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플리

-알랭들롱의 ‘태양은 가득히’의 다른 버전

by 정태영

글쓴이 : 정태영


요즘 시대는 영화보기가 겁나는 시대이다. 영화가 너무 많아 자칫 잘못 골랐다간 “아이쿠, 또 시간 낭비이군...”이라는 생각에 ‘입맛을 쩝~ 가시게’ 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리플리Ripley>를 우연히 보았다 ( 2023년 제작, 2024년 4월 출시).

제목이 사람 이름 같아 생소했으나 조금 있다가 언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또 의외로 제목이 사람이름일 경우 내용이 알찬 경우가 많아 일단 틀었다. 조금 보다 보니까 어디선가 언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좀 알고보니 1960년에 만들어진 알랭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의 원작 소설을을 다른 이야기로 – 물론 큰 줄거리는 같지만 – 풀어냈다는 이야기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떻게 전개시키나 호기심이 가서 보기로 했다.


영화는 흑백이었다. 칼라시대에 생뚱맞게 흑백이라니...그냥 덮을까 하는데 그 다음 장면이 궁금해졌다. 마치 책 읽을 때 다음 내용이 궁금하여 자꾸 다음장을 넘기듯이..

다만 밤 새우기에는 싫고 해서 하루 한 에피소드씩 보았는데 보다보니 그 긴 에피소드 8개를 다 보아버렸다. 마치 소설 읽는 기분이었다. 그러고도 다음 속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보고난 다음 총 평가는 “잘 만들었다” 였다.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없었다.


나는 한 참 나이가 든 후부터는 작품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할 땐 만든 사람 즉 감독을 찾아 보는 버릇이 있다. 주연배우보다는 제작자 즉 감독의 노고가 크다고 생각하고 전체 작품의 완성은 감독 몫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데 일부 신문 영화평을 보니 내가 수작으로 여기고 있는 “아이리쉬맨The Irishman” (2019년 작, 넷플릭스)의 감독과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섣부른 결론으로 “역시 실력있는 감독이구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다시 더 자세히 찾아 보니 같은 감독이 아니었다.아무튼 실력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코엔 형제Coen Brothers처럼.

코헨 형제의 실력을 나는 알아준다. 그의 “파고”(199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는 정말 아주 사실적으로 긴장감을 듬뿍 주며 잘 만들었다.


나는 영화를 보고 평가할 때 주제에는 - 이를테면 사회적 이슈를 다루었거나 하는 따위 -거의 평점을 주지 않는다. 대개 그런 영화치고 잘 만들어진 경우가 거의 없다. 그냥 주제로 한 몫 보는 것이다. 환경, 인권, 빈부 격차 등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들 말이다. 그들은 다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가 현실이나 과거를 왜곡한다.


나는 그들을 일종의 시장에서 오가는 뜨내기 내지 사람을 호객하는 선동꾼 아니면 사기꾼 정도로 생각한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건 말건 말이다. 그런 따위의 영화에 작품상을 주는 기자나 평론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작품을 작품으로 평가해야지 왜 주제를 가지고 더 점수는 주나?

특히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에는 한심한 생각까지 든다. 나쁜 자들이다. 그러나 시류가 거기에, 대중이 거기에 편승하니...이런 현상을 보면 “이거 어떻해야 하나”라는 ‘대책 없음’ 이란 생각만 한다.


리플리는 1960년에 만들어진 알랭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의 다른 버전이다. 원작(The Talented Mr. Riply, 1955출판)은 같다. 나는 젊었을 때 “태양은 가득히” 를 강열한 인상으로 보았다. 그러니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기억에 잘 남아 있다. 특히 알랭 들롱의 그 우울하고 침울하고 우수에 가득 찬 그 모습...

그래서 이번 <리플리>를 보면서도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를 떠올리며 그 결말을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 영화 내내 다른 결말을 상상하며 본 꼴이었다. 그러니 이해가 다른 방향으로 가 버렸다.

이 영화는 ‘완전 범죄’이다. 이걸 알고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주인공 리플리는 우울하고 건조한dried 인물이다. 생각이 없다. 그냥 자기 목적(범죄를 감추기 위한 목적)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술술 한다. 인간애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감성이 없는 인간이다.

