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선택의 심리학
'지구마불 세계여행'이라는 예능을 즐겨 봤던 적이 있다.
방송을 보며 여행 유튜버 '원지'를 처음 알게 됐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좋아서 영상을 가끔 찾아보는데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이용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기억에 남는다.
원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 항공 좌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돈만 내면(좌석을 끊으면) 사람의 인성이고 직업이고 나이고 성별이고 상관없이 무조건 서비스를 제공.
자본주의가 너무 무서우면서도 어쩌면 공평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곧 권력이고, 그 권력이 인간관계의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어쩌면 냉정한 진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공평함이란 정말 누구에게나 동일한 조건에서 작용하는 것일까?
퍼스트 클래스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 사이에 놓인 거리는 단순히 '돈'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돈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돈은 과연 얼마나 있어야 행복할까?
돈에 관한 심리학 연구가 있다.
2010년,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데이터 전문가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은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이 연구는 약 45만 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된 갤럽 월드 폴(Gallup World Poll)의 데이터를 사용해 이루어졌다. 연구팀은 참여자들에게 삶의 만족도와 정서적 행복에 대해 질문했으며, 연소득이 약 7만 5천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1억 1천만 원)까지 증가할 경우 정서적 행복과 삶의 만족도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수준을 초과한 소득은 더 이상 정서적 행복에 유의미한 증가를 가져오지 않았다. 연구 결과는 소득이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고 물질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데는 필수적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행복 증가가 제한적임을 시사했다.
연구를 보고 '연소득 1억 1천? 그렇다면 더 벌어야겠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자본주의는 더 많은 돈이 더 나은 삶과 더 큰 행복을 보장한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주입하며, 우리는 끝없는 경쟁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더 많은 소득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연구에서 드러난 한계효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믿음은 무한한 추구라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돈 자체가 아니라, 그 돈이 어떤 선택지를 제공하고, 내 삶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야말로 더 본질적이다. 돈이 주는 자유와 기회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연수휴직 중인 교사는 급여가 나오지 않는다.
월급에 별로 불만이 없던 나지만 수입이 사라지자 돈이라는 것에 대해 어느 때보다 많이 생각하고 있다.
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물건을 소비할 때 '이게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체감했다.
돈이 단순히 '더 많은 소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선택권과 여유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선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다면 부를 축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다.
이 생각은 나를 또 다른 깨달음으로 이끌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나의 경제적 자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오는 충격이었다.
한 번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니!
요즘 같은 세상에 난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됐을까?
살아오며 경제적 어려움은 겪어본 적이 없고, 돈의 가치가 제일이라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 기준에서 누군가 과소비를 하는 것처럼 보이면 사치스럽다고 여겼다.
내가 처한 상황 밖을 상상하는 일은 어려웠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잊혔다.
나는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나만의 어항 안에 갇혀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돈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의 문제일 것이다.
반대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에게 돈은 그저 삶의 도구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나처럼 안정적인 경계선 안에서 살아온 사람은 그 두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 속에서 돈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 구조 자체의 문제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돈은 분명 삶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기준은 아니니까.
자본주의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기회가 일부에게만 허락된다는 불공평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무작정 부정하거나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면을 정확히 인식하고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