준점은 내친구도, 인플루언서도 아닌 어제의 나로 두었다. 처음의 나는 7.0km/h로 5분을 겨우 뛰었고, 그 다음 주는 같은 속도로 10분을 뛰었으며, 이 글의 초안을 적은 그 다다음주는 13분을 뛰었다.
그리고 발행하기 전 지금 2024년 10월 29일 오늘 아침, 나는 쉬지않고 40분 동안 5.4km를 뛰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발전했다. 그리고 나의 발전과 노력이 쌓여 처음의 8배를 더 길게 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건강하게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자.
이 방법은 조금 과격하게 들릴 수 있지만, 생각보다 효과적이다. 직장에서 실수를 하거나, 부모님께 아쉬운 성적을 보일 때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 같은 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어쩌라고'의 마음 예시를 들어보겠다.
(물론 직장인으로서의 예의는 지킨 후에) '어쩌라고. 나도 인간인데 실수할 수 있지. 이러면서 성장하는 거지, 뭐.'
'어쩌라고. 애초에 공부는 나를 위해 하는 거지, 부모님을 위해 하는 게 아니잖아? 오늘 나는 문제 하나 더 푼 것으로 충분히 대견해.'
'어쩌지...'라는 생각 대신 '어쩌라고'로 시작하는 연습을 해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에 집중해보자.
대기업에 가지 않았다고 부모님 눈치를 보지 말고,
지금의 삶에서 내가 무엇을 더 원하는지 고민하고 결정하면 된다.
내 삶을 판단하는 주체도 결국 ‘나’이며, 내 삶을 살아가는 주체도 ‘나’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여주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