무대는 1961년 로마이다. 로마 광장의 석상이 어두운 밤 조명을 받아 리플리를 마치 목격자처럼 바라보지만 리플리는 태연히 아니 백치처럼 다시 범죄를 진행한다. 도둑질도 아니고 살인이라는 범죄를.... 이쯤되면 심리학자가 사이코패스라고 인터뷰할지도 모르는 캐릭터이다.


영화 전편에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아마 그래서 감독은 찬란한 칼라 시대에 흑백을 고집했는지도 모른다. 관객이 좋아하건 말건... 자신의 의도를 강하게 전하기 위해서...

빛과 어두움. 흑백의 분위기는 장중하다. 차분하다. 칼라가 가져다 주는 사고의 낭비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칼라풀full-color 처럼 이것 저것 생각할 필요를 없게 해준다. 사고를 단순화해준다. 그래서 집중하게 만든다.


흑백은 인간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이원론적 단순화 수법이다. “나쁜 놈 아니면 좋은 놈”, “부자(착취하는자)와 가난한자(빼앗기는 자)”... , 뭐 요따위 구호 내지 낙인 같은 것이다. 중간의 회색분자는 기회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궤멸 당한다. 지금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실상이다. 그러한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 같은 중용 주의자들은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린지 오래다. 플라톤의 ‘절제’도 설 자리가 없다.


이 영화에선 밝고 활기찬 장면이라고는 1도 없다. 어두운 심리의 연속만 흐르고 있다. 그리고 무표정한 군상들 모습.

흥미를 끄는 것은 감독이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 38세로 요절. 이미 당대에 천재화가로 평판을 받아 성당, 궁정 등에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기가 그렸던 창녀의 포주를 결투에서 죽였다. 당시 결투는 불법이었다. 사형 언도를 받고 도피생활 중에 사망했다)의 그림을 소재로 썼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짙은 검은색을 유난히 많이 쓰고 있다. 암흑에서 빛의 세계로 바로 전환되는 기법을 쓰고 있다. 중간이 없다. 회색이 없다. 전체적 분위기는 기괴하고 심각한 분위기가 압도하고 있다.


초반부터 리플리는 카라바조의 작품 ’7가지 자비로운 행위The Seven Acts of Mercy (1607)’ 걸려 있는 성당을 찾아 넋을 잃고 쳐다본다. 이 그림은 성경 구절 “너희는 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 집으로 맞아들였고(마태복음 25:35 )”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쯤되면 감독은 ‘자비’와 ‘살인자’의 극단적 대비를 암시하면서 뭔가 복선을 깔고 있는 것 같다. 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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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The Seven Acts of Mercy’ 그림 앞에선 리플리>


좀 더 보다보면 감독은 리플리가 자신을 카라바조로 착각하거나 환상하는 암시를 주면서 전개시키는 것 같다. 감독의 의도가 불순하다.

실제로 드라마 속 리플리는 카라바조의 삶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다 최후를 맞이한 카라바조처럼 스스로가 예술적 재능이 남다른 비극적 인물이라 착각한다.

이후 리플리는 선한 사람을 살해하고서도 카라바조의 그림에 더 심취된다. 성당에 가서 그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리플리에게 신부가 다가서 그에게 말한다

신부 : “빛이 군요”

리플리 : “그래요”

신부 : “언제나 빛이 중요하죠”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그림 앞에선 큐레이터가 “골리앗의 머리를 향한 다윗의 시선은 동정과 애정의 눈 빛입니다. 카라바조는 살인자와 피해자를 연결했습니다” 라고 해설한다.

이 그림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얼굴은 모두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 하나는 젊었을 때의 카라바조, 다른 하나 즉 골리앗의 얼굴은 나이든 카라바조의 얼굴이란다.

리플리의 내면 심리를 감독은 이 그림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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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감독은 카라바조의 그림과 이야기를 전편에 바닥 깊숙히 깔고 자신의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즉 리플리의 원작 소설을 카라바조의 그림의 배에 옮겨 실어 관객들에게 실어 날리고fly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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