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또다른 불행을 낳았다
가스라이팅
1938년 패트릭 해밀턴 작가 가 연출한 가스등(Gas Light)에서 유래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용어
사실이나 사건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상대방의 기억 인식 또는 정신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 중 하나
또한 가해자는
솔직하지 않고 위선적이다.
가해자는 상대방을 조종하려 합니다.
가해자는 자기만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자기중심이 강합니다.
나는 어려운 숙제를 두고 참고서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던 트라우마를 정확히 설명해 준 이 문장들에 일말의 위로를 받는다.
이유 없이 아픈 병명을 권위 있는 의사에게 정확히 진단받은 것처럼
병명을 정확히 알게 된다는 건 ..
완치는 아니더라도 치료의 가능성에 근접해진다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아프지만 조금씩 어린 나를 꺼내 나를 보게 되었다.
어떤 날은 어린아이인 나와 같이 울었고
또 어떤 날은 괜찮을 거야 다독이며 안아주며
겨우겨우 추스려 가고 있었던것 같다.
기억이 난다
거부하며 반항할 나이가 되고 키도 자랐는데 ,
힘이 강해지고 주먹이 무쇠처럼 될 수 있다면
찾아가서 한방에 때려눕히고 복수를 하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에 가슴에서 칼을 갈고 있었던 듯하다.
뉴스에서 자신의 딸에게 성폭행한 남편을 목 졸라 죽인 어머니의 기사가 나왔는데,
나는 그 순간 내 가슴도 뛰고 이미 마음은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딸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지체 없이 나는 복수를 했을테고, 그 값을 당당히 치러 낼 것이었다.
사회성이 결여되어 친구도 없고 학업도 부족하여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질 수 없었던 나,
궂은일 험한 일 몸을 누일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으면 닥치는 대로 해나가며
손이 트고 발이 얼어도 쪽잠을 자며 살아내느라 발버둥 쳤다.
그렇게 수년동안 ..
무인도에 혼자인 것처럼 살아야 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아마 그 험난한 길에서 죽음을 맞았다 해도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 됐을 것이다.
관심과 사랑에 춥고 아팠던 나는 스물셋의 나이에 결혼이란 걸 하게 된다 .
내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
솔직히 말하면 사랑했다기보다 .. 안식처가 필요했고
따뜻한 가정을 꾸려 안주하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소망이었다.
이미 나는 누구를 사랑할만한 내적인 감성의 여유를 실족 당했을수있다.
1980년, 남편의 회사 근처에 조금씩 모아놨던 돈으로 100만 원짜리 전세방을 얻어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안식처가 생기고 나는 정말 잘 살아보고싶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지난 아픔들을
회복시켜 주고
행복을 키워줄 파랑새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딸아이를 임신했는데
가난의 굴레는 지속되고 입덧할 때 먹고 싶었던 50원짜리 길거리 핫도그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건 누구도 겪을 수 있을법한 일이고 견딜 수 있었다 .
그는 대화 가 결여된 사람이고
화를 내거나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등 불안한 일상은 다시 나를... 종류가 다른 공포의 삶으로 이끌어갔다.
아이가 태어나고 두 달 후
몸조리도 하지 못한 지독히 눈이 많이 내리던 2월..
그는 더러워 못해먹겠단 패악을 떨더니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
어떻게 할 것인가 ...
딱 일 년 쥐꼬리만 한 월급 내어주며 온갖 괴롭힘을 다하더니그마저 없다.
아이는 핏덩이다.
내 몸은 나가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남편의 괴롭힘은 계속된다.
분노조절 장애라는 의학적 용어도 나는 뒤늦게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그는 왜 항상 남의 탓을 하고 분노하고 내게 쏱아내는지 알수가 없었다 .
깜짝 깜짝 놀라던 나의 습관은 나아지지않고 심해지고 있었다.
불안과 공포가 결혼후에도 또 다른 양상으로 계속되며 아이와 나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다.
나의 마음은 쇠사슬에 감긴듯..
풀어낼수 없는 절망으로 죽어